#결혼생활 3
매일 특별한 요리를 하거나 여러 가지 음식을 하지는 못하지만 요리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집밥을 챙겨 먹기가 힘든 경우가 많아서,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보람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요즘 시장이나 큰 마트, 아파트 단지 주변에 반찬가게나 밀키트 판매점이 많이 생겼다. 특히 명절에 시장을 가면 온 시장이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그 전을 사러 줄 선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엄마와 둘이서 오랜 기간 명절 음식 준비를 하면서 “엄마, 나 결혼하면 전 시장에서 사다가 먹으면 안 돼? 이걸 이제 혼자서 어떻게 다해.”라는 말을 자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는 내가 결혼을 한 이후에도 명절엔 전을 부친다(다행히도 아빠와 친정오빠가 함께 하고 있다.). 시댁도 이미 10년도 더 전에 제사를 싹 다 정리하셨고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지만, 명절에는 종류별로 전과 튀김, 잡채, 갈비 등을 준비하신다. 그리고 명절 전 날에는 아들 부부를 불러다가 이제 막 만든 따끈따끈한 음식을 먹이기도 하시고, 가까이 사는 작은 어머니에게도 나눠주신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다. 재료 하나하나 사서 직접 만들면 양이 너무 많아서 하는 데도 오래 걸리고 생각보다 비용도 많이 들어서 매번 음식을 직접 하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결혼한 첫 해, 자색양파를 한 박스 정도 얻게 되었는데, 다 먹을 때까지 양파가 싱싱하게 버텨주지 못할 것 같아 양파장아찌를 만들었다. 유리병에 담아야 곰팡이가 생기지 않고 오랜 기간 잘 보관할 수 있다고 하여 장아찌용 유리병도 구입하였다.
만드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1. 유리병을 끓는 물에 소독한다. 냄비에 어느 정도 물을 넣고 유리병 입구가 바닥을 향하도록 뒤집어 놓는다. 여기서 핵심은 ‘물이 끓기 전부터’ 유리병을 냄비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급격한 온도차로 유리병이 깨질 수 있다.
2. 양파 껍질을 벗기고 깨끗하게 씻어서 먹기 좋게 자른다. 무를 함께 넣어도 좋고, 오이를 넣어도 맛있다.
3. 간장 : 식초 : 설탕 : 물 = 1 : 1 : 1 : 1 비율로 넣고 끓인다. 컵으로 계량하면 편리하다. 나는 여기에 월계수 잎을 몇 장 넣었다. 끓이지 않고 바로 양파에 붓는 레시피도 있는데, 끓여서 부으면 간도 금방 배고 양파도 아삭한 식감이 유지된다.
4. 양파를 담아둔 유리병에 끓인 간장소스를 붓는다. 청양고추나 홍고추를 넣으면 맛도 좋고 보기도 좋다. 실온에서 반나절 정도 식히다가 냉장고에 넣는다. 중간에 한 번씩 뒤적거려주면 골고루 간이 밴다.
시댁에 처음 해드린 음식이 바로 이 양파장아찌였는데, 아버님과 어머님 모두 새콤하고 맛있다고 칭찬해주셨다.
그때부터 매년 봄마다 양파장아찌를 만들었다. 항상 시댁뿐만 아니라 친정에 드릴 것과 우리가 먹을 것까지 세 병을 만들었다. 양파 껍질을 벗길 때면 늘 눈물이 났고, 하루 종일 집 안에는 간장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뿌듯했다.
친정 엄마는 본인 끼니는 거르더라도 가족들이 먹을 국이나 반찬은 꼭 준비해놓고 출근을 하셨다. 어쩌다 주말에 친구분들과 약속이 있거나 결혼식 등 경조사에 참석하는 일이 있더라도 아침 일찍부터 주방에서 부지런히 식사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준비할 때부터 엄마는 내가 집안일을 못하게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면 평생 집안일해야 하니까 이제 친정집에서는 하지 마. 그리고 너 좋은 시절 다 갔어. 어디 나가려고 해도 남편 밥 신경 쓰일걸?”
엄마 말이 맞았다. 1~3월에는 평일에 학원 수업이 있는데, 저녁시간에 강의가 있으면 남편이 먹을 식사를 미리 준비해두고 학원에 갔다. 어떤 날은 음식을 하다가 시간에 쫓겨 정작 나는 쫄쫄 굶은 채로 학원에 가기도 했다.
가리는 것 없이 차려준 대로 잘 먹는 남편 덕분에 요리하는 보람이 있다. 특히 더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지만 내가 먹을 양을 남겨둔다고 참았다는 찬사를 들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남편은 빈말을 못하는 성격이라 본인 기준으로 맛이 없으면 절대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맛있다는 말을 안 해서 몇 번이나 되물어본 적이 있다. 결국 맛있다는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힘들게 음식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인은 라면을 먹어도 되고 도시락을 사 먹어도 된다고 말하지만 어쩐지 신경이 쓰인다. 시험 직전에는 요리를 할 여유가 없어 냉동식품을 데워주기도 하고, 심지어 남편이 밥을 차려주기까지 한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따뜻하고 맛있는 집밥을 챙겨 먹이고 싶다.
처음 우리집에 놀러 오는 손님이 있을 때에는 항상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했다. 메뉴는 주로 한식이다. 고기 요리와 각종 찌개를 메인으로 전을 부치고 밑반찬 몇 가지를 내거나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김밥이나 월남쌈 등을 만들기도 한다. 남편 친구들은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다고 좋아하면서도 준비하는데 고생했겠다며 다음에 올 땐 배달시켜 먹자고 말한다. 하지만 남편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닭볶음탕을 후다닥 만들어놓고 학원으로 도망간 적도 있다.
수험생활을 한다는 핑계로 자주 볼 수 없는 내 친구들이나 남편 친구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이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주로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에 만나는 것을 선호하지만, 나는 그때가 매주 시험 준비를 하고 모의고사를 보는 시간이라 얼굴을 비추기가 어렵다. 하지만 늘 당연하다는 듯이 시간을 맞춰준다. 남편도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부턴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것을 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시험이 끝나야 친구들을 만난다.
어른들께 식사 대접을 할 때는 신경 쓸 것이 많다. 어떤 것을 잘 드실지 메뉴 선정부터 고민하고, 간이 너무 세지는 않은지 걱정되어 남편을 불러다 간을 보게 한다.
시어머님이나 친정엄마에게는 한참 부족한 솜씨지만, 음식 솜씨가 좋아 아들 내외가 밥을 잘 챙겨 먹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해주신다. 엄마는 가끔 잔소리를 하면서도 늘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다. 교수님께서는 된장국이 맛있다며 국을 두 그릇이나 비우시며 이렇게 정성스러운 대접은 처음 받아본다고 하셨다. 소박한 내 밥상이 되려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예비사위에게 처음 집밥을 해준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엄마가 생각난다. 더 이상 간장 종지 하나 더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식탁이 꽉 찼는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음식들도 있었다. 하지만 뭐가 그리 부족하게 느껴졌던지 식재료를 사러 다시 집 앞 시장으로 나갔다. 직접 간을 몇 번이나 봐놓고 나를 불러다 한입씩 먹어보라며 기미상궁 역할을 시키기도 했었다.
그때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음식을 잘 먹지 않는 것 같으면 맛이 없나 걱정스럽고, 잘 먹어주면 또 음식양이 부족하진 않았는지 걱정한다. 요리를 하는 동안에도 음식을 먹어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음식을 다 먹은 후에도 맛있게 먹어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내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음식이 다시 나에게 더 큰 마음으로 돌아온다.
내가 하는 모든 음식은 엄마의 집밥이 기준이 된다. 찌개나 국이 어떤 색이 났었는지, 단 맛이 더 필요한지 아니면 짠맛이 더 필요한지 등등 늘 엄마의 음식의 색깔, 맛, 냄새를 떠올린다. 이제는 내가 한 음식이 엄마가 한 것과 제법 비슷한 맛이 난다.
아마도 닮아가는 것은 음식 맛만은 아닌가 보다. 아직 자식에게 밥을 해주는 엄마의 마음까지는 알 수 없지만, 밥을 하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