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활 25
남편은 많은 것들을 내게 맞춰준다. 밖순이인 내가 집안에 있는 것을 답답해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일단 집 밖으로 나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바로바로 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공부하다가 정리를 하려 일어나려 하면 "내가 할게."라며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남편에게 불만이 생기거나 잔소리를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런 남편이라도 내 잔소리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보통의 무뚝뚝한 아들들이 그러하듯 내 남편도 '자발적으로'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드리거나 찾아뵙지는 않았다. 연세가 많으시니 자주 연락드리고 찾아뵈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면, 대학원 시절에 자취할 때에도 일 년에 두어 번 본가에 갈까 말까 했다며 가서 할 것도 없고 심심하다고 말했다. 매주말 학원을 가야 하는 시즌이 되면 남편 혼자라도 시댁에 보냈었는데 밥만 먹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많았다.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면서도 정작 나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건강을 믿고 '내가 더 공부를 해도 기다려주실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초반 2년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우리에게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응급실을 다녀오셨었다. 넘어지셔서 허리를 삐끗하시거나 머리를 부딪히시거나 손목에 실금이 가는 등의 사고로 병원에 가셨고, 어느 정도 나은 후에야 이러이러해서 다쳤었지만 지금 거의 다 나았다 하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는 점점 병원에 가시는 횟수가 잦아졌고, 뒤늦게라도 응급실에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달려가는 일이 많아졌다. 올해에는 1차 시험이 있기 2주 전쯤 어머님이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코로나로 보호자 1인만 병동 안에 들어갈 수 있었고, 아버님이 어머님 옆을 지키셨다. 그때부터였다. '이제는 더 공부를 하면 안 되겠구나. 2세 계획도 더 이상 미룰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
어머님이 퇴원하시고 한 달 정도 뒤부터 아버님은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셨다. 비좁고 딱딱한 간이침대에서 2주를 주무셨던 것이 원인이거나 매일 가시던 헬스를 2주 쉬다가 오랜만에 가셔서 근육이 놀랐다고 생각했다. 동네 정형외과 여러 곳을 가봐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아 결국 큰 병원을 찾았고, 나도 응급실에 가셨다는 말씀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은 뼈에는 큰 이상이 없고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신장 기능과 관련된 수치(칼륨 수치였던 것 같다.)가 좋지 않으신 편인데, 이건 4년 전에 병원에 오셨을 때부터 그러셨다는 설명도 해주셨다. 추가 검사를 받거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물었더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말에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수험생활 때문에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선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었던 우리 부부는 이제야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올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일단 당분간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이제는 시부모님께 혹은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며느리가 수험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연락을 먼저 못하시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난 6월부터 프리랜서로 시작한 일도 수험생활을 그만둘 결심을 하는데에 힘을 보탰다.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다시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늘 절박하게 공부에 매진해왔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가 왔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꽤 적성에 잘 맞는다고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에도 안된다면 쉬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대학 입시나 로스쿨 입시, 변리사 시험 등 무언가를 준비할 때 내가 투입한 최대 기간은 2년이었다. 처음으로 장기간 하나의 목표를 보고 달려와보니 장수생이 왜 힘들다는지 이해가 되었다.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나 응용력이 초시생보다 높아지고 수험생활 요령도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점점 병든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있으니 이제 와서 포기하기는 아깝고, 합격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함을 장기간 안고 가는 동안 내 삶의 시계는 멈춰있는 느낌이고 늘 불안함과 싸워야 한다.
그렇게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비장하게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과 어머님이 4차 코로나 예방접종을 하셔서 몸 컨디션이 어떠신지 전화를 드렸는데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아이고, 주사 맞고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아빠가 허리가 계속 아프다고 그래서 밥도 잘 못 먹고 잠도 잘 못 자고 큰일이야. 나도 청심원 먹고 그러고 있다.”
헬스장에 가셨다가 삐끗하셨는데 정형외과에서 주사를 맞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도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일단 침을 맞았으니 경과를 더 보자면서.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 결국 아버님은 응급실에 가셨다. 2차 시험을 2주 정도 앞둔 때였다.
퇴근길에 병원에서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온 남편은 다음 날에도 추가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통증이 있는 허리 부분 시티를 찍어보기 위하여.
전 날 하루 종일 응급실에 보호자로 계시던 어머님은 몸살이 나셨고, 남편 혼자 아버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척추 마디 하나가 삯은 것 같다면서 주말에 엠알아이를 찍어보자고 하셨고, 잠시 아버님 먼저 나가 계시라고 한 뒤 말씀을 이어가셨다.
“모양을 보니 암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종양처럼 보이는 것이 척추를 누르고 있습니다. 점점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하반신 마비가 진행될 수 있어요. 하반신 마비를 막으려면 무슨 암인지 알기도 전에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연세가 많으셔서 수술을 하다가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만약 고형암이 아닌 혈액암이라면 약물치료가 가능하기는 합니다. 일단은 검사를 진행하면서 몸 상태를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망설이다가 이 사실을 내게도 털어놓았다. 이틀 뒤에 추가 검사를 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최근 통증 부위가 넓어지고 진통제가 효과가 없었던 점이나 부쩍 살이 빠지셨던 점을 생각하면 암이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밤부터 내 마음속의 지옥이 시작되었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정말 암이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척추에 문제가 있지만 금방 치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갖기도 했다. 이틀이 2년 같이 길게 느껴졌다. 남편 차에 스스로 걸어서 탑승하시던 아버님은 결국 거동 자체가 어려워지셔서 응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야 했다. 그리고 어머님은 아버님이 더 이상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입원을 위한 짐을 챙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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