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체교육 1
설 연휴가 지난 1월 26일 목요일,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앞으로의 직무교육 및 실무수습 과정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고, 가벼운 레크레이션과 함께 조원들과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직무교육 일정은 단체특강(모든 인원이 오프라인 교육에 참석)과 분반교육(세 개의 반으로 나누어 한 반씩 일정을 달리하여 오프라인 교육을 실시), 그리고 온라인 교육으로 나뉘는데, 오프라인 교육에서 자리 배정과 반 구성이 모두 ‘조’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2023년 연수교육은 총 33개의 조가 구성되었고, 한 개의 조는 15여 명의 인원이 배정된 듯하다.
모든 동기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직무교육이 ‘조’를 중심으로 진행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원들은 가장 친한 동기들이 된다. 첫 면접을 보았던 노무법인은 같은 조였던 동기들이 함께 개업을 했다고 설명해주시기도 했다. 꼭 개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일이 들어오면 친한 동기에게 넘겨주거나 모르는 것을 서로 물어보며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같은 조원은 앞으로 노무사로서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조... 괜찮을까?
오리엔테이션에 가기도 전에 걱정부터 되었다. 다른 조들은 조 배정이 나오자마자 카톡방을 파고 심지어는 오리엔테이션날 뒤풀이 약속까지 잡았다던데, 우리 조는 그 누구도 카톡방을 만들 기미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모두들 낯을 가리시나? 우리 조는 교육으로 만난 사이로 끝날 분위기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 또한 카톡방을 먼저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행히 오리엔테이션 날 레크레이션을 하면서 조장이 정해졌고, 자발적으로 조장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순순히 우리 조 단체카톡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마자 뒤풀이를 가자며 조원들이 대동단결하였다. 다음 날 여행이 예정되어 있던 나는 뒤풀이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밤 떠들썩한 카톡방을 보면서 우리 조 분위기는 걱정할 것이 아니었음을 직감하였다.
1월 31일, 본격적인 직무교육이 시작되었다. 500여 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장소를 섭외하기가 어려운 탓인지, 이번 교육은 원래 웨딩홀로 이용되는 연회장에서 진행되었다(예전에 결혼식이 있어서 와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문제는 원형 테이블이 배치가 되어 있어서 일부는 강연 단상을 등지고 앉을 수밖에 없었고, 긴 직사각형 모양의 공간이라 단상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는 강연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방의 벽에 스크린이 설치가 되어 있고 스크린에 강연 자료를 올려주긴 하였으나, 웅성웅성 거리는 소음 때문에 강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우리 조 테이블의 빈자리가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끝까지 자리를 지킨 최후의 몇 인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의 마지막 강연이 끝나갈 때쯤, 빈자리가 다시 채워졌다. 어딜 다녀왔기에 그렇게 친해져서 돌아온 걸까?
심지어는 수업이 모두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풀이 멤버를 결성했다. 나는 저녁시간에 PT가 잡혀있어서 이번에도 불참하였다. 몇몇 조원들은 술자리에 들고 가기엔 책이 너무 무겁다며 책을 테이블에 두고 강연장을 떠났다. 도대체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카톡방을 안 만들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잘 읽어야 한다. ‘일분일초’가 아니라 ‘일초일초’이다. 초 단위로 쪼개서 함께 놀자는 의지가 가득 담긴 우리 조원의 말이다. 이 글을 우리 조원 중 누군가가 읽는다면 신상이 털리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하지만, “1초1초 함께해.“라는 말 대신 우리 조의 텐션을 설명할 수 있는 그 어떤 말도 찾지 못했다.
단체특강 2일 차, 드디어 나도 뒤풀이에 참석했다.
어쩌다 한가운데에 자리를 하게 된 나는 좌로 우로 바쁘게 잔을 부딪혀야 했다. 나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랴, 쏟아지는 조원들의 신상정보들을 새겨들으랴 정신이 없었다.
2차로 자리를 옮겼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구석으로 대피했다. 끊임없이 조원들의 tmi가 쏟아져서 ‘내가 들어도 괜찮은 이야기일까?’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이제야 겨우 조원들의 이름과 나이를 머릿속에 입력했는데…
나는 낯을 가리는 편도 아니고, 처음 본 사람과도 큰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모임을 주도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도저히 조원들의 하이텐션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하이텐션의 원천은 합격의 기쁨일까?
영혼까지 탈탈 털린 그날의 여파는 이틀 동안 이어졌다. 깡생수를 들이부으며 겨우겨우 교육장에서 자리를 지켰고, 교육이 끝나면 얼른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리고 2월 6일부터 3일간의 분반교육이 시작되었다.
분반교육의 마지막 날, 우리 조는 스튜디오를 예약해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항상 다른 조에 뒤쳐져서는 안 된다는 경쟁심과 약간의 관종력을 가지고 있는 조원들은 칼 같이 흰+검 조합의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그 덕분인지 사진이 예쁘게 잘 나왔다.
사진을 찍은 후 뒤풀이가 이어졌다. 그동안 뒤풀이 프로 불참러였던 나는 이날만큼은 오래오래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참석했다.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가 이어진 자리였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의 끄덕임과 기쁨의 환호, 그리고 안타까움의 탄성 등이 함께 했다. 그리고 마음 깊이 느껴졌다.
‘하이텐션은 합격의 기쁨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구나. 앞으로 함께 할 파트너니까, 빨리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랬던 거구나!’
아직 1초1초 함께할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오래오래 함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