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3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올해 9월 말에 이전 집주인이자 세입자와의 전세계약이 만료될 예정이었고, 세입자가 이사를 나간 후 리모델링을 할 계획이었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래로 20여 년이 넘도록 이 집에서 살고 계셨기 때문에 집 내부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전체 리모델링이 필요한 상태일 것이라 짐작하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이곳에 살고 계셨을 노부부는 내후년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계셨다. 잠시 머물 집이라도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집으로 구하실 수 있도록 시간 여유를 두고 3월에 미리 입주 계획을 말씀드렸다. 남편과 아버님이 부동산에서 직접 만나 뵙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는데, 집주인이 원하는 때에 입주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집 내부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4월 말에 이사 갈 집을 구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8월에 2차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시험을 본 후 리모델링을 준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세입자가 5개월이나 일찍 이사를 나가게 되었고, 당시 살고 있던 집에서 결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라 급하게 리모델링을 한 후 바로 입주하기로 하였다.
결혼 전에는 자취를 해 본 적이 없었고 결혼 후에는 줄곧 전셋집에서 살았다는 핑계로 집 인테리어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 집, 내가 가꾸어야 할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구멍 난 방충망 하나 바꾸는 것에도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살고 싶은 집, 신혼집에 대한 로망이랄 것이 따로 없었다.
다행히 작년 가을 인테리어 관련 서적을 읽어둔 덕분에 리모델링 공정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 부부가 집에서 생활할 때의 패턴과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고민하며 레이아웃을 계획하고, 어떤 톤&매너의 인테리어를 선호하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오늘의집’과 네이버 카페 ‘셀프 인테리어’를 통하여 다른 집의 인테리어를 구경하였다. 그렇게 우리 부부가 꿈꾸는 우리 집에 대한 레퍼런스를 완성하였다.
[레이아웃]
1. 주방 : ㄷ자 싱크대 시공.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여기저기 꺼내놓고 요리할 수 있는 넓은 조리공간을 원했다. 그래서 ㄷ자 싱크대를 시공하기로 하고, 대신에 좁은 주방이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상부장은 정면에만, 측면에는 선반을 두기로 하였다.
2. 거실 : 발코니 확장. 폴딩도어를 설치할지, 확장을 할지 고민하였으나 확장을 해야 공간 활용하기가 용이하다고 하여 발코니를 확장하기로 하였다. 주방이 좁아 테이블을 둘 수 없다고 판단하여 거실 발코니를 확장하고 그 자리에 테이블을 배치하였다.
3. 안방 : 가벽을 세우고 침실과 드레스룸 구분. 구축 아파트는 안방이 굉장히 넓다. 우리 부부는 잠자는 시간이 아니면 침실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기 때문에 넓은 안방을 침실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가벽을 세워서 가벽 너머 공간에는 시스템 옷장과 화장대를 제작&설치하여 드레스룸으로 만들었다.
4. 주방 옆 베란다 : 주방에서 보일러실 사이의 공간을 확장. 터닝 도어를 최대한 보일러실 쪽으로 밀어서 설치하고, 확장된 베란다 바닥에는 강마루를 깔고 수납장을 짜넣었다. 주방 수납공간도 확보하고,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할 수 있는 보조주방으로 활용할 수 있다.
5. 안방 옆 베란다 : 붙박이장 철거 후 배수 작업. 베란다에 있던 붙박이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워시타워를 두었다. 그리고 안방 화장실을 통해 배수할 수 있도록 배수관 시공도 하였다.
6. 주방 옆 방 : 책상과 책장 배치. 재택근무를 종종 하는 남편과 수험생인 나에게 꼭 필요한 서재로 꾸몄다. 베란다가 확장되어 있어서 책상 두 개를 놓기에 충분하였다.
7. 현관 옆 방 : 옷장과 책상 배치. 계절이 지난 옷이나 이불을 보관할 수 있는 옷장, 스타일러를 두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상을 배치하였다. 이후 아기가 생기면 가구를 바꾸기 쉽도록 기성 가구를 놓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톤&매너]
다른 집들을 구경하다 보니 심플하고 자연스러운 화이트&우드 컨셉의 집이 가장 예뻐 보였다. 무채색 계열의 옷만 고르는 남편과 simple is the best를 외치는 나에게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포인트를 주는 인테리어는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가구를 알아보면서 우리가 월넛톤 우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 벽 : 기본적인 화이트 벽지. 디자이너님의 추천으로 안방은 따뜻한 느낌의 아이보리 톤, 서재방은 깔끔한 그레이톤 벽지로 선택하였다.
2. 마루 : 월넛톤->자연스러운 우드톤. 구정마루의 허니티크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화이트 혹은 월넛톤이 아닌 가구는 매치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구정마루 ‘스카치오크’를 시공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너무 밝거나 어둡지 않은, 나무의 단면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우드톤의 마루이다.
3. 가구 등 : 월넛톤. 현관 중문, 주방 싱크대, 안방 가벽, 거실장 등은 월넛톤으로 선택하였다. 특히 우드 컨셉의 주방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주방 싱크대가 현관 중문과 동일한 필름으로 시공되어 집 전체적인 컨셉이 통일되는 효과가 있었다.
4. 타일 : 현관, 베란다, 공용욕실은 베이지 / 주방은 화이트 / 안방 욕실은 알록달록 테라조 타일. 화이트&우드 컨셉에 잘 어울리는 베이지와 화이트를 기본적인 타일 색상으로 정했다. 안방 욕실은 아기자기한 느낌이 날 수 있도록 테라조 타일을 계획했지만, 알록달록한 것은 엄두도 못 내고 그레이 테라조 타일 사진을 저장해두었다. 디자이너님이 알록달록한 테라조 타일을 추천해주셨고 안방 욕실은 우리 집에서 가장 알록달록한 공간이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만족스럽다.
5. 기타 : 책장과 책상, 소파, 거실 테이블 등은 화이트나 밝은 베이지, 화이트 오크 등 어디에나 어울리고 유행을 타지 않는 색상으로 구입하였다.
그 외에도 평탄화한 거실 천장에 실링팬을 설치한 사진이나 9mm 문선으로 시공된 문 사진 등 원하는 컨셉의 사진을 정리하여 레퍼런스를 만들었다.
레퍼런스를 미리 만들어두면 업체와 미팅을 할 때에 구체적인 시공 방법이나 견적 등을 알 수 있고, 이후 레퍼런스를 통해 파악한 내 취향에 맞추어 디자이너님이 새로운 제안을 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된다.
리모델링을 준비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리모델링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1. 리모델링 업체에 관한 후기나 정보를 찾기가 어렵고, 2. 견적에 대하여 통일된 기준이 없으며, 3. 내가 원하는 공사 일정과 업체의 공사 가능 일정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부부는 5월에 공사하여 6월에는 입주하는 일정을 원했으나(8월에는 시험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입주하고 싶었다.) 3월 말에 업체를 찾다 보니 5월에 일정이 비어 있는 업체를 찾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열 군데가 넘는 업체와 컨택을 하였으나 5월 혹은 늦어도 6월에 공사할 수 있는 업체는 네 곳으로 추려졌다.
우선 ‘오늘의집’과 ‘네이버 리빙’, 네이버 카페인 ‘셀인’을 통하여 다양한 업체 정보를 수집하였다.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로 시공이 된 집들을 찾아서 어떤 업체를 통해 리모델링을 하였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실제 리모델링을 한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았으나, 리모델링 업체에 대한 후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열심히 검색하다 보면 평당 가격을 기준으로 업체를 분류해놓은 글이 나오기도 한다(안타깝게도 해당 글은 이후에 삭제되었다.).
그리고 업체와 컨택하기 전에 시공의 우선순위를 정해두는 것이 좋다. 코로나 시국에는 사람들이 집에 쓰는 돈이 커지면서 리모델링 비용이나 가전, 가구 가격이 많이 올랐다(물론 중국 공장들이 셧다운 되면서 자재비도 많이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예산 범위 내에서 원하는 시공을 다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샤시나 바닥 등이 한 번도 교체된 적이 없었으므로, 일단 1. 샤시, 바닥, 벽, 붙박이, 화장실, 주방 등 모두 철거 후 샤시 교체, 마루 시공 및 도배를 최우선 순위로 두었고, 그다음으로 2. 화장실 타일 및 도기, 주방 싱크대 시공, 3. 거실 베란다 확장 및 안방 가벽 세우기 순으로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리고 현관 중문이나 실링팬 설치, 주방 베란다 확장 및 세탁실 배수관 작업 등은 업체와 직접 미팅을 하면서 비용을 확인하고 확정 지었다. 기타 안방 가벽 템바 보드 시공이나 현관 유리블록 시공 등은 이후 업체의 제안을 받고 진행하게 되었다.
업체 정보를 수집하고 시공의 우선순위를 정한 후에 업체들을 컨택하였다. 주로 전화로 문의를 하는 경우가 많고, 업체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거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정한 양식에 맞추어 신청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컨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전화로 컨택하면 바로 공사 일정이나 대략적인 견적을 확인하여 바로 미팅을 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기타 다른 방법으로 컨택을 하면 짧게는 2~3일, 길게는 몇 주간 연락을 기다려야 한다(심지어는 끝내 연락이 오지 않은 곳도 있다.).
업체에 방문하여 미팅을 한 곳은 총 네 곳이었다. 전문 디자이너가 계신 곳들만 컨택을 하였고, 미팅을 할 때에는 디자이너를 비롯한 책임자(대표, 실장 등)가 참여한다.
준비한 레퍼런스를 보여드리고 어떤 시공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 설명을 드리면, 업체 측에서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구조적인 제안을 해주기도 한다. 특히 우리 집과 같은 구축 아파트는 주방이 좁아서 다이닝 공간을 두기 어려우므로, 별도로 다이닝 공간을 만들거나 주방의 위치를 변경하는 등의 구조를 제안해주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리모델링 후 10년 이상 살 계획이었으므로 이후 아이와 함께 거주하게 될 것이어서 아이방이 있어야 했고, 한편으로는 이 집을 매도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섣불리 파격적인 구조 변경을 시도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누수가 발견되거나 천장이나 바닥상태가 안 좋아 보강하는 공사를 진행하는 등), 세부적인 마감재들을 선택하고 결정하여야 하므로, 업체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하다. 꼭 필요한 시공이더라도 큰 비용이 드는 것을 나와 상의도 없이 하거나 내가 원하는 마감재를 잘 설명하였다고 생각했지만 엉뚱한 제품이 시공되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또한 아무리 꼼꼼하게 리모델링을 준비하고 계획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세부적인 모든 것을 사전에 결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나의 취향에 맞추어 적절한 마감재나 디자인 등을 제안해줄 수 있는 업체인지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미팅 후에는 업체에서 대게 일주일 안에 견적서를 보내준다.
자재비용이나 인건비 등 세부 견적이 나와있는 견적서를 보면 업체마다 세부항목의 비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는 업체에서 마진을 각 공정에서 남기는지, 전체 공사 비용에서 남기는지에 따라 세부항목의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업체별 견적서를 비교하기 위하여 우리는 비슷한 등급의 자재를 기준으로 견적을 받아보았다. 이를테면 샤시는 어떤 제품으로 할 것인지(LG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 제품 라인이 있다.), 타일은 어떤 소재의 어느 정도 크기의 것을 시공할지, 마루는 무엇으로 할지, 도기나 수전은 어느 회사 제품으로 할지 등을 미리 정하여 견적에 반영하였다.
그렇게 견적서를 비교해보면 아주 유명한 몇몇 업체들을 제외하고는 견적이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결국에는 업체의 디자인 감각이나 공사 마감의 완성도가 타 업체보다 경쟁력이 있는지,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해당 업체와 리모델링을 진행할 용의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물론 견적비용이 예산 범위 내에 타이트하게 들어오거나 예산을 초과하는 경우 비용이 업체를 선택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고 완성도가 높은 곳으로 선택하기로 하였다. 어차피 큰돈을 들여야 한다면 마음에 쏙 드는 결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의집 및 네이버 리빙에서 리모델링 후기를 통하여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고, 디자인 감각도 뛰어나며, 이후 A/S도 보장된다는 ‘에이프릴트리’라는 업체를 알게 되었고,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업체 및 디자이너님의 인테리어 컨셉이 내 취향과 잘 맞는다고 느꼈다. 실제로 미팅을 할 때에는 대표님께서 집 구조와 관련하여 실용적이면서 심미성도 살릴 수 있는 제안들을 해주셨으며, 디자이너님은 미리 메일로 보내드린 레퍼런스를 통해 내 취향을 저격한 디자인 제안을 해주셨다. 기대 이상으로 손발이 척척 맞는 미팅을 하고 나니, 굳이 견적을 받지 않아도 이 업체와 함께 리모델링을 진행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