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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Sep 16. 2019

그 어디, 첫번째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이불 속에 잔뜩 웅크린 채 의미 없이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다. 어둠 속에 노란 휴대폰 불빛만이 내 얼굴을 비춘다. 의미 없이 인스타를 켰다. 습관처럼 내 오른손 엄지는 좋아요를 누르며 내려간다. 무슨 사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의 행복한 모습, 성취한 일들의 자랑, 자세히 보고 싶지도 않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인스타를 구경하다 낯이 익은 여자가 보인다. 아이디를 눌러 계정에 들어간다. 몇 년 전 학교에서 몇 번 마주친 여자이다. 예뻐서 몇 번 본 걸로도 기억에 남은 여자애다. 그녀는 여전히 자몽 같은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고 옆엔 남자도 있다. 결혼도 했나 보다. 결혼반지는 까르띠에에서 했네. 결혼식장은 선릉역 근처. 지난해에 했구나. 남편은 지방 사람인가 보다. 명절에 KTX 속에서 손을 꼭 잡고 찍은 사진이 있는 걸 보니. 


  직장은 광화문이고 마케팅 일을 하나보다. 오늘은 종로에 직무 관련 강연도 듣고 온 걸 보니 일에 꽤 열정이 있나 보다. 위치 태그가 YMCA 근처다. 우리 회사랑 꽤 가까운데 퇴근길에 우연히 마주쳐서 얼굴이나 한번 봤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스친다. 출근은 집이랑 회사의 거리가 멀어 7시쯤 집에서 나오고 퇴근은 보통 8시. 야근 없으면 가끔 요가도 가는 것 같다. 


  지난 주말엔 중학교 친구 3명이랑 을지로에 갔나 보다. 만선 호프에서 찍은 삐쩍 마른 노가리가 그릇 위에 잔뜩 힘을 준 채 누워있다. 친구들이 남긴 댓글을 보니 그날 술을 많이도 먹었나보다. 이번 여름휴가는 남편이랑 나트랑에  다녀왔다고 한다. 오키나와에 가려고 티켓을 끊어놨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취소했단다. 아쉽지만 베트남으로 위로받았단다. 머리는 항상 집 근처인 잠실 준오 헤어에서 하고 엄마와 함께 간다. 가족사진은 엄마와 남동생뿐이다. 엄마와 남동생만 서로 닮은 걸 보면 그녀는 아버지를 닮았나보다.


  500장에 달하는 그녀의 사진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첫 번째 사진이다. 뭔가 아쉽다. 태그 되어 있는 남편의 인스타를 들어가 볼까 하다가 그녀의 프로필에 링크되어 있는 블로그 주소를 누른다. 닉네임이 호두언니다. 문득 상단의 시계를 본다. 벌써 4시다. 너무 늦었다. 내일 출근길에 볼까 지금 보고 잘까 잠시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끈다. 이상하게 잠이 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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