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수를 헤아려보니 16년이나 학교를 다녔다. 인생의 절반 이상이다. 취업 준비와 자기계발을 위해 다닌 외국어 학원까지 더하면 대략 18년 동안 학생 노릇을 한 셈이다. 그 기간 동안 스쳐 지나간 수많은 선생님들을 떠올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그들을 분류해 기억하고 있었다. 그 분류는 간단하게 좋은 선생님, 나쁜 선생님, 별난 선생님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 선생님은 세 번째 ‘별난 선생님’ 카테고리에서 몇몇 분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계신다.
고등학교 2학년 교육학 시간이었다. 내신 비중이 굉장히 낮은 수업이었기에 공부 꽤나 한다는 아이들은 국영수 책을 펴고 몰래 다른 공부를 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눈치껏 모른 척해주는 성적 위주의 그런 학교였다.) 어중간한 성적의 아이들은 괜히 딴짓하다 걸리면 혼쭐나는 수가 있기 때문에 창피를 당하기 싫어서라도 적당히 교육학 책을 펴놓고 멍을 때리는 게 현명한 방법이었다.
3월 첫 주, 익숙한 주요 과목들의 첫 수업이 지나가고 교육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의 첫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실 앞문이 열리고 말끔한 정장 차림의 그가 들어왔다. 꽤 준수한 외모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는 그이의 희끗한 흰머리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첫인상과 일맥상통하리란 법은 없었다. 그는 누구도 물어보지 않은 자신의 종교관을 스스로 밝히며 교회 이야기로 첫 수업의 절반 이상을 채웠다. 나는 그가 첫 수업이었기에 할 말이 없어서, 혹은 자신의 종교관만큼은 꼭 밝히고 싶은 이유가 있어서,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 말이나 하다 보니 정말 아무 말이나 나온 것일 수도 있다며 마음속으로 그를 변호했다. 그러나 그의 유별난 하나님 사랑은 1학기가 지나도록 변함이 없었고 어떻게든 편을 들어 주고 싶던 내 마음은 얼마 못가 무색해졌다.
그는 자신이 교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믿음의 상태이고, 온 가족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매시간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그 믿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들 앞에서 방언까지 선보였다. 티브이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에 모두들 신기해했다. 가끔 다른 수업 시간에 옆 반에서도 그의 방언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하나님 사랑은 우리 반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얼마 후 교무실에 말이 들어간건지 그의 방언은 뜨문뜨문 볼 수 있는 진귀한 장면이 되었다.
당시 우리 반에는 꾸러기들이라고 귀엽게 표현하기엔 조금 짓궂은 무리가 있었다. 만우절 날, 얼굴을 잘 붉히는 남자 수학 선생님에게 “선생님, 교탁 밑에 그것 좀 꺼내주세요.”라고 장난을 칠 정도였으니 낭랑 18세도 이런 명랑한 18세가 없었다. 교육학 시간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교무실 눈치를 보느라 몸을 사리는 그의 입에서 방언이 터지도록 유도하는 건 그 꾸러기들의 하루 미션 같은 거였다. 그가 두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듯 방언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미션에 성공한 아이들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고 허벅지를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