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거도 서러운데 눈치도 봐야해
감기몸살에 걸렸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이가 아래 위로 딱딱 부딪히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아직 더위가 한창인데
옷장 깊숙이 넣어놨던 내복을 찾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이번 감기는 독했다.
머릿속에 파리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
윙 소리가 가시질 않고 귓가에 맴돌았다.
앉아있지만 온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지하철을 타고,
수 많은 회사원들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다,
5초 후에는 기억도 못 할, 옆에 앉은 직원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식은 땀을 흘렸다.
집에 가야한다!
나는 조퇴를 해야만 했다.
늘 나를 못마땅해 하는 대표와 눈을 맞추며 왜 내가 지금 당장 조퇴를 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해야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훅훅 입술에 와 닿는 콧바람이 뜨거웠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나는 내 방에 몸을 좀 누여야 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냉랭한 목소리가 답했다.
문을 다 열기도 전에
“몸이 너무 안 좋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라고 쏜살같이 말했다.
대표가 제대로 들었는지 장담할 수 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그의 한 마디에 내 하루가 달려 있었다.
몹시 긴장이 됐다. 그 순간만큼은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표는 한참 애매하게 열린 문 옆에 달라붙어 주절거리는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콧잔등까지 내려앉은 금테 안경을 고쳐쓰며 “가봐.”라며 무심하게 말했다.
‘차라리 내 눈에 띄지 마’에 더 가까운 말투였지만,
어찌됐든 나는 예상 밖으로 수월하게 조퇴를 했다.
회사를 나오자마자 두 블록 쯤 떨어진 대로변에 있는 내과, 이비인후과에 차례로 들렀다.
두 병원이 한 건물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치료를 마쳤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쉬는데 ‘비잉’ 하늘이 돌았다.
어서 집에 가야했다.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한 택시 기사가 내 앞에 섰다.
약 기운이었는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이미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갔다 들어오면
손, 발은 꼭 씻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지만
오늘은 예외다.
침대로 직행해 푹 고꾸라졌다.
옷을 벗을 새도 없었다. 일단 쓰러졌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집안의 한기가 온몸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