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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 Oct 09. 2017

을이 아우성(1)

아픈 거도 서러운데 눈치도 봐야해

감기몸살에 걸렸다. 

가만히 누워있어도 이가 아래 위로 딱딱 부딪히며 괴상한 소리를 냈다. 


아직 더위가 한창인데 

옷장 깊숙이 넣어놨던 내복을 찾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이번 감기는 독했다. 


머릿속에 파리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 

윙 소리가 가시질 않고 귓가에 맴돌았다. 

앉아있지만 온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뭐에 홀린 사람처럼 지하철을 타고, 

수 많은 회사원들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다, 

5초 후에는 기억도 못 할, 옆에 앉은 직원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식은 땀을 흘렸다. 


집에 가야한다!

나는 조퇴를 해야만 했다. 


늘 나를 못마땅해 하는 대표와 눈을 맞추며 왜 내가 지금 당장 조퇴를 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해야하는 과정이 너무 귀찮았지만,


숨을 쉴 때마다 훅훅 입술에 와 닿는 콧바람이 뜨거웠다. 

지금 이 순간, 어떤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나는 내 방에 몸을 좀 누여야 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냉랭한 목소리가 답했다. 

문을 다 열기도 전에 

“몸이 너무 안 좋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라고 쏜살같이 말했다. 

대표가 제대로 들었는지 장담할 수 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그의 한 마디에 내 하루가 달려 있었다.

몹시 긴장이 됐다. 그 순간만큼은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표는 한참 애매하게 열린 문 옆에 달라붙어 주절거리는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콧잔등까지 내려앉은 금테 안경을 고쳐쓰며 “가봐.”라며 무심하게 말했다. 


‘차라리 내 눈에 띄지 마’에 더 가까운 말투였지만,

어찌됐든 나는 예상 밖으로 수월하게 조퇴를 했다. 


회사를 나오자마자 두 블록 쯤 떨어진 대로변에 있는 내과, 이비인후과에 차례로 들렀다. 

두 병원이 한 건물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치료를 마쳤다. 

처방전을 받아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쉬는데 ‘비잉’ 하늘이 돌았다. 


어서 집에 가야했다. 때마침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한 택시 기사가 내 앞에 섰다. 

약 기운이었는지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이미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갔다 들어오면 

손, 발은 꼭 씻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엄마의 잔소리를 들었지만 

오늘은 예외다. 


침대로 직행해 푹 고꾸라졌다. 

옷을 벗을 새도 없었다. 일단 쓰러졌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집안의 한기가 온몸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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