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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Dec 15. 2021

《저는 은행 경비원입니다 - 히읗 에세이》

이제는 일 년에 은행가는 일이 손에 꼽지만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 항상 먼저 다가와 ‘어떤 업무로 방문하셨어요?’라고 물으며 은행 업무를 도와주는 분이 있다. 우체국에 택배를 보낼 때도 느낀다. 우체국 금융 경비원이라 불리는 분이 항상 우편물 송장 작성이나 택배 박스 정리를 도와주신다. 어릴 때 은행에 가면 허리춤에 찬 총이 진짜 총일까 궁금하면서도 무섭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분들의 업무는 공간을 지키는 일보다 안내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히읗 작가의 에세이 《저는 은행 경비원입니다》를 읽었다. 작가가 비정규직으로 2년 3개월 동안 은행 경비원으로 일하며 쓴 책이다. IMF 이전에는 은행에서 정규직으로 청원경찰을 고용했지만 비정규직이 합법화된 이후로는 언제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용역 경비원으로 변경되었다. 나이 든 어르신의 ATM 업무, 고객의 동전교환과 공과금 납부를 도우며 은행의 주요한 업무를 하지만 (실제로는 은행 경비원이 하는 일들은 경비업법으로 불법적인 일이라고 한다) 6개월 혹은 1년에 한 번씩 계약을 다시 해야 하는 비정규직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정규직이 되는 희망은 없다. 비정규직은 언제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르고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조건에 일하겠다는 사람 있다더라”라고 망언을 하는 대선후보도 있다. 그들이 왜 최저임금보다 낮은 돈을 받고도 그 일을 할 수밖에 없는지, 노동의 공정한 대우와 처지를 말하지도 못하고 일하는지 비정규직으로 일해보지 않아도 안다. 산업재해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그 일을 대체할 사람이 있으니 또 고용하면 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도 4대보험이 적용되는 시대에 평생 비정규직으로 4대 보험을 가입해 본 적 없는 우리 아빠도 있다. 누구에게나 허리를 굽히고 존대를 하는 것이 버릇이 돼서 가끔 사위인 남편에게도 존대를 하는 아빠 목소리를 들을 때면 못된 마음이 뒤틀려서 화가 난다. 책을 읽으며 아빠가 그동안 나 모르게 겪었을 수모와 멸시가 상상돼서 괴로웠다. 환갑을 넘겨도 은퇴도 못하고 아직도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아빠는 오늘도 자신을 찾는 전화를 놓칠까 이어폰 한쪽을 끼고 일하고 있을 것이다. 쓰다 보니까 또 성질이 나서 더 못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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