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학교에서 시력이 낮으니 안과에서 다시 검사를 받으라는 결과지를 가지고 왔다. 작년 검사에도 큰 문제가 없었기에 일시적으로 측정이 잘 못 된 거겠지 생각하고 가벼이 생각했지만 제대로 시력 측정을 받는 것도 좋겠다 싶어 소아안과를 찾았다. 아이의 시력을 측정하는 검안사는 “아이 시력이 양쪽 다른 건 알고 계셨죠?” 하고 물었다. 나는 이때부터 병원에서 아무 대답도 확실히 하지 못했다.
시력검사 측정을 하고 좀 더 정확한 정밀검사를 위해 병원에서 3시간을 대기했다. 산동 검사라는 것을 받았는데 눈의 내부 구조 이상을 검사하기 위해 안약을 넣어 동공을 강제로 키운다. 동공확장으로 사물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한 아이는 내 옷자락을 붙잡지 않고는 제대로 걷기도 어려워했다. 간호사는 며칠간 눈부심이 심하고 사물이 흐릿하게 보일 거라고 했다.
의사는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은 부모의 책임이라고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만 10세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의 아이는 벌써 만 9세가 넘었지 않느냐고 앞으로 아이의 인생에서 시력으로 인해 선택하지 못하는 직업은 모두 내 잘못인 것처럼 말했다. 의사는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내가 느끼는 죄책감으로 그렇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냐며 당장 오늘부터 안경을 쓰고 가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시력이 좋아지는 것은 장담할 수 없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시력이 더 나빠질 거라고. 아이는 병원을 방문한지 몇 시간 만에 약시와 원시를 판정받았다.
하루에 3시간씩 잘 보이는 눈을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눈의 시력을 높이는 가림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안 보이는 눈의 시력을 높이기 위해 잘 보이는 눈을 가리는 치료방법이다. 안경점 아저씨는 아이가 보이는 세상이 이렇다며 나에게 안경을 씌워주었다. 아무것도 선명하지 않고 흐릿한 형체뿐이었다. “엄마, 나 헬렌 켈러가 된 것 같아!” 나는 그제야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이의 말로 깨닫는다. 그동안 왜 안과에서 제대로 시력 측정을 받아보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낄 틈도 없이 불안하고 걱정이 많아진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당장 내일부터 학교는 어떻게 갈 것이며,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등교를 하는 것이 괜찮을지 생각해야겠다.
부모의 역할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다시 나에게 되돌아왔다. 자녀가 40이 넘어서도 내가 부모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의사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 역시 나이가 40이 넘었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처음이라 여전히 부딪치고 깨지면서 배운다, 한 생명을 돌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사랑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이렇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