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서울여행, 빨간 벽 그 너머의 세상

by 발걸음
빨간_벽_-_브리타_테켄트럽,_김서정_옮김_(1).jpg
빨간_벽_-_브리타_테켄트럽,_김서정_옮김_(2).jpg

짧고도 긴 여행에서 돌아오며 우리는 ‘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그동안 떠나지 못했던 것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은 벽이 아니었을까. 아내의 역할, 엄마의 역할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를 많이 잃어버렸다. 아이를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해야만 존재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왜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왜 내가 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 일상에서 안간힘을 쓰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그토록 애썼는데 스스로 떠나야만 찾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느끼고 싶은 것이 많았다. 감탄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나의 든든한 울타리 같은 가족을 떠올리지 않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했다. 30년을 살았던 도시에 10년 만에 돌아와 두리번거리며 자주 하늘을 올려다봤고 도시를 내려다봤다. 내가 나로서 비로소 두 발을 딛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가슴이 찡했다. 더 천천히 걷고 느끼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시간을 아끼려고 종종거렸다.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에 자주 웃음이 났다. 내가 이곳을 언제 걸었고, 누구와 함께 왔었고 또 지나쳤었지. 그곳에는 내가 있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사는 삶이 아닌 오롯이 나로 살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떠났던 것이다.


‘네 인생에는 수많은 벽이 있을 거야. 어떤 벽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지만 대부분은 네 스스로 만들게 돼. 하지만 네가 마음과 생각을 활짝 열어 놓는다면 그 벽들은 하나씩 사라질 거야. 그리고 넌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발견할 수 있을 테고.’


여행을 함께한 친구와 나는 동시에 같은 그림책을 떠올렸다. 우리는 꼬마 생쥐였다고 우리에게 이번 여행은 빨간 벽을 넘는 첫 번째 경험이라고 말했다. 빨간 벽 너머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다. 어쩌면 간절하게 찾고자 하는 ‘내’가 있을지도 모른다. 벽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벽을 넘지 않으면 절대로 만날 수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의 꿈꾸는 눈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