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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Jul 15. 2022

로스트 도터,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떠나는 하루

기억을 떠올려보니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가서 영화를 봤던 게 2012년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영화관에 가보고 여태 한 번도 영화관에 안 가봤다. 좁고 막힌 공간에 있으면 생기는 불안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한 편 마음 편하게 볼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고 영상 디자인을 전공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은 잊은 지 오래다.

<로스트 도터>에 대한 시사회 후기를 보고 영화관에 가서 꼭 보고 싶었다. 대전에는 상영관이 많지 않아 아이를 등교시키자마자 지하철을 타고 다른 동네까지 가서 영화를 봤다.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과 모성의 희생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내 모습 같았다. 주인공 레다의 젊은 시절 모습 중 어떤 부분은 나와 너무 똑같아서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나는 큰 소리를 내는 것도 싫어하고 싸우는 것은 더 싫어하고 화도 잘 내지 못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이에게 당연하게 할 때가 있다. 아이가 나에게 가장 약자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돌아서서 스스로 미친년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순간의 감정일 뿐, 놀란 아이의 눈빛과 쏟아내는 울음을 보면 내 잘못을 뒤돌아보고 사과하고 후회하고 자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내 팔에 매달려 사랑을 쏟아내는 아이를 바라보면 한없이 내가 초라하고 미워진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었지만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언제나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나는 늘 부모의 빈자리를 느끼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아빠는 공사현장에서 밤낮없이 일하느라 집에 없었고, 엄마도 늘 집에 없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빈집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싫었고 식탁에 놓여있는 돈은 더 싫었다. 아빠도 엄마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잠들 때면 창문을 모두 꼭꼭 잠그고, 불을 다 켜놓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까지 눈을 비비며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남편도 없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얼마나 도망치고 싶었을까. 그런데 엄마는 정말 자주 도망쳤고 다시 돌아왔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아이가 혼자 빈집에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꾸역꾸역 아이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이유도 그렇다. 아이가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약속한 책임이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도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깨달았지만. 나는 정말 인내심이 부족한 인간임을, 뼛속까지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임을 매 순간 부딪치며 배운다.

아이가 태어나고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아이가 잠들면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아이는 분명 축복이고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임은 틀림없지만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는 일상은 그저 노동일뿐이다. 대부분 그 노동의 가치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기에 점점 자신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견디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어느 날은 몸이 너무 아프고 아이가 자지러지게 우는 모습을 바라보다 그냥 창밖으로 뛰어내리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영화 속 니나처럼 지금 이 시간이 지나가기는 할까 계속 나에게 물었던 시간이었다.

스스로 그런 생각까지 했다는 사실에 놀라서 나는 그때부터 밖으로 나갔다. 혼자 장을 보러 다니고, 혼자 도서관에 가고, 혼자 문화센터에 다니고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마음의 에너지가 채워지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서울로 가는 기차가 나를 위해 선물하는 시간이다.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고 기차에 올라탄 순간 나는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내가 된다. 군중 속에 존재감 없는 노바디여도 나는 내 의지대로 걷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내가 먹고 싶은 순간에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의무나 책임 따위는 없다. 그저 자유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발바닥이 아프도록 걷고 또 걸어도 서울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다.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혼자 보내고 나면 얼른 집에 돌아오고 싶어진다. 현관문까지 달려 나와 나에게 손을 흔드는 아이의 곁으로, 잘 다녀왔냐며 기다리고 있는 남편 곁으로. 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서울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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