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걸음 Aug 01. 2022

아빠로부터

죽음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삶이 있다. 내게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던 아빠의 삶이 그렇다. 아빠의 장례를 통해 아빠가 알아온 사람을 만났고, 아빠와 함께 일한 동료를 만났고,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아빠의 형제들을 만났다. 그제야 아빠의 고단함이, 외로움이, 처절함이 인생에 녹아있음을 알았다. ‘죽음’이라는 극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지금껏 모른척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 여사의 십 주기 기념 제사를 하와이에서 지내자는 큰 딸의 제안으로 삼대의 가족이 하와이에서 엄마를, 할머니를 기억하고 추억하며 자신을, 관계를 돌아보는 이야기다. 심시선은 작가이자 화가로 이름을 남긴 사람이지만 여성으로서 억압과 폭력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지켰던 사람이다. 가족이 몰살당한 상황에서 혈혈단신 하와이로 위장 결혼해 자신의 목숨을 지켰으며 가스라이팅, 그루밍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온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위대한 예술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마녀 같은 여자라도 비난할지라도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자신의 뿌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가족을 이루고 커리어를 시작한다. 세월의 풍파를 겪고 너그러워 진 지혜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이름처럼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굽히지 않는 그녀의 삶은 가족이 그녀의 인생과 삶을 뒤돌아보며 용기와 위로를 얻는다.



책을 읽으며 나에게도 아빠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유산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전적인 유산이 아니라 아빠의 삶으로 이어받은 인생의 가르침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빠를 좋아하고 존경하던 순간보다 미워하고 무시하던 시간이 더 길었다. 아빠의 직업을 창피해하고, 아빠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고, 없는 사람 취급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아빠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노력하며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것. 아빠가 거친 손으로 매만진 바닥의 콘크리트처럼 내 삶의 바닥을 아빠가 단단하게 지켜주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도 아빠처럼 단단해지고 싶다. 수시로 흔들리는 유약한 마음도, 계절마다 호되게 아프고 계절을 통과하는 약한 몸뚱이도 튼튼해지고 싶다. 그럼에도 선한 마음을 잃지 않아 때로는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무시당해도  참아내고 버텨냈던 그 강인한 마음을 이제라도 배우고 싶다. 아빠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이렇게 글로만 아빠를 만난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아빠와 가보았던 통영에 다시 가볼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배운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