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조차 흔하지 않은 시절, 우리 가족은 중요한 날에만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는 일회용 카메라, 그 사진의 대부분은 내 어린 시절이다. 동생은 둘째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사진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함께 찍은 사진이 얼마나 되나 사진첩을 열어 세어보았다. 내 나이가 40이 넘었는데 아빠와 찍은 사진이 5장도 남아있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의 사진이 이토록 중요한 기록이 되는구나 싶어 나는 그 뒤로 서랍 속에 먼지 쌓여가는 필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다시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었던 날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사진을 보고 추측할 뿐이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아빠는 쉬는 날이 없었다. 지금이야 주 5일 근무니 40시간 근무이니 하는 노동시간이 지켜지는 현장이 많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아빠는 그런 기준조차 없던 건설노동자였다. 아빠가 쉬는 날은 비가 와서 작업을 할 수 없거나, 겨울이 너무 추워서 현장에 나갈 수 없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빠가 다쳤을 때뿐이었다. 아빠는 보통 새벽까지 현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다시 옷을 갈아입고 일을 하러 나갔다. 아빠는 덜커덩거리는 철문을 열고 닫으며 잠든 아이들의 모습만 간신히 보며 살았을 것이다.
사진 속의 날은 그런 아빠가 유일하게 쉬는 날이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동물원은 찾은 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아빠가 이름표를 손수 달아 주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은 엄마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 내가 이 사진이 언제 찍은 사진인지, 왜 이름표를 달고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아빠가 가족과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지”라는 대답뿐이었다. 그래서 이날의 사진은 어린 시절 아빠와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나머지 5장의 사진은 내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와 결혼식 사진과 같은 형식적인 사진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사진을 바라볼 때 아빠의 복잡한 감정들이 떠오른다. 먼지투성이 작업복이 아니라 외출복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는 아빠의 설렘이, 아이를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명찰을 달아줬을 아빠의 걱정이, 잠든 아이를 바라보고 다시 건설 현장으로 떠났을 아빠의 무거운 어깨가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만 같다. 이제 세상에는 아빠가 없지만 남아있는 사진으로 간신히 아빠를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사진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지나쳐버린 삶의 어느 순간을 빛의 자국으로 남기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