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목 시인의 산문집 <슬픔을 아는 사람>을 읽었다. 정말 사람이 슬픔에 잠겨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오래전에 내가 만났던 슬픈 사람이 떠올랐다. 언제나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 정말로 죽으려고 자살기도를 했던 사람. 철장으로 열고 닫히는 정신과 병동 안에서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고, 우연히 보게 된 병원 차트에는 ‘자살기도’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는 고통과 슬픔으로 한동안 기억조차 잃었다. 시선은 공허했고 가족만 간신히 알아보았다. 그 와중에도 키우던 강아지의 밥을 챙기라고, 배가 고프니 과일을 먹으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무서웠다. 그녀가 영원히 그곳에서 나오지 못할까봐 무서웠고, 내가 그녀를 책임져야 할까봐 겁이 났다. 병원을 나와 하염없이 거리를 걸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눈이 부시게 빛나던 밤이었고 나는 아무에게도 그녀의 소식을 전할 수 없었다. 그저 눈앞의 세상이 흐려지는 동안 ‘어두운 밤거리가 왜 이렇게 밝지’ 생각했을 뿐이다.
유진목 시인의 시와 글을 읽을 때면 나는 그녀가 자주 떠오른다.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날의 일을 그녀에게 말해본 적이 없다. 늘 죽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에 왜 죽으려고 했는지 물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녀는 여전히 외롭고 쓸쓸하고 슬픔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녀의 슬픔을 모른척하며 살고 있다. 이제는 정말 그녀마저 갑자기 죽을까봐 겁이 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