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가장 표현하기 힘든 것이 내 마음이다. 나에 대해 좀 더 알아가기 위해 성실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적확하게 언어로 표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책 속에서 내 마음을 표현한 것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또 소리 내어 읽고, 때로는 노트에 적어보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 마음과 100% 일치하는가 생각하면 또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 꺼내어 보는 책이 한 권 있다. 김소연 시인의 <마음 사전>이다.
매번 읽을 때마다 마음에 와 닿은 마음 단어가 다르지만 이번에 다가온 단어는 ‘사랑해’였다. 요즘 머릿속을 맴도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면 ‘너를 영원히 사랑해’다. 사랑해라는 단어보다는 ‘영원’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고 싶어서 꺼내어든 책이지만 ‘사랑해’ 챕터를 읽다가 오래 마음이 머물렀다.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것에는 그 처음에만 ‘고백’의 의미가 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두 눈을 가득 채우는 당신에게, 이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p.221, 마음사전)
‘사랑해’라는 말은 신음처럼 빠져나온다. (p.221, 마음사전)
‘사랑해’라는 말에는 애초에 내용이란 없다. 그 내용 없음을 사랑하는 두 사람에 의해 각각의 방식으로 섣부르게, 주관되게, 함부로, 무책임하게 채워진다. (p.226, 마음사전)
이제 막 성인이 됐을 무렵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을 무척 좋아했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읽었던 것도 같고, 사랑이 무언지 몰라서 읽었던 것도 같다. 사랑을 말하고 있는 순간에도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어떤 마음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입으로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다는 점은 확실히 알고 있다. ‘절박했던 순간에 신음처럼 터져 나온 소리’가 나에게도 사랑이라는 단어였다.
세월이 흘러 유일하게 이 단어가 자연스러워진 대상은 아이이다. 사랑에도 영원의 대상이 있다면, 시간을 초월하고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품었던 사랑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