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이 일심동체 되었던 국토대장정의 기억
소설가의 에세이는 참 좋다. 좋다는 말고는 더 이상 표현하기에 어려운 책들.
좋아하는 작가님이 신간을 내면 고민한다, 너무 보고 싶었으니 일찍 만나서 행복을 즐길 것이냐 아니면 아껴두었다가 정말 꺼내어 보고 싶을 때 읽을 것이냐 같은 별 시답잖은 고민을.
이번엔 이른 행복을 선택했다.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편안한 글이 좋았다. 그리고 내게 생생했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목차 '모른다'에서 읽은 내용 중 하나이다.
시간이 흘러 제대를 하고 그때 면회를 왔던 친구와 만나게 되었다. 그때 면회 와주어서 고맙다고 했더니 친구는 자기도 즐거웠고, 불판에 구워 먹은 고기도 맛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는 훈련도 힘든데 상처라도 받을까 봐 말 못 했는데, 면회를 하러 나온 훈련병들 몸에서 진한 쉰내가 진동했었다고 알려주었다.
... 그런데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우리들은 후각의 차원에서 일심동체가 되어있어 전혀 의식할 수 없었다. 나중에 동생 면회를 하러 신병교육대에 갔을 때에야 친구가 말한 바로 그 냄새를 제대로 맡을 수 있었다.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8월의 어는 날, 단체 쉰내를 진동하는 우리가 임진각에 있었다. 국토대장정을 완주한 자식 혹은 지인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임진각에서 그들은 어마하게 놀랐으리라.
약 25일 정도를 단 두 개의 티셔츠로 버티었던 우리. 작가님의 훈련병 시절만큼이나 빨래 환경이 열악했기에 평소에 손빨래를 잘해보지 않았을 20대 초반의 우리는 매일을 그 쉰내 나는 옷을 입고 그렇게도 걸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절반도 마르지 않은 축축한 티셔츠와 조끼를 입고 행군을 시작했으며, 내리쬐는 무더위에 땀으로 옷을 여러 차례 적실 무렵 그날의 숙영지에 도착한다.
우리의 숙영지는 대부분 학교가 많았고, 임시로 샤워장을 설치하여 사용한 적이 많았기에 샤워시간도, 빨래할 시간도 매우 짧았다. (덕분에 난 샤워를 엄청 빨리하는데, 남편이 늘 놀란다 제대로 씻는 게 맞냐며... ㅎㅎ) '땀범벅이 된 몸에 물이라도 뿌리는 게 어디야!'라는 심정으로 휘리릭 샤워를 하고 땀소금으로 얼룩덜룩 해진 티셔츠만 대충 빨아서 텐트에 널고 나면 걷는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된다.
뽀송뽀송하게 선크림을 바르고 배낭을 멘 채로 만났던 우리는 단 일주일 만에 꽤 죄죄해져 버렸다. 그래도 그즈음 엔 서로한테서 '냄새난다'라는 가벼운 농담조의 이야기는 건네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 냄새에 매우 익숙해진 우린 서로에게 어떤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대장정이 끝나고 임진각에서 마음껏 기뻐하곤 각자의 교통수단으로 집으로 돌아간 우리는 후일담을 전하면서 야 깨달았다. 우리 몸에 엄청난 '쉰내'가 난다는 것을. 목욕을 깨끗이 한다고 단 시간에 사라지는 냄새가 아닌 꽤 오래 국토대장정의 여운을 느낄 만큼 몸에 배어있던 냄새.
후각의 일심동체를 경험했던 그 시절이, 그렇게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라는 존재가 저지른 일, 풍기는 냄새, 보이는 모습은 타인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천 개의 강에 비치는 천 개의 달처럼, 나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타인의 마음에 비친 감각들의 총합이었고, 스스로에 대해 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은 말 그대로 믿음에 불과했다.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중
나는 정말 나를 모른다. 그래서 평생을 나를 알아가려 애쓰고 있는 듯하다. 나를 알고 싶어서 생각도 하고, 일기도 쓰고, 또 여행을 하면서 작은 나를 발견해 가기도 한다.
세상 그 무엇도 단언할 수 없든, 가장 잘 알고 있을 듯한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여전히 나는 잘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겸허히 살아가야 함을 깨닫는 나날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