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소설가의 에세이 (백수린)

by 로지


각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쓴 에세이가 좋다. 천문학자의 에세이, 의사의 에세이, 스포츠인의 에세이

등등 내가 경험하지 못한 직업을 가진 이들의 생각들을 그들의 에세이를 통해 접할 수 있어 참 기쁘다.


실제로는 내가 만나서 대화를 나눠볼 기회가 잘 없으니 책은 정말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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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쓰는 분이야 워낙에 많지만, 소설가의 에세이는 뭔가 조금 더 특별한 느낌.

그들의 표현이 참 좋아 열심히도 필사하게 된다.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어려운 단어를 쓰고, 화려한 문체를 사용하는 글이 마냥 멋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담담히 써 내려간 그 표현이 정말 공감되는데, 내가 평소에 사용하지 않았던 방식이라면, '와...'라는 감탄사가 아주 술술 흘러나온다.


주로 소설가들의 에세이가 그런 편이었던 것 같다. 김영하 작가님의 에세이는 더 아끼고 아껴서 읽고 싶었던 마음 같은 거겠지?


백수린 작가님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이런 에세이를 쓰시는 작가님의 소설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제목부터 감성 가득할 것 같은 이 책엔 작가님의 집과 소중한 반려견에 대한 생각들이 가장 많이 담겨있다.

나도 읽으며 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비슷한 생각들, 그리고 반려동물은 아니지만 뭔가 비슷한 느낌인 (ㅎㅎ)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슬며시 미소 지었었다.



출장지 호텔에서 홀로 침대에 누워 반절을 읽었던 책, 아마 이 책을 떠올리면 그때의 분위기가 늘 함께일 듯.


책도 어떤 공간과 함께 떠오를 때가 제법 있다. 하나하나 작은 추억과 나의 시간들이 함께한 독서의 시간들이 오늘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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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백수린

출판 : 창비

발행 : 2022.10.14.


목차

1부. 나의 작고 환한 방

2부. 산책하는 기분

3부. 멀리, 조금 더 멀리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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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많은 비밀들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통제하려 한들 삶에는 수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는 것을 안다. 그 틈을 채우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닐 것이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자리마다 놓인 뜻밖의 행운과 불행, 만남과 이별 사이를 그저 묵묵히 걸어 나간다. 서로 안의 고독과 연약함을 가만히 응시하고 보듬으면서.



요즘 유난히 심술을 자주 부리는 아이를 보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많이 불편해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모든 게 서투르니깐, 조금 더 성숙한 내가 이해해야지 하면서도 나 역시 통제를 하려고 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아차'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상에도 수많은 틈이 있다. 그것을 파워 J의 성향으로 모두 막아 내려고 하니 스트레스받는 일들이 제법 많다는 걸 최근에 또 느꼈다.

얼마 전 회사일로 무지하게 스트레스받던 나에게 남편이 '네가 너무 확대해서 책임지려고 하는 거 아니야?'라고 위로를 해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통제 불가한 일은 언제나 발생된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미리 대비할 수는 것은 불가능하다.

힘들 땐, 마음을 조금 누그러트리기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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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슬픔에서 빠져나온 이후엔 그 사실을 잊은 채 자신이 겪은 슬픔의 경험을 참조하여 타인의 슬픔을 재단하고, 슬픔 간의 경중을 따지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와 크기로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쉽게 말한다.

내가 당신의 슬픔을 다 이해한다거나 내가 가진 슬픔에 비하면 당신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대신, 당신의 슬픔을 내가 똑같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당신이 혼자라고 느끼지는 않길 바란다고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어, 찬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곧 꺼질 것 같은 촛불처럼 위태롭고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사나워지던 계절들을 통과해 올 수 있었다.



타인의 슬픔이 참 어렵다. 그래서 위로는 더 어려운 것 같고.

그래서 그 어떤 말로도 쉽게 위로가 될 수 없기에, 그저 따스한 몸의 온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좋다. 손잡아 주고, 안아주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더 알기에.


온라인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은데, 서투를지언정 진심을 담은 마음은 전하려 노력해 본다. 그리고 꼭 한 번, 두 번 더 생각해 본다. 나도 조금은 그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응원해 주는 따스한 사람일 수 있는지.




걷는 일이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나 자신도 내가 겪은 고통도 결국엔 커다란 세상을 이루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백수린 작가님도 산책을 참 좋아하신다. 집에 있다가도 나부끼는 바람에 신발을 싣고 나서고, 촘촘히 지나가는 계절을 느끼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가까운 이와 잔잔한 말다툼으로 마음이 상했을 때, 화가 나서 너무 답답해 속이 상할 때, 운동화를 챙겨 신고 나도 밖으로 나선다. 이 복잡한 내 마음을 치유해 줄 산책을 하러.


주변 건물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큰 나무와 식물들(자연)을 가까이하며 조금씩 어두웠던 마음에 하나 둘 불을 밝혀 본다. 이게 얼마나 큰 힐링이 되냐고? 부디, 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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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왔다.
얼마 전까지는 환기를 한번 하려면 큰마음을 먹어야 했는데 이제는 창을 열고 그 앞에 한동안 서서 아주 멀리 있는 나뭇가지에 연두색 새순이 돋아난 걸 보고 있을 수 있다.



여름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에면 써늘해져서 거실 창을 조금도 열어두고 잘 수 없었었는데, 이젠 24시간 환기할 수 있는 계절이 찾아왔다. 햇볕이 쨍쨍이는 한 낮엔 꽤나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 곧 습해질 장마철이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연둣빛이던 새싹들이 쑥쑥 자라 쨍한 푸르름을 만날 수 있는 여름이 이젠 마냥 싫진 않다. 햇볕에 그을리는 만큼 쑥쑥 자라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더운 여름도 지나가겠지.


추운 날씨를 좋아하지 않고, 더운 날씨는 참 싫어했던 나도 어느덧 사계절을 모두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그 계절에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랑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된 내 마음의 여유가 참 반가운 날이다.










BOOKMARK



-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 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 미래에 당도한 슬픔에 쉽게 마음을 내맡기는 대신 최선을 다해 지금의 '함께 살아 있음'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그 작은 몸을 통해 배운다.


-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겠지만 슬픔이 너무 커서 세상에 대해 원망만 가득했던 마음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들에 황홀함으로 물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 대부분의 날에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몫의 수고로움을 스스로 감당하며 살아내는 것이 값진 일이라는 걸 안다. 그것들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글을 쓸 자유,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꿈꿀 자유, 타인의 기대나 시선에 부합하는 내가 아니라 오롯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는 행복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행복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밤 찾아오는 도둑눈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사라지는 찰나적인 감각이란 걸 아는 나이가 되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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