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어른

70대 할머니의 에세이 (이옥선)

by 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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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내내 싱글벙글 웃었다.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곁에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여러 번 하면서. 아니 사실 나에겐 이런 엄마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멋지게 늙어갈 우리 엄마에게 선물해 준 책.



즐거운 어른은 작년에 황선우 작가님의 북토크에 갔다가 작가님이 소개해 주셔서 알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출판사인 이야기장수 대표님이 함께 있었는데 작가님도, 대표님도 애정을 가지고 만드신 책. 읽어보니 왜 이런 분의 글을 꼭 책으로 내고 싶으셨는지 알 것 같았다.



젊은 사람을 대변하는 글들이야 차고도 넘치지만, 그냥 보통의 주부 노릇을 오랫동안 해온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도 뭔가 할 말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이옥선 작가님의 딸인 김하나 작가님의 어린 시절에 쓴 육아일기를 책으로 낸 후에 다시는 책을 쓰지 않겠다 하셨던 작가님의 두 번째 이야기.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의 변명'으로 시작되는 작가의 말부터가 심상치 않은 즐거운 책.


SNS를 둘러봐도, 서점에 가서 책들을 살펴봐도 젊은 사람을 대변하는 글들이야 정말 차고 넘친다. 나이 든 사람이 이야기하면 흔히들 '꼰대' 취급하며 잔소리로 여기기 경우가 많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런 즐거운 어른의 유쾌한 이야기는 보통의 주부 혹은 여자들이라면 더더욱 공감이 된다. 더욱이 앞서 살아가신 분의 따스운 말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노년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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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옥선

출판 : 이야기장수

발행 : 2024.08.26.


목차

작가의 말.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의 변명

1부. 인생살이, 어디 그럴 리가?

2부. 나에게 관심 가지는 사람은 나밖에 없음을 안도하며

P.248








젊었을 때는 지지부진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인생에서 중대한 뭔가를 빠뜨렸거나 어딘가에 더 중요한 인생의 알갱이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갈등한 시기도 있었다. 하나 중대한 것은 바로 그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일상이 깨어져봐야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된다.



평온한 일상이 유지될 때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삶에선 지루함이란 감정은 꽤나 배부른 소리란 것을 알게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언제나 비슷한 듯한 일상을 이어가는 나날들이 점점 더 좋아진다.


작가님의 말처럼 아직은 젊은지라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고, 이루지 못한 것 같은 그런 욕심과 마음이 종종 밖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바라는 것은 언제나 평온, 그리고 안온한 일상.





우리는 지금 나로서 사는 일보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나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로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불혹이 되어도 여전히 나를 잘 모르는 것 같은 나에게 자주 질문하고 생각들을 떠올리며 나를 알아간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지만, 적어도 어떤 행동과 결정에 비중이 타인이 아닌 내가 될 수 있게 노력한다.

가령, 놀이터에서 아이가 마구 떼를 쓰면 그 순간 내가 아이를 위해서 하는 행동인지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인지 적어도 생각은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지, 하게 되는 것.

가끔 타인에게 보이는 물건을 살 때는 더더욱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는데 이건 여전히 조율이 필요해. (나만 좋다고 입고, 걸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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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금수저로 태어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뭔가가 되어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인생이 피곤해진다. 그렇게 좋은 환경과 뒷받침에도 별 볼일 없는 존재에 머무른다면 그 또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는가. 누구나 자기가 짊어져야 할 생의 무게가 있는 법이다.


금수저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살아가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하다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각자의 짊어지는 무게는 너무나 다르고, 그것을 어떻게 절충하며 살아가는지는 스스로의 몫이다.


다이아몬드수저, 금수저 혹은 은수저. 물론 나도 부럽지 않다는 건 거짓말 ;)

하지만 이옥선 작가님이 자식들에게 유명해지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 부모님 역시도 나에게 대단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다. (설령 바라셨더라도 자식들에게 전하지 않으셨다.) 스스로의 몫을 하며 잘 살아갈 것.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그만큼만 바라며 살길.



옛날에는 날씨를 좀 예견할 줄만 알아도 도사 대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한 분야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만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우르르 물려가 대단한 사람으로 봐줬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손 안의 폰 하나로 해결된다. 실시간으로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보를 너무 많이 알아도 이것이 더 많은 혼란을 일으키는지, 요새 사람들은 더 많이 불안해하고 아는 만큼 더 많은 질병들이 생기는 것 같다.


모르는 게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 때때로 그 말을 믿고 싶을 때가 있다. 너무 많이 알아서, 더 많이 괴로운 일들. 분명 잘 알기에 도움이 되는 것도 물론 많지만, 때때론 그 앎이 독이 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특히 정확한 출처 없이 떠도는 많은 정보들)


내가 믿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너무 많은 앎으로 인해 불안함을 택하지 않길. 넘쳐나는 정보에 헤매다 머리가 복잡해질 땐,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책을 펴기로 언제나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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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ARK




-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아무런 기대 없이, 스스로의 명랑성과 가벼운 마음가짐(평온함)에 기대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지구 한 귀퉁이에서 덤덤하고 조용하게 사는 즐거움을 저렇게 요란한 유명인들은 모를걸! - 루소, 톨스토이, 헤밍웨이 등 대단한 사람들의 비인격적인 사생활을 읽고 난 뒤 작가님의 의견.



- 너희도 너무 애쓰지 말고 대충(이것이 중요하다) 살고, 쾌락을 좇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뭔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이것부터 해결하는 방법으로 살면 소소하게 행복할 것이다. ... 제사는 지내지 말고 그날 시간이 나면 너희끼리 좋은 장소에 모여서 맛있는 밥을 먹도록 해라. 또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너희 아빠는 꽃 피는 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단풍 드는 가을에 떠나면 좋겠네. 그러면 너희는 봄가을 좋은 계절에 만날 수 있을 테니. (작가님의 유언 중 일부)



- 하지만 이렇게 모든 배움과 방법이 유튜브에 다 있다고 해서 배워지는 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운동 방법은 배웠지만 실시간으로 꾸준히 같이 할 수는 없다는 것, 결국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한 공간에서 서로 기운을 주고받으며 같이 수련해야만 계속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혼자서 유튜브만 보고 꾸준히 단련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내공이 대단한 사람임을 알 수 있겠다.



- 옛날만큼 책이 안 읽힌다. 다 늙은 나도 그런데 요즘 젊은 아이들이 책을 잘 읽겠나 싶다. 단순히 책을 읽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게 너무 많아서 남들도 하는 것은 어쨌든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현대인들이니 조용히 책을 읽고 있을 환경이 못 된다. 오죽하면 요새 책 제목에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게 있을까? 내가 그나마 책을 좀 읽을 수 있었던 것도 그때는 책 읽는 것 외에는 뭘 해야 할지 아무런 대안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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