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인터뷰

울렁증에 대하여

by 햇살나무 여운


저녁을 먹고 나서 워크넷과 자격증 관련 구직 사이트를 배회하다가 집 근처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회사를 발견하고서는 거의 이력서를 낼 뻔했다. 다행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기까지가 귀찮아서 멈췄다. (어차피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나이와 경력이라 서류에서부터 안 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휴-! 정말 다행이다. 이런 나의 조급증을 어쩌면 좋을까. 조급함은 불안에서 온다. 불안감이 클수록 조급해지고, 그러다 또 성급하고 경솔하게 사고를 치게 되거나 후회할 행동을 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나를 보며 남편이 말한다.


"심심하죠? 심심해서 못 견디겠지?"


심심한 건지 외로운 건지, 어쩌면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자격증 관련해서 교육을 들으며 잠시 파트타임으로 서류 작업을 도울 일이 있었다. 이게 뭐라고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어찌나 신나게 열심히 했는지 모른다. 옛날에 차고 넘치게 했었지. 이건 일도 아니지. 껌이지! 일이 하고 싶다. 나는 일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그래서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아무 일이나 막 했지. 다 했지. 그것까지도! 남 좋은 일 참 많이 했지. 그런데 이제는 '남의 일' 말고 '내 일'을 해야 할 때라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멈추고 기다리는 법도 배우고 있는 것이다. 방황하면 좀 어때! 배회하면 좀 어때! 누군가 말했잖아. 방황하는 영혼이라고 해서 모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나는 지금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길을 찾고 있는 중이다. 내게는 없던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면접을 보러 갔다. 지방의 어느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원주였다. 수많은 새내기 친구들 사이에 나도 끼어 앉아 있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 떨고 있니?’


몇 명씩 팀을 이루어 담당자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즉흥적으로 답하면서 이뤄지는 자유로운 인터뷰 방식이었다. 나는 웬일로 그때그때 물 흐르듯 막힘없이 답을 해댔다. 어린?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삶의 연륜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어차피 안 된다는 것을. 이 중에서 될 친구는 저기 저 예쁘고 당당하고 거리낌 없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친구라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개의치 않고 끝까지 즐겁게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당연히 떨어졌지만, 기분은 좋았다.


잘 해냈다고 스스로 충분히 뿌듯해하며 그렇게 발걸음을 돌려 나오려는데 임원진으로 보이는 한 무리에서 어떤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잠시 나를 보자고 부르는데,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면접 과정 전체를 다른 곳에서 지켜본 모양이었고, 그분은 혼자 다른 뜻을 가진 모양이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는데, 반대하는 다른 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그저 일이 하고 싶을 뿐이라고 힘주어 단호하게 말한 것만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어딜 함께 같이 가자고 하는데 그곳이 어떤 현장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이 한 명은 있구나.


그렇게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웬일로 떨지 않고 말을 잘하는가 했다. 그리고 웬 라디오 방송국? 웬 원주야? 뭘 그리 지역까지 구체적으로 떠오르는지. 어젯밤에 본 드라마 탓인가? 꿈에서처럼만 할 줄 알았어도 내 인생이 좀 달라졌겠네 싶다.


- 얼마 후 실제로 라디오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예지몽이었을까?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관련한 글을 쓰고서 지방의 KBS 라디오에서 인터뷰 제의를 받았다. 꿈에서처럼 원주는 아니고, 충주였다. 울렁증을 극복하려고 미리 인터뷰 원고를 쓰고 말하듯이 읽는 연습을 하고 녹음하고 들어보며 거듭 수정했다. 나중에 방송을 들으며 편집의 위대함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


나에게는 불치병이 있다. 울렁증! 사람이 많은 곳이나 앞에 나서는 자리에 가면 어쩜 그렇게 심장이 벌렁거리는지! 내 귀에만 들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그 소리가 들릴까 싶을 만큼 심하게 콩닥거린다. 분명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울렁거린다.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별짓을 해봐도 극복되지가 않았다. 어느 기준 어느 시점인지 나도 모르게 돌발적이라 몹시 당황스러운 불치병이다. 별명이 콩새여서 그런가? 간은 콩알만 하고 가슴은 새가슴이다.


나도 구겨지지 않고 찌그러지지 않고 작아지지 않고 평소처럼 잘 해내고 싶은데 그게 참 마음처럼 안 됐다. 그래서 이론 시험은 공부해서 아무리 잘 봐도 실전이나 면접에서 망치기 일쑤였고, 뒤에서 자료준비나 내용은 빵빵하게 잘 갖춰도 사람 많은 곳에서 앞에 나서서 발표하거나 어필하는 것에는 젬병이었다. 내가 큰일을 못 하는 이유다.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늘 그랬다. 성적이나 성과는 앞에 나서서 말 잘하고 정치 잘하는 이들의 차지였다. 덕분에 남 좋은 일은 참 많이 하기도 했다. 나이가 좀 차고 사회 경험이나 경력이 좀 쌓이면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나아진 게 있다면, 이제는 떨려도 그냥 어떻게든 하긴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제대로 표현조차 못 해보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나의 이야기에 누군가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나를 표현해 보는 경험을 통해 그나마도 없던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 노력해도 안 되는 것도 있는 법이다. 꿈에서처럼만 할 수 있었으면 나도 좀 더 큰 꿈도 꿔보고 이런저런 도전도 해봤을 텐데 나한테 안 맞는 것을 어쩌겠는가. 30년을 넘게 한 번도 제대로 충만하게 느껴본 적 없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하루아침에 생길 리는 만무하지 않겠는가. 그냥 그런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한테 맞는 방법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나답게 소박하게 살기로 했다. 실전에서 앞에 나서서 담대하고 씩씩하게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뒤에서 조용히 서포트 잘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내가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하며 살자.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그나저나 일이 몹시 하고 싶긴 한가 보다.



울렁증 극복을 위하여 연습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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