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땔감

시월에 대하여

by 햇살나무 여운


10월이다. 벌써 10월이었다.


외출을 하려고 옷을 걸쳤다가 아직 여름옷에 더 가까운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어정쩡하다. 마음은 아직도 9월 초입에 서성이고 있었나 보다.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지면 가장 먼저 찻물을 끓이는 일과로 시작되는 계절이 된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아침 일찍부터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워두면 온종일 그 온기로 마음도 뜨듯하다. 언제든 틈틈이 따뜻한 차를 홀짝거리며 찻잔을 감싸 쥔 손도 데우고 천천히 호호 불며 속도 데울 수 있다.

예전에는 5월을 가장 좋아했었는데, 인생이라는 시계에 맞춰 흐르다 보니 어느덧 10월이 더 좋아졌다. 마음에 여백이 많아지는 달이다. ‘열’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의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열매를 맺고 완성을 이루는 달. 하늘이 열린 달. 한 생명을 이루는데 걸리는 온전한 시간, 열 달! 마음을 열고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기에 참 좋은 달이다.


10월은 한 해를 갈무리하면서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달이기도 하다. 이번 겨울은 어느 때보다도 준비를 단단히 하고 무사히 잘 버텨내야 한다. 마음의 땔감을 미리 넉넉히 쟁여 두어야지.

오늘은 아침 일찍 자격증 시험을 하나 치르고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가까운 우체국에 들러 소포도 부치고, 친구들에게 안부도 물으며 정말 소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 아무것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순간이 내게는 가장 소중하고 특별하다.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이 충만하고 자유롭다.

산책길에서 뒤늦게 홀로 핀 아주 작은 꽃송이 하나를 만났다. 너 역시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이곳에 보란 듯이 피었구나. 그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 없어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 피었구나. 너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렇게 여기에 있구나. 굳이 뭘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이렇게 그냥 ‘있기’만 해도 그것으로 충분하고 온전하다는 걸 이 작은 꽃송이가 나에게 가르쳐 준다. 고맙다.


지금 이대로 온전한 시월이다.



제대로 오기도 전에 가버린

그 가을마저 이제는 갈무리할 때.


그렇게 갈 가을이어서

잎새들도 가고

꽃들도 시들어 시월인가

눈이 시리도록 푸르러 시월인가


그 詩月이 가고 있다.

마음의 땔감은 미리 넉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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