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나무 여운 Nov 02. 2023

브런치 백일(일기)장

백일에 대하여


아침에 읽던 책에서 오늘의 한 문장을 발견하고서 카톡 프로필을 손보려다가 발견했다. 오늘로써 브런치 작가가 된 지 꼬박 100일이 된 사실을.


백일. 


곰이 동굴모드로 쑥과 마늘만 먹으며 버티고 견뎌내어 인간이 되는 시간. 육식에서 채식으로, 그것도 허브 생식으로 체질개선을 하려니 금단현상으로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렇게 익숙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나보내고 이겨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갓 태어난 새 생명이 삼칠일도 무사히 넘기고 아흔아홉 날을 거뜬히 살아남아서 이제는 온전한 한 존재로 거듭남을 맞이하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모두가 함께 기뻐하며 축하하는 날!


한여름의 어느 날 대구 팔공산 갓바위를 걸어 올랐을 때 느꼈던, 수능백일치성을 들이던 엄마들의 간절한 염원이 깃들고 어려있던 그 공간처럼! 그 마음, 그 기운이 모여 감천(感天)에 탱천(天)까지 하고도 남을 이 될 수도 있는 시간!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시간. 그러나 마음을 모으고 정기신을 집중하면 뭐든 해낼 수 있는 시간. 내게는 그 백일이 어떤 의미를 지닐까?


먹고사니즘의 우선순위를 뒤로 하고 마침내 글쓰기로 체질개선을 하고 오롯이 '읽고 쓰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시간.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듯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보물찾기 하듯 글감을 발견하고 주워 모으는 시간. 오랜 관성과 불안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이고 달래며 그럭저럭 잘 지내온 시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나를 나눠쓰거나 잡다하게 낭비하지 않고 스스로 세운 목표에 정성과 노력을 들이며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해 온 시간.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잘 들여다보고 돌아봐주고 돌봐주는 시간. 길을 잃은 게 아니라 길을 찾는 시간. 쓰는 동안에도 스스로 길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는 시간. 그런 자신을 기다려주는 시간.


그리고, 당신 덕분에 세상 다정한 시간! 나를 응원하듯 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응원하는 시간! 가장 나다워지고 우리다워지는 시간. 사람다워지는 시간. 인간됨을 잃지 않기 위해 소리 없이 치열했던 시간. 당신에게서도 그 치열함을 발견했던 시간. 그래서 이제는 사랑받은 만큼 사랑하는 시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살아갑니다, 오늘도.


그 자리엔 오직 사랑만이 남았다.

- 브라이언 셀즈닉 <빅 트리>   



있는 쌀 팔아서 새하얗게 뽀얀 백설기라도 지어서 떡 돌리고 싶은 순백의 마음으로. ^^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