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일 새해 둘째 날 아침 10시, 남편이 자격증 시험 응시를 접수해 달라고 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바로 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새해 시작부터 전화 올 일이라곤 없는데? 보통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는데, 031로 시작하는 일반전화였고 스팸 경고가 뜨지 않았다. 고용센터나 관공서 번호처럼 익숙한 느낌이 들어 왠지 이 전화는 꼭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24년 1월 2일 10시 땡!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증거!
전화가 걸려 온 곳은 바로 열흘 전쯤 면접을 보고 왔던 곳이었다. 내가 지난해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곳으로 시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 기관이다. 서류발표도 합격했었는데 다른 공고를 잘못 보고 ‘역시나 또 안 됐구나!’하고 떨어진 줄 알았다가 면접 보러 오라는 문자가 와서 ‘진짜? 웬일로 서류가 됐지?’ 한 번 더 놀랐던 바로 그곳이었다. 면접 기회가 온 것만으로도 감사했고, 늘너무 잘하려다 긴장하다 보니 일부러 ‘이거 아니어도 되니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면접을 보러 갔다. 예습했던 기본적인 기관 현황과 더불어 평소 생각하던 사회복지에 대해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왔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고. 정작 우리 같은 사람에게, 저에게도 참 필요했다고. 역시나 최종 발표에서 떨어지고 이젠 진짜 마지막 마음을 접으며 새해를 맞이했었다.
그런데 내가 다름 아닌 추가합격이라고 한다. 분명 제대로 들었는데도 못 알아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신종 보이스피싱은 아니겠지? 근무가 가능하냐고 묻는 말에도 제대로 반가워하거나 기뻐하지도 못하고 마치 남의 일인 듯 기계적으로 무덤덤하게 겨우 대답하고 얼떨결에 전화를 끊었다. 필요한 서류를 메일로 전달해 주기로 하고 추후 다시 통화해서 날짜를 조율하기로 했다. 담당자분께서 ‘합격했다는데도 이 사람은 별로 안 반가운 건가?’하는 생각을 부디 하지는 않으셨기를. 실감이 안 나서 그랬어요.
한참을 믿기지 않아서 여전히 멍했다. 진짜 된 게 맞는지 설렘과 기쁨보다는 긴가민가 뭔가 확실해질 때까지 긴장감이 계속되었다. 정오가 되기 전 메일이 왔다. 제목에 ‘출근 전 필요서류’라고 적혀 있었다. 출근이라니! 이 얼마나 그리웠던 단어인가. 첫 줄에 합격을 축하한다고 적혀 있다. 우와! 진짜가 맞긴 맞나 보다.
이거 꿈 아니고 생시 맞습니다!
우선 급한 서류는 가능한 당일 오후 4시까지 바로 보내달라고 해서 서둘러 꼼꼼히 준비했다. 역시나 공공기관이라 서류가 무시무시했다. 신원조회? 범죄경력조회? 공무원채용 신체검사? 정작 여기서 떨어지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나 죄지은 거 없지? 서류를 작성하면서 등록기준지라는 말도 처음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현주소를 적어 넣었는데, 옆에 빨간 글씨로 굵고 진하게 적혀 있었다. ‘현주소가 아니라 등록기준지를 적어 주세요.’ 옛날 말로 호적이라고 해야 하나? 대법원 사이트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등록기준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호적을 등록한 곳, 나조차도 잊고 있었던 나의 고향인 셈이다.
혹시나 설레발을 쳐서 겨우 어렵게 갓 내게로 도착한 이 행운을 망치거나 날려 버릴까 봐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날 밤 여덟 시간 금식을 유지하고 다음 날 곧바로 공무원채용 신체검사서 발급이 가능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아 신체검사를 받았다. 증명사진 두 장은 필수, 비용은 4만 원! 순서를 기다리며 내 앞에 20대 젊은 친구가 채혈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혈관이 잘 안 잡히는지 양쪽 팔을 다 찌르고도 한참이 걸렸다. 안타까워라! 넌 어디에 합격했니? 파이팅!! 응원한다! 나는 피 뽑는다고 굵은 바늘을 찔러 넣는데도 아픈 줄도 모르고 내 안에서 붉은 피가 뽑혀 나오는 것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전히 몽롱하게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솜에 묻어나는 신선한 피를 보면서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살아 있구나, 진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맞구나, 꿈 아니구나! 이틀 만에서야 현실감이 든 것이다. 검사 결과는 다음 날 오후에 바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보통 사흘은 걸린다는데 예상보다 빨라서 다행이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뭐라도 결격사유가 있지는 않을지 또 하루를 내내 긴장하며 기다렸다. 사흘 걸렸으면 기다리다가 피 말라 쓰러졌을 듯. 시시때때로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아무도 몰래 간절히.
다음 날 서류를 받아보니 감사하게도 합격이 찍혀 있었다. 그제야 안도한 나는 필수서류가 모두 준비되었다고 담당자분께 확인 전화를 드렸다. 전화기 너머로 연초의 분주함이 온전히 전해진다. 면접을 볼 때도 센터장님께서 매우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실무자들이 정말 일이 많고 바쁘다고. 여유 있게 마주 앉아서 차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여유 같은 건 없을 수도 있다고. 고독할 수도 있는데 이런 일 할 수 있겠냐고. 아마도 그래서 앞에 먼저 합격하고 출근했던 사람들이 포기하는 바람에 나에게까지 순서가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남의 돈 받고 일하러 오는 것이지 편하게 여유 부리기를 직장에서 바라지는 않는다. 게다가 일터에서의 인간관계는 서로의 업무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일이 잘 진행되는 정도면 충분하다. 오히려 현장의 일선에서 실무자들이 세금 낭비하지 않고 힘들게 최선을 다해 일하시는 것 같아 신뢰가 느껴졌다. 최종 신원조회 결과가 며칠 더 걸린다고 나오는 대로 다음 날 바로 출근이 가능하겠느냐고 또 물어오신다. 된 거 맞구나. 의심하지 않아도 돼. 된 거야. 된 거 맞아. 이제 되었다. 믿어도 되겠다. 합격을 받아들여도 되겠다. 그리고는 비로소 처음으로 입 밖으로 꺼냈다. 나 합격했다고. 취업했다고.
다시 일을 하게 된 사실 자체도 물론 기뻤지만, 전환기를 거치며 내가 하고 싶었던 사회복지와 돌봄과 관련된 방향으로의 첫발을 내딛는 일이어서 더욱 기쁘고 뜻깊었다. 비록 계약직 보조 인력이지만, 작게나마 손을 보탤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무슨 일이든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냐가 중요한 법이니까. 힘들겠지만 그쯤이야 각오하고 있다. 그렇게 간절하게 바라던 취업을 성공했는데, 일이 없는 것보다야 힘들겠는가? 나는 또한 새롭게 많은 걸 보고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고 실습을 거쳐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따놓은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사회복지 공부도 계속 하게 되면 실습도 또 해야하는데 미리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면 되지. 99도까지 거의 도달해 놓고서 마지막 1도를 남겨두고 바로 그 직전에 포기할 뻔했다. 가진 것이라곤 성실성뿐인 내가 뭔가를 해냈다니! 스스로 희망의 증거가 된 셈이다.
아직은 설렘보다 긴장감이 더 크다. 막상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봐야 진짜 실감이 날 것 같다. 이것으로 나는 인생 후반전 꿈벌이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에 한 줄의 경력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항산(恒産)을 되찾았으니 이제 항심(恒心)으로 글쓰기와 투고라는 혼업(魂業)을 향해서도 우직한 소의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