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록 '나뭇가지를 얻어 쓰려거든'
나뭇가지를 얻어 쓰려거든
- 이정록
먼저 미안하단 말 건네고
햇살 좋은 남쪽 가지를 얻어오너라
원추리 꽃이 피기 전에
몸 추스를 수 있도록
마침 이별주를 마친
밑가지라면 좋으련만
진물 위에 흙 한 줌 문지르고
이끼옷도 입혀주고
도려낸 나무그늘,
네 그림자로 둥글게 기워보아라
남은 나무 밑동이
몽둥이가 되지 않도록
끌고 온 나뭇가지가
채찍이 되지 않도록
먼저 고맙다는 말 건넬게
정말 쉼없이
남쪽 햇살 담은 나뭇가지 꽃가지를
보내주는 벗이 있어
두 손에 꽃 들고 햇살처럼 찾아주는
벗들이 있어 내 마음은
그림자를 잘라 기울 필요도 없고
몽둥이가 될 일도
채찍이 될 일도 없다네
너가 나의 나뭇가지고
내 마음에 꽃이고
남쪽 햇살이여
그대가 나의 의자요
늘 볕 좋은 자리에
나란히 놓인
빈 의자
그대가 있어 내 마음은
늘 봄이요.
#이정록 #나뭇가지를얻어쓰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