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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철활인

구부러진 고추맹키로

이정록 '구부러진다는 것'

by 햇살나무 여운







잘 마른
핏빛 고추를 다듬는다
햇살을 차고 오를 것 같은 물고기에게서
반나절 넘게 꼭지를 떼어내다 보니
반듯한 꼭지가 없다, 몽땅
구부러져 있다

해바라기의 올곧은 열정이
해바라기의 목을 휘게 한다
그렇다, 고추도 햇살 쪽으로
몸을 디밀어 올린 것이다
그 끝없는 깡다구가 고추를 붉게 익힌 것이다
햇살 때문만이 아니다, 구부러지는 힘으로
고추는 죽어서도 맵다

물고기가 휘어지는 것은
물살을 치고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말하겠다
내 마음의 꼭지가, 너를 향해
잘못 박힌 못처럼
굽어버렸다

자, 가자!
굽은 못도
고추 꼭지도
비늘 좋은 물고기의 등뼈를 닮았다


- 이정록 '구부러진다는 것'




농부 친구의 맵대매운 고추농사! 맨 땅에 맨 손으로 시 쓰는 농부!



암만 해도 고추 꼭지 제 손으로

따 본 놈이 쓸 수 있는 글이여, 이잉-!

따고 또 따고 하염없이 따다 보믄

나중에는 손구락이 꼭 고추 꼭지맹키로

구부러져서는 그 손구락 고대로

고추 대신 연필 잡으믄 영락없이

맵디매운 맛있게 매운 시가 절로 써지겄네!


자고로

손구락도 구부러져보고

등허리도 구부러져보고

무릎팍도 닳고 닳어봐야

누군가의 마음도 구부러뜨릴 힘이 있는 것이여

엄마 손구락 무릎팍 닮은 글

할무니 등허리 닮은 글

그런 글이 맨 입으로 빈 손으로 써지간디!


길도 구부러지고 강도 휘어져야 절경이듯이

글도 좀 구부러져야 맴도 기우는 것이여

사람이든 글이든

휘어 감싸는 구석이 있어야

앉어서 쉬었다도 가지 않겄냐


p.s.

생도

억이여, 매운 맛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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