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드 러셀 <인생은 뜨겁게>
계절마다 걷는 길에서 만나는 꽃이란 꽃을 다 찍어서 보내주는 친구가 있다.
처음 내게 개망초를 알려준 것도 그 친구였고,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꽃이름은 거의 대부분 그 친구로부터 배운 것이다.
"이건 무슨 꽃이야?" 하고 물으면 언제든 막힘없이 알려주는 그 친구 덕분에 나는 꽃검색이 필요 없다.
마치 그에 대한 아주 작은 의리라도 되는 듯이 나는 길을 걷다가 그 친구의 이름을 닮은 명아주라는 풀꽃을 만나면 꼭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준다.
좁쌀냉이라는 꽃이 있단다. 이번 봄길에 새로이 만난 꽃이라며 친구가 사진과 함께 보내온 이름이다. 냉이꽃도 덕분에 알았는데...
친구가 하는 일이 마을 어르신들 찾아 이 집 저 집 들이며 밭이며 바다에 마을회관 노인정까지 여기저기 걷고 누비는 건데, 그녀의 사명은 오히려 내게 쉼 없이 꽃을 보내오는 것에 있는 듯하다. 꽃이 어여쁜 것이 아니라 내게 꽃을 보내오는 그 순간순간의 마음씀이 더 어여쁜 꽃길이 된다. 그 손길이 사나워진 내 마음을 쓰다듬고 어루만진다.
매일의 거짓과 폭력 속에 노출되고 시달리면서 우리는 지쳐가고 있다. 사실 미친놈이 한 놈만 있어도 그 집안은 제정신을 차리고 멀쩡히 살기가 어렵다. 정말 강한 힘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런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주변에 미친놈이 참 많다는 사실을 이번에 다들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미친 구석 한 구석쯤 품고 산다지만, 진짜 큰 문제는 그 광기를 대놓고 드러내고 휘둘러도 괜찮은 듯 되어버린 사회분위기가 아닐까? 그것을 허용하고 부추기고 동조하고 거기에 함께 휩쓸리면서 마치 이때다 싶게 기다린 것처럼. 업강에 드리워진 거대한 자석이 온갖 어둠과 광기를 끌어당기는 듯하다. 불안과 의심은 업강에 사는 물고기의 먹이가 되고, 몸집을 불린 자력은 더욱 강해지는 듯 보인다. 두렵고 고통스럽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고, 얼마나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존재인지, 감히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을 만큼 과연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무지하고 무치하고 야만적일 수 있는지, 저토록 당당하고 뻔뻔할 수가 있는지 더 놀랄 것도 더 실망할 것도 없을 만큼 모르지 않았는데....
언젠가 샛노란 차조를 넣어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는데, 흐르는 물에 휩쓸려간 좁쌀들이 수채구멍에서 싹을 틔운 걸 발견한 적이 있다. 그때 알았다. 정말 좁쌀만 한 것들이 생명력이 참 강하구나. 살다보면 알게 된다. 우리네 삶의 길에서는 장미보다 풀꽃이 가깝고, 좁쌀이 뭉치면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건 내 곁에 내 가까이 매일 피어나는 바로 그런 좁쌀 같은 연민들이라는 것을. 미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고 말이다.
거센 거짓과 폭력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꽃은 핀다. 꽃을 본다. 그리고 그렇게 꽃다운 꽃, 인간다운 인간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름을 불러줄 것이다. 덕분에 산다고. 고맙다고.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맹렬하고 혹독한 겨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고 지고 또 피는 저 풀꽃들처럼, 거듭거듭 돌아오는 인간에 대한 좁쌀만 한 연민이다. 인간다운 삶에 고작 그것이면 된다. 내가 보는 것이, 내가 믿는 것이 나의 세상을 이룬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 버트란드 러셀 자서전《인생은 뜨겁게》-
그 암담한 전망도 끔찍했지만,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든 것은 국민의 거의 90퍼센트가 대학살을 기대하며 즐거워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시각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으나, 돈보다 파괴를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성인은 으레 진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나, 인기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는 지성인은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인간 본성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휩쓸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버트란드 러셀 자서전 《인생은 뜨겁게》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 버트란드 러셀 자서전 《인생은 뜨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