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상에 집착한다. 큰방에도 작은방에도, 그리고 거실에도 책상이 있다. 책상의 주 용도는 우습게도 심리적 안정이다. 어릴 적 내 방은커녕 제대로 된 책상 한 번 가져본 적 없는 결핍에서 비롯되었을까?
큰방 책상은 주로 남편이 사용하거나 재봉틀 작업실로 함께 쓰고, 작은방 책상은 온라인 수업이나 줌 강의가 있을 때 주로 사용한다. 식구가 남편과 나 둘 뿐인 우리는 명절을 제외하고는 누가 찾아올 일도 거의 없다. 먹고 자고 글 쓰고를 포함한 거의 모든 생활은 거실에서 이루어진다. 방에 잘 안 들어간다. 방문이 있어도 거의 쓴 적이 없다. 닫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문을 닫으면 여전히 숨이 막히고 답답하고 무섭다. PTSD인가? 책도 여기저기 이것저것 한가득 쌓아놓고 늘어놓고, 펜도 있는 대로 다 꺼내놓고 쓰는 편이다. 그래서 정리가 안 된다. 심지어 부엌에 식탁도 물건을 쌓아놓는 용도인 것 같다. 밥은 정작 거실에서 개다리소반을 놓고 TV를 보면서 소박하게 먹는다. 방은 방치되어 있다. ‘현타’는 갑자기 온다.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젊고 체력이 넘쳤을 때, 게다가 오히려 소유한 공간이 협소했을 때는 정리 정돈도 더 자주 하고 혼자서 한밤중에도 가구를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쉼 없이 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런데 주어진 공간이 넓어지니 굳이 정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휑한 공간을 일단 채워야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건 커다란 테이블이었다. 그것도 생일 선물로!
언젠가 휴일 저녁, 어느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나도 저렇게 넓은 식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여러 개의 의자에 마주 앉아 밥상도 되고, 찻상도 되고, 책상도 되고, 때로는 술상도 되는 그런 커다란 테이블을 창가에 놓아야지 했었다. 그러다가 또 ‘아, 식탁이 문제가 아니라 마주 앉는 사람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식탁이 있으면 뭐 하나, 사람이 있으면 뭐 하나! 서로 마주 앉을 '시간'이 없는데….
그러다가 또 생각했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먹고 차도 마시는데, 마주 앉을 '마음'만 있다면야 그 사람도 시간도 내가 만든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고작 그런 테이블이 아니라 누군가와 마주 앉아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런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덧 돌아보니, 나는 이미 다 채워져 있었다. 그런 삶이. 그 커다란 테이블을 이렇게도 놓았다가 저렇게도 놓았다가, 마주 앉기도 했다가 나란히 앉기도 했다가,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지금은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며 글을 쓰고 있다니! 꿈은 이루어졌구나.
사실 이게 전부인데, 이거면 충분한데 참 많이도 채웠다. 참 많이도 가졌다. 너무 채워서 넘치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비워야 할 때이다. 이렇게 넓게 가졌음에도 늘 좁다고 여기는 허기진 마음을 먼저 비우고, 무엇보다 다른 누군가를 들여놓을 여백을 위해서라도 좀 더 비우고 싶다.
서랍 한 칸에서부터 시작이다. 저 고지서들과 급여 명세서는 왜 모아 뒀을까? 이 많은 펜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친구들 아이들에게 나눔 해야겠다.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건 정리의 바람이 불고 있는 다정한 이웃들 덕분이다. 고맙습니다. 서랍을 비우며 마음도 비운다.
10월이다. 나무들도 잎을 떨구고 비움을 준비하는 계절, 가을이다. 나도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비움으로써 정말 채워야 할 속을 채우고 뿌리를 다지는 시간을 준비해야겠다. 비움은 현재진행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