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역시나 또 일하는 꿈이다. 예전 직장이거나 어느 다른 직장이거나 여전히 나는 꿈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 불안한 것이다.
내가 딛고 선 땅은 언제나 ‘노동’이었다. 나는 경제력을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살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결혼해서도 마찬가지였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남편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그래본 적 없는 나를 못 믿는 것이다. 노동에 길들여져 온 나는 발 밑이 꺼진 듯 불안하고 마음 한 구석이 우울하다. 알면서도 마음이 쪼그라들고 괜히 자격지심이 생긴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 쓰임으로써 자신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하는 본능. 어딘가에 ‘다닌다’는 루틴과 목표가 몸과 마음과 정신 건강에 참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가끔 설문조사를 하거나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할 때, 정확히 지금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발견한다. 내가 못 견뎌하는 것은 이 지점이구나 깨닫는다. 무직이나 기타, 또는 주부? 그런데 나는 이실직고하면 주부는 아니다. ‘주부’를 경시하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존경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나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까. 하고 있지 않으니까. 별로 관심도 없고 소질도 없고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불안하면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더 무기력해진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놀 줄 아는 것도 아니다. 매일 뭔가를 하긴 하는데도 몹시 게으름과 동시에 이런 내가 꺼림칙하다. 정말 해야 할 일이 있는 걸 알면서도 그걸 회피하면서 다른 걸 아무리 바쁘게 많이 하는 척해봐도 사실은 그게 게으른 것이다. 그럼 또 불안해서 글을 쓴다. 글은 진통제도 되고, 마취제도 되고, 신경안정제도 된다. 글이 밥도 되면 좋겠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밥이 먼저다.
일을 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이 하는 일을 돕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틈틈이 여기저기 구직 사이트도 들여다 보고, 몇 군데 이력서도 내보고, 정말로 필요하면 파트타임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일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나를 견디며 적응해야 한다. 퇴직하면 이런 기분이구나? 나의 무용함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꽤 필요하다.
누군가 말했었다.
“우선은 좀 놀아요. 놀아야 돼요.”
겨울까지는 놀자. 부디.
좀 그래도 돼. 괜찮아. 아무것도 아닌 나여도 괜찮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스스로 정말로 괜찮게 여기게 되면 그때 비로소 제대로 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