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자주 다녔다.
전세 만료 날짜에 맞춰 2년마다 집을 옮겼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던 즈음, 대단지 아파트가 여기저기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집이 콤플렉스가 되기 시작한 건.
나는 한 주택에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에 살았다. 학교 출석부 첫 장에는 학생들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주택에 산다고 적힌 학생은 많아야 두세 명뿐이었다.
어디에 사느냐는 질문.
그냥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일뿐인데,
"주택에 산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이상하게 창피했다.
새 학기 첫날, 등굣길이었다.
앞서 가던 남자애 두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 살아? 주택에 살아?"
그 질문에 다른 한 친구가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냐, 나 주택 안 살아. 주택은 못 사는 애들이 사는 데잖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방끈을 조용히 움켜쥐었다.
나한테 하는 말도 아닌데 괜히 움츠러들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소화되지 못한 채 내 마음에 걸려있다.
그 후로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은 무려 10년을 함께했다.
여름이면 집 안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밖에서 돌아와 문을 열면, 지하주차장 같은 답답한 열기가 밀려들었다.
에어컨은 설치할 수 없었고 대신, 식당에 있을 법한 커다란 서큘레이터를 사서 한여름을 버텼다.
서큘레이터가 도는 소리는 낮에도 밤에도 끊이지 않았다.
겨울은 더했다.
단열이 안 되는 집은 냉기만 가득했다.
이불속에 몸을 묻고 누워 있어도, 코끝이 시렸다.
숨을 쉴 때마다 작은 입김이 퍼졌다.
거실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거실 겸 주방, 그리고 방 두 칸.
그곳이 나의 어린 시절이자, 청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