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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윤 May 08. 2021

다들 애완악어한 마리씩은
키우시잖아요

나는 이제 이 악어를 보내주기로 했다.

어느 날 찾아온 새끼 악어

우리 집 현관문 바로 앞에는 쭉 뻗은 야자수 한그루와 작고 아담한 연못이 있다.

이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물속을 자유로이 헤엄치고 있는 자라와, 이 연못을 찾은 온갖 종류의 새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쯤 이 연못에 작은 새끼 악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알을 본 적도 없고, 큰 악어가 사는

큰 호수는 꽤 떨어져 있는데  이 녀석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이 새끼 악어는 하루 종일 물속에서 놀다가 가끔씩 햇빛을 쬐러 뭍으로 올라온다. 그러다 인기척이 나면

스르륵 연못 속으로 사라져 버려 자세히 보고 싶었던 나는 늘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한참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연못이 가물어 말라버렸고, 그곳에서 이 악어를 다시 만났는데 이때다 싶어 얼른 집으로 들어가 남은 식빵을 가지고 나왔다. 악어랑 조금 더 친해져 보려고, 악어가 가 버리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허겁지겁 나와보니 다행히 아직 그곳에서 남아있는 악어를 만났다. 식빵은 떼어 조금씩 뭉쳐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던져주니 악어가 나에게 (빵에게) 관심을 보이더니 이내 빵을 받아먹는 것이 아닌가!

아, 오해는 마시길.. 악어와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고, 악어가 따라와도 순식간에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코 앞이었고, 무엇보다 내가 악어를 무서워하는 것보다 악어가 확실히 날 무서워한다.

어쨌든 그날부터 이 악어는 내 마음속 애완(?) 악어가 되었다. 이 녀석이 보이면 반갑고, 베란다에 나갈 때면 한 번씩 찾아보게 되고, 며칠 보이지 않으면 아쉽고, 어디로 가있나, 물에 쓸려 간 건 아닌가.. 걱정된다면.. 이 정도면 애완 악어가 아닐까.


집앞 연못풍경과 글 쓰다 내다본 연못속 악어



잊고 살다가도  마음속에 가끔씩 찾아오는 사람이나 힘든 기억들이 있다. 이것들은 마음속 어딘가에 깊이 숨어 있다가 내 마음에 가뭄이 들 때, 이따금 수면 위로 올라와 나를 괴롭게 만든다.

나에게 상처 주었던 어떤 사람, 너무나 수치스러웠던 어떤 사건, 자존심이 다 상해 버릴 정도로 모욕적인 순간,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이별, 상처로 가득한 어린 시절들.. 잊을만하면 찾아와 나를 흔들어 놓고, 그때 그 순간의, 결코 겪고 싶지 않던 기분들을 다시 느끼도록 만든다.

그것들은 이 악어와 같다. 그리고 그 악어들은 이제 나와 상관없는 세계 속에 존재한다. 이제는 지나가버린 시간. 돌아가기 싫다고 발버둥 치지 않아도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 말이다.

악어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얼마 전 연못 앞에 이 표지판이 생겼다. 나처럼 악어에게 빵을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었나 보다. 몇 년 전 악어에게 딱 한번 먹이를 주었을 뿐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더 이상 악어에게 빵을 던져주지 않기로 했다. 내가 주는 먹이를 먹고 너무 무럭무럭 자라서 영화 엘리게이터의 악어처럼 커지면 어쩌는가. 현실의 악어는 한 번의 먹이로 그럴 일이 없겠지만, 내 마음속 악어들은 관심을 가지고 먹이를 줄 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자라난다.

악어는 여전히 그 연못에 산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를 내 마음속에서 보내주기로 했다.

악어와 나는 그냥 함께 존재하는 사이가 되었을 뿐이다. 악어는 연못에서, 나는 이곳에서. 각자의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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