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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Feb 05. 2019

사람이 되는 기준

스타트렉에서 탐색한 인간의 조건

스타트렉 시리즈는 매회마다 특이한 외계 종족 그리고 상이한 외계 문화와의 충돌, 혹은 함선 내 선원 간의 갈등구조 등을 기본으로 진행된다. 엔터프라이즈호 함교에서 근무하는 고급장교들도 다양한 (지구의) 인종 그리고 독특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지구인으로 구성된 스타플릿 함대이지만 우주 연방에 가입된 외계인 선원도 매 시리즈마다 등장한다. 가장 독특한 인물이 첫 시리즈 시작과 함께  등장한 '스파크'로 불리는 외계 종족 '벌컨'족 선원이다. 벌컨족은 감정을 조절 못해 종족 자체가 멸종될 뻔한 과거가 있다. 다시 말해 첨단 과학기술을 마구잡이로 사용할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는 과정 중에 감정조절 (거의 억압에 가까운) 능력을 습득하고 키웠다. 그 결과 벌컨족인 스파크는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 감정을 무시해 금욕적인 수도사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또한 손으로 상대방 어깨만 잡으면 실신시킬 수 있고 힘도 인간보다 월등하다. 그리고 상대방과 접촉해 정신을 교류하거나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발달한 문명 덕에 인간보다 우월한 지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주어진 자료에 기반해 실리적인 판단을 하는 모습은 감정 없는 기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끔은 명상을 하면서 해탈을 한 선승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수명이 200년 이상 되지만 7년마다 돌아오는, '폰파'로 불리는 일종의 '번식기' 때는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동물적인 모습이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안드로이드형 로봇인 '데이터'가 등장하고 이후 시리즈에서는 홀로그램인 '닥터'가 등장해 선원들을 치료한다. 재미있는 점은 벌컨족은 생명체이지만 기계와 컴퓨터 프로그램 조합체인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터', 아예 컴퓨터 프로그램이 시각적으로 구현된 홀로그램 '닥터'도 항상 인간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논리적으로 보면 틀림없이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우주에서 존재하고, 다른 외계 종족과의 경쟁(일부 종족과는 목숨을 건 전투를 한다)에서 승리해 살아남는다는 것이 스타트렉 시리즈의 기본 전제다(하긴 이래야 극이 진행될 수 있다).

스타트렉 :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즌2, 9화 사람이 되는 기준(The Measure of A Man) [선장 일지 스타데이트 42523.7, 방영일시 : 1989년 2월 13일]에서는 안드로이드 로봇 '데이터'를 통해 인간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세울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안드로이드 로봇인 데이터는 선원들과 포커 게임에 참가한다. 이론적으로 자신이 이길 것 같았지만 상대방의 블러핑에 속아 게임에 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장면은 '데이터'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실마리로 극에 복선을 깔아 둔 셈이다. 여기에 안드로이드 로봇을 연구하는 매독스 중령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매독스 중령은 안드로이드인 데이터가 스타플릿 아카데미에 입학하려 할 때 지각력이 없다는 이유로 유일하게 입학 반대한 이력이 있다. 이제 매독스 중령은 데이터를 만든 누니언 숭 박사의 연구결과를 공부해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만들려 한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의 내부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 분해하려 한다. 매독스 중령은 데이터를 지칭하는 말로'He'가 아닌 'It', 혹은 'This'라고 말한다.


피카드 선장은 처음에는 데이터를 설득하려 한다. 하지만 데이터는 기관실 장교인 라포지 대위의 눈이 인간의 생체적 눈보다 뛰어난데 왜 모든 장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라포지 대위는 선천적 맹인이지만 보조기구를 착용해 인간이 볼 수 없는 특수 물질도 볼 수 있다. 이 대답에 피카드 선장은 말문이 막힌다.

매독스 중령은 데이터에게 기억과 지식은 그대로 보존된다고 말한다. 데이터는 사건들의 단순한 사실만 남을 거라 말하면서 그 순간의 본질과 맛은 사라질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포커를 친 경험을 말한다. 포커 게임 전에 모든 정보를 습득했지만 현실은 규칙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예로 든다. 정보를 다운로드할 수는 있겠지만 그 경험의 본질까지 보존하지는 못할 거라 말하며 매독스 중령의 의견에 반대한다.


데이터는 매독스 중령의 지시에 불복종한다. 완벽하게 검증된 연구가 아니기에 유일한 안드로이드 로봇인 자신이 망가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명령 불복종을 위해 아예 스타플릿 선원에서 사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독스 중령은 기계에 불과한 데이터가 이런 권리가 없다고 하면서 법적 판단을 요구한다.

데이터의 법적 존재를 판단하기 위해 심리가 열린다. 라이커 부선장은 재판장을 맡은 23번 섹터 법무감인 필리파 루부아에 의해 데이터가 스타플릿의 재산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검사로 지명된다. 라이커 부선장은 개인적으로 데이터와의 관계 등을 이유로 사임하겠다 했으나 법무감은 그렇다면 심리 없이 데이터를 로봇 재산으로 인정하겠다고 위협한다. 결국 라이커 부선장은 심리 중에 기능정지 버튼을 눌러 작동을 멈추게 만들면서 데이터가 기계에 불과함을 증명한다.


변호에 나선 피카드 선장은 이 같은 결정적 한방에 궁지에 몰린다. 피카드 선장은 10층 바를 운영하는 귀난의 조언을 듣는다. 귀난은 여러 세상의 역사를 보면 늘 사용 후 버려지는 창조물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남들이 피하는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한다. 그러면서 데이터를 이용해 군단을 만들면 복지나 그들의 감정을 고려할 필요 없이 사용 후 버릴 수 있는 세대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그러자 피카드 선장은 노예나 다름없다고 답한다. 재미있는 것은 귀난은 외계 종족이긴 하지만 겉모습은 전형적인 흑인 모습이다. 한마디로 남북전쟁 이전 미국 역사 속의 노예 계층을 생각하게 한다. 귀난이 너무 심한 표현이 아니냐고 하자 피카드 선장은 이런 진실을 편안하고 완곡한 표현을 써서 왜곡하고 숨겨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데이터가 스타플릿의 '재산'이라는 쟁점이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다시 열린 심리에서 피카드 선장은 데이터가 사임하려고 하면서 챙긴 개인 사물을 보여준다. 수많은 훈장을 챙긴 이유를 묻자 데이터는 목적은 없고 그냥 간직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피카드 선장이 준 책은 우정과 자신이 복무했던 시간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에 간직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다른 선원들의 이미지는 없는데 외계인에게 살해된 여성 선원 '타샤 야'의 홀로그램 이미지를 간직한 이유를 묻자 타샤와의 약속 때문에 답할 수 없다고 말한다. 피카드 선장의 설득에 타샤와는 특별히 친밀한 관계였다고 말한다(사실상 인간과 안드로이드 로봇 사이의 사랑 문제를 제기했다).


매독스 중령은 지각이란 지성과 자아를 인식하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데이터는 지각이 없는 기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카드 선장은 인간인 자신과 안드로이드인 데이터와의 차이점이 없음을 증명하며 매독스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러면서 데이터 1인은 경이로운 존재이지만 연구가 진행되어 수천의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진다면 사실상 하나의 인종이 된 이들을 그때도 자유를 속박할 수 있는 (개인 혹은 스타플릿의) 재산으로 볼 것이냐고 반문한다.

결국 필리파 루부아 법무감은 이렇게 판결한다.

 It sits there looking at me, and I don't know what it is. This case has dealt with metaphysics, with questions best left to saints and philosophers. I'm neither competent nor qualified to answer those. I've got to make a ruling, to try to speak to the future. Is Data a machine? Yes. Is he the property of Starfleet? No. We have all been dancing around the basic issue. Does Data have a soul? I don't know that he has. I don't know that I have. But I have got to give him the freedom to explore that question himself. It is the ruling of this court that Lieutenant Commander Data has the freedom to choose.

(저기 앉아서 날 보고 있는데 난 저게(처음에는 영어로 'It'라고 했다) 뭔지 모르겠다. 본 사건은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다뤄졌고 성인과 철학자가 답해야 할 질문이 나왔다. 난 이런 질문에 답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그러나 미래를 말하면서 판결을 해야 한다. 데이터가 기계인가? 그렇다. 그가 스타플릿의 재산인가?(여기부터 'It'가 아닌 'He'가 사용된다) 아니다.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토론했다. 데이터에게 영혼이 있는가? 난 모르겠다. 내가 영혼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이 질문에 답하려고 탐구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이 법정은 데이터 소령이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판결한다.)


인간은 이미 아프리카 흑인을 미천한 존재로 여긴 역사가 있다. 그 이전에도 노예, 혹은 신분상의 계층에 따라 인간을 차별한 경험이 있다. 어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지금도 있는 것 같다. 이제 인간이 만든 피조물을 고장 나면 버릴 수 있는 전자제품으로 취급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존재로 대우할지를 결정할 선택의 기로가 곧 닥칠 것이다. 알파고의 충격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 충격을 새로운 세상을 여는 활력소로 삼을지 아니면 잡혀 먹힐지 선택은 자유다. -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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