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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Mar 23. 2019

금수저 의경 일기

'눈'이 '말하기' 시작했다. 우병우 방식은 끝났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일, '병역 의무'다. 군대란 전쟁 대비 조직이니 당연히 훈련 기간 중 육체적 고통은 기본이고 복무 기간 중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이런저런 손해 아닌 손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병역을 피하려고, 피하지 못하면 조금이라도 쉽게 하려고 무리를 하다 여러 문제가 생긴다. 신문이나 방송에 '병역 비리' 키워드로 나오는 기사들이 이런 것들이다.

2년 전 내용이 드러나 국민의 화를 돋운 일이 있었다. 의경으로 입대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 근무 실태가 대표적이다.

우 전 수석의 아들은 지난 2015년 4월 서울 종로구 정부 서울청사 경비대에 배치됐다. 석 달 뒤인 같은 해 7월에는 서울청 운전병으로 전출됐다. 운전병 근무 특성상 고된 일이 적다는 점에서 이른바 '꽃보직'으로 불리기도 한다. 자대 배치 후 4개월 동안은 전출을 못 하도록 한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강행된 전출이었다는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우병우 아들 '코너링' 좋아 뽑았다던 그 사람… 이번엔 "이름이 좋아서"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차량 운행일지에 따르면 우 씨가 전입한 지난해 1월부터 전역 전날인 11월 24일까지 329일 가운데 그가 외출한 날을 뺀 풀타임 근무일은 138일에 불과했다.
[출처: 중앙일보] "우병우 아들, 한 달에 13일꼴로 운전병 일해… 다리 부상에도 선발"

금수저 의경 일기/금중혁 지음/2019.2.21. 초판/도서출판 눌민/16,500원

이런 일이 아주 드문 특별한 일인지 궁금함을 가진 한 남자의 의경 근무 기록이 책으로 나왔다. 출판사에서 살짝 자극적인 (그래야 판매에 도움될 거라는 영업전략이 있었을 거다) 책 제목을 붙였다. "금수저 의경 일기"이다. 저자는 금태섭(琴泰燮)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아들인 금중혁이다. 아버지 못지않게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듯한 젊은이다. 아래는 책머리에 적은 자기소개글이다.

『정치인 아들 8년 차. 아버지의 취미(이자 직업) 덕분에 환각을 보는 지경까지 몰린 적도 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딴 글을 쓰고 있었다. 대신 그 덕분에 아주 범상치 않은 군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전공은 생명과학, 취미는 파충류 돌보기, 홈베이킹, 덕질에 이어 최근에는 운동에 꽂혀 하루에 턱걸이를 100개씩 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고자 25개국을 넘게 여행했고 선거캠프 두 곳에서 굴렀지만 역시 집에서 혼자 노는 게 가장 좋다고 믿고 있다. 요약하자면, 어디에나 있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평범하지도 않은 청년. 185, 복근 탑재.』


책을 보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아들 사건이 특별한 일이 아님이 드러난다. 황당하고 허탈한 사실은 금수저가 아닌 일반 병사들은 시기하지만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하기도 한 모습이었다. 그런 계급(?) 자제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는 생각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군대라는 수직적이고 강한 계급사회의 조직원이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는 생활이라는 점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약간 결이 다르지만 몰카 범죄를 저지른 의경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머뭇거리는 조직원의 모습을 보게 된다. 병역 의무가 아닌 밥벌이를 하는 직원(경찰)이 조직원으로서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잘못된 일을 지적하고 고치려 할 때 책임져야 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넓게 잡은 직책상 책임범위는 잘못을 고발하거나 고치기보다 한통속이 되기 쉬움을 본다.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대한민국은 아직도 다듬을 곳이 많은 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행인 것은 끊임없이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저자가 의경으로 근무하면서 겪은 시위의 격렬함이 힘들었다지만 5 공 시절 돌과 최루탄, 곤봉과 죽창이 난무하던 시절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이 나아진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하야할 때는 시위대의 죽음이 필요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촛불로 충분했다.

저자 소개에 나온 "특별하지는 않지만 평범하지도 않은 청년"이라는 말은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국회의원 아들이기에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 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의경으로 근무하면서 이런 글을 써서 책으로 낼 수 있기에 평범하지 않을 수 있단 말도 된다. 하지만 잘못된 일을 보고 말할 줄 알고 지적할 줄 알고 고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때는 이런 과정이 특별한 일이 아닌 평범한 일이 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당연히 대한민국은 더 좋은 나라가 될 것이고...


저자는 아버지, 금태섭 의원의 잘못을 자신만 알고 있다면, 고민은 하겠지만 고발할 거라고 밝혔다. 미쳤다고 욕할지라도 그렇게 할 것이고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글쓴이는 우리 사회가 내부 고발자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음을 안다. 그래도 공인이고 정치인인 아버지에 대한 고발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잘못된 일을 하는 소수를 인정하는 순간 피해는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나눠 갖게 된다는 것이다. 잘못된 일에 눈감는 주변인이 없게 같이 눈뜨고 응원하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잘못을 본 '눈'이 감지 않고 '말하기'와 연결되는 세상이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도 머리글에서 "내가 하려는 일은 분명 옳은 일이다. 그러나 똑똑한 일인지는 모르겠다."라고 주저하고 있다.


책을 출판하기 전 보여준 원고에 대한 부모 반응이 재밌다.

반대할 줄 알았던 엄마는 알고 있던 출판사 사장에게 곧바로 원고를 보냈다.

좋아할 줄 알았던 아빠는 (검사 출신답게) 몇 가지 지적 사항을 말하면서 출판 불가 의견을 냈다.

- 남의 사생활을 너무 적나라하게 적었다.

- 재미있는 글이 뒤에 몰려 있다.

- 공격당할 요소가 너무 많다.

- 특히 글 앞부분은 아이가, 뒷부분은 어른이 쓴 것 같다.


저자는 의경 생활 동안 자신이 성장했기에 일기 쓰듯 한 글 속에 어른과 아이 모습이 함께 보였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반대가 있지만 자신은 아빠가 보였던 과거의 행동처럼 책을 출판하기로 작정하고 글을 다시 써서 완성한다.


[ 사족 ]

의경 근무 639일 만에 전역하고 게임을 하루 10시간씩 하기도 하고 헬스로 몸짱이 됐다.

(내가 군에 있을 때와 시절이 바뀌었으니 짧게 근무한 것일 테고, 게임하고 헬스 몸짱이 된 것은 의경이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그런데도 힘들었다는 글을 보면 배부른 소리라는 생각이 드는 나는 '꼰대'가 맞는 것 같다.) - 빈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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