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달라지면 규범·규칙 바뀌는 게 당연... 그래도 아쉬운 점은...
2020년 10월 초는 코로나 19 사태로 귀성이 금지된 초유의 추석 연휴로 기록됐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불효자는 '옵'니다]라는 현수막이 화제가 됐다. 지난 2020년 9월 16일 KBS <뉴스 9>에서 클로징 멘트로 충남 청양군이 내건 '불효자는 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소개했다. 이 문구는 광고학을 전공한 강원도 정선군청의 조대현 주무관이 만들었다. 그는 "TV조선에서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에서 정동원이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란 노래를 패러디했다"라고 말했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해 주목도를 높이는 광고학의 이론을 잘 살린 문구다. 그는 이 문구를 저작권 없이 전국에 배포했다.
이렇게 정부의 강력한 권유와 언론 매체 등의 캠페인 덕에 귀향 포기자가 많아졌고 자연스레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특정 종교를 믿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코로나 19 사태도 또 다른 이유가 된 것이다. 어찌 됐던 코로나 19 사태 이후 우리 생활 방식은 많이 변할 것 같다.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 비대면 증가와 함께 늘어난 온라인 쇼핑과 배달 등등. 여기에 이번 추석을 기점으로 전통 문화인 제사와 차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 같다.
이미 젊은 층을 중심으로, 특히 여성에게 부여된 의무 같은 제사음식 준비의 어려움은 여권 신장 분위기에 맞춰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을 높게 만들었다. 여기에 코로나 19 사태는 외적인 폐지 요건을 더한 셈이다.
사실 제사·차례 문화는 조상을 기억하는 우리의 방식이다. 세계의 각 문화권마다 세상을 떠난 조상에 대한 예우 방식은 다양하다. 우리는 조선 개국과 함께 통치 철학으로 자리한 유교와 함께 확립된 각종 사회 규범이 생겼다. 관혼상제(冠婚喪祭)의 법칙은 주자가례(朱子家禮)를 교본 삼아 만들었다. 이 중 하나가 제사 문화다.
주자가례(朱子家禮) : 중국 남송 시대 주희(朱熹, 1130~1200)의 저서. 사대부 집안의 예법과 의례에 관한 책.
본래 책 제목은 『가례(家禮)』인데, 주자(朱子, 1130~1200)가 저술하였다 하여 통상 『주자가례』라고 부른다. 주자는 남송 대 사람으로 성리학을 집대성한 학자였는데, 그의 성리학에서 예와 의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사대부들이 준수할 의례를 정리할 목적으로 편찬한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고려 말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주자가례』도 함께 들어왔다. 조선 건국 이후 일반 사대부가뿐 아니라 왕실의 국가 의례를 만들 때에도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17세기 후반 조선에서 예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주석서가 출간되었다.
책의 체제는 관례, 혼례, 상례, 제례의 네 가지 의례로 편성되어 있다. 이에 따라 보통 4례(四禮)라고 하면 가정에서 지켜야 할 의례를 지칭하기도 하였다. 이 중에서도 상례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주자가례』의 상례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전통적인 상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가례』는 중국 남송 시대의 저작이기 때문에 내용 중 일부는 조선에서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도 존재하였고, 아울러 본래 의미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이 어려운 부분도 존재하였다. 이에 따라 『주자가례』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시각 차이가 존재하였고, 일부는 해석의 내용이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효종(孝宗, 재위 1649~1659) 대와 현종(顯宗, 재위 1659~1674) 대 국왕이 어떠한 상복을 입어야 하는지의 문제로 발생한 예송논쟁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논쟁은 비단 『주자가례』 내용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정파가 지향하는 국왕의 권위, 예학적 위치 등과 관련되는 것으로 당대 정치사에서 중대한 문제로 다루어졌다.
성인이 되었음 알리는 의식인 관례(冠禮), 결혼식을 올리는 혼례(婚禮), 장례를 치르는 상례(喪禮), 제사를 지내는 제례(祭禮) 중 현대 사회까지 그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상례와 제례라고 볼 수 있다. 성인식은 없어진 지 오래다.(가끔 지자체 등이 주최한 이벤트성 행사가 열리곤 한다.) 결혼식은 대부분 예식장에서 하거나 종교 시설에서 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전통혼례는 특정한 장소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의 열리지 않는다. 장례식이 그나마 유교 형식에 맞춰 진행되긴 하지만 종교에 따라 달리 진행되기도 한다. 제사는 특정 종교를 갖지 않는 한 대부분 주자가례에 맞춘 모습으로 현재까지 남아 진행된다.
그러나 전통 방식(주자가례 방식에 더해 각 집안마다 전해진 방식)으로 하기에는 현대 가족 구성원이 진행하기가 어려워졌다. 일단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준비할 음식 양과 종류가 많다. 집안 잡일을 도맡아 하던 하인이 있던 조선시대 양반집이라면 문제가 없다. 그리고 경제부흥과 함께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기 전 1960년대 초반 대가족 상황이라면 이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까지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사회 모습은 이런 장대한(?) 규모의 제사상을 차리기가 쉽지 않다. 물론 자손들이 분담해 음식을 장만하면 된다지만, 현대사회 직업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더구나 자녀를 기껏해야 1~2명을 두는 게 일반적인 상황인데 미래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래서 제사상 차림을 만들어 배달해주는 업체가 생겼다. 그러나 왠지 이 방식은 성의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지 확산되긴 어려워 보인다. 결국 방식이 변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진행되는 제례는 형식이 강조된 모습이다. 조율이시(棗栗梨柿:대추, 밤, 배, 감 혹은 곶감),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물고기는 동쪽에, 고기는 서쪽에 놓는다는 어동육서(魚東肉西)라는 말이 제사상 차림에서 흔하게 듣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규칙이 원래 있던 것인가는 의문이 있다.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는 처음부터 없었다 [출처:경북매일]
사실상 모든 규칙은 살아가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시대에 따라 규칙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도로 통행 시 우측통행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1905년 최초의 근대적 규정인 ‘대한제국 규정’에서 우측통행을 규정했다. 일제 식민지 시대 조선총독부는 도로규칙 개정으로 1921년 좌측통행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88년 만인 2009년 10월 1일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 10월 1일부터 우측통행, 우측통행이어야 하는 이유 ] [출처: 중앙일보]
결국 시절에 따라 제사와 차례도 변할 것이다. 이미 차례(茶禮)는 변했다. 한자로 보면 차례는 글자 그대로 녹차 한잔 올리는 간소한 행사였던 것 같다. 그것이 제사상차림으로 변한 것이 현재의 모습인 듯싶다.
그런데 2020년 10월 1일 케이블 TV인 MBC 에브리원에서 방송한 예능 프로그램《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살짝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외국인이 한국에 거주하는 친구 혹은 친지를 찾아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 프로였다. 그런데 코로나 19 사태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한국살이 관찰로 형식이 바뀌었다.
방송 내용은 어머니가 한국 사람인 미국 남자가 이탈리아, 몰도바 출신 친구와 함께 추석 차례상을 만든 뒤 절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어려서 한국 출신 어머니가 제사상 차리는 모습을 보았기에 상 차리기에 도전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미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영상통화로 물어가며, 제사 음식을 실수하며 만드는 모습이 웃음 포인트였다. 그러나 상을 차린 뒤 각자 휴대폰, 아이패드에 할아버지 아버지의 사진을 띄워 앞에 놓고 진지하게 절하는 모습은 무언가 찡하게 만드는 지점이었다. 후기를 말하는 3명의 외국인 입으로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제사의 효용성을 듣게 되니 뭔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개화기 시절 시골을 찾은 외국인 선교사가 촌노를 만난 뒤 느낀 점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노인은 선교사를 안내하면서 산에 있는 산소를 가리키며 저 자리가 자신이 들어갈 묘라고 말해 놀랐다고 했다. 자신이 죽어 들어갈 가묘를 미리 만들어 놓고 직접 잔디를 다듬으며 행복해하는 모습이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죽 늘어선 묘들이 조상들이 차례대로 있는 모습인데 어찌 보면 죽은 자도 현재에 같이 사는 모습이 종교를 떠난 문화충격이라고 했다. 과거를 기억하기에 도움 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산소의 효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대로 돌보지 못해 황폐한 모습의 묘소는 없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장을 한 뒤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수목장을 해 산소를 만들지 않는 현재의 모습도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제사도 마찬가지다. 형식에 압도되어 조상을 모시는 일이 힘들고 고된 노동으로만 기억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국 형식보다는 정성이고 돌아가신 분을 기리는 마음이 중요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평소 피자를 즐겼기에 대형 피자 한판을 제사상에 올리고 제사를 지낸다 해도 그 정성과 의미가 있다면 이게 더 진정한 제사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빈모]
코로나 19 사태로 귀성 인파가 줄었다. 그런데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아도) 여행 수요는 지난해 못지않았다. 제주도와 강원도로 향한 관광 인파가 이를 증명했다. 추석·설날 연휴에 노는 것이 기본이 된다면... 어쩌겠는가 그게 우리가 선택한 모습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