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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Aug 31. 2021

잊고 싶은 기억을 불러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보고 나니...

남자들이 모여서 하는 말 중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하던' 이야기라는 말이 있다.

군대는 대한민국에서 군에 지원하는 일부 여성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조직이다. 축구 또한 2002년 한일〮월드컵 거리응원전이 있기 전에는 스포츠에 관심 없는 여성들에게는 미친 듯이 공 쫓아 몰려다니는 운동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한다면 - 특히 여성이 포함된 자리라면 - 군대 시절 이야기는 안 하는 것이 대한민국 불문율 비슷하게 존재한다. 사실 군대 이야기는 낚시 이야기와 비슷하게 전개된다. 낚시꾼들 사이에서 놓친 물고기 크기는 실제보다 커진다. 보진 못했지만 낚싯줄 당기는 힘이 엄청 크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하면서 물고기 크기도 커진다. 군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 파이어파워(GFP)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군사력 평가지수 0.1621을 받아 세계 138개국 중 6위이다. 이 정도 규모인 대한민국 군대이니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자신이 복무한 직군이 아니라면 알 수 없으니) 허풍에 가까운 과장도 쉽다. 그래서 유튜브에서 진행한 '가짜 사나이' 시리즈가 '더(The) 진짜' 같기에 인기를 끈 이유다.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D.★P.'를 봤다. 군 시절 군무이탈 체포전담조(Deserter Pursuit, 줄여서 D.P.)였던 웹툰 작가의 경험을 엮어 만들었다. 내가 군 생활을 했던 1980년대 중반 시절 겪었던 일들이 드라마 속에 보였다. 나는 선임 앞에서 자위행위시키는 '고사포 발사'는 없었지만 폭행은 간간이 겪었던 일이다. 논산훈련소 때 처음 들었던 비명처럼 악쓰던 소리. 논산훈련소도 하나의 부대이니 그곳으로 배치받은 신병이 이른바 전입신고 전에 받는 교육(?) 과정에서 내는 소리였다. 군에 들어가면 용어의 다른 사용법을 배운다. '교육'이란 말은 '폭행'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집합'은 또 다른 단체 '기합'(요즘은 '얼차려'로 바뀌었다고 했고 이마저도 없어졌다고 한다.)이었다. 나도 뱃가죽에 태권도장의 상표로 쓰이는 주먹 모양 멍 자국이 생기기도 했다. 

강요된 자위행위인 '고사포 발사'는 군 가기 전 휴가 나온 동아리 선배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해병대 복무 중인 선배는 훈련받을 때 경험을 말해주었다. 엄청 더운 여름 날씨에 한마디로 'X뺑이'치면서 훈련을 받다가 휴식시간이었다. 조교가 훈련병에게 말했다. "더운데 시원한 '해병 요구르트' 마실 거냐?" 당연히 훈련병들은 "예" "그럼 PX에 가서 '해병 요구르트' 사와라. 거기 너, 가서 내 이름 말하고 머릿 수대로 사와." "옙" PX가 훈련장에서 좀 떨어진 곳이었지만 지시받은 훈련병은 열심히 뛰어갔다. 잠시 후 나타난 훈련병이 빈 손으로 돌아와 말하길 "PX병이 욕하면서 쥐어박더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교가 "너희 들 '해병 요구르트'가 뭔지 아나?" 훈련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 "해병 요구르트는 딸딸이 치면 나오는 거다." 이 말을 듣고 훈련병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짓자 갑자기 조교가 돌변했다. "이 XX들이 신성한 훈련 도중에 이빨을 보여? 정신 못 차렸구먼." 그러더니 "지금부터 해병 요구르트 1000cc 생산한다. 실시!" 다들 황당한 표정 짓자 "어 이것들이 더 뺑뺑이 돌아야 정신 차릴래? 실시 안 해?" 그러자 한 둘 자위를 시작했다. 그리고 훈련병 전체가 벌건 대낮에 뜨거운 태양 아래서 집단 자위를 한 것이다.

이 말은 들은 내가 진짜냐 물었지만 해병대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지만 살짝 체념적인 표정이 지나면서 진짜라고 말했다. (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어찌 보면 해병대이니까 그리고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받는 군인이니까 가능하단 생각도 들었다. 인간이 아닌 군인이다. 우스개 소리로 군부대가 있는 시골에서 버스에 올라탄 할아버지가 "사람은 없고 맨 군바리뿐이네."란 말을 했다는... 한마디로 군인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이런 군 경험은 차이가 있을지언정 각자 나름대로 고통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 최근 페미, 여혐 논란과 함께 군입대와 군 가산점 문제가 이슈로 떠오른 것도 이런 기억에 대한, (징병제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남자들이 가진 일종의 트라우마 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D.★P.'는 코믹하게 그려진 부분도 있고 나름 어려움 속에서도 재미 찾을 수 있는 부분도 그렸지만 나에게는 전체적으로 군 생활 중 있었던 어두운 부분을 더 기억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요즘 들어 여군에게 저지른 성추행 문제 등으로 볼 때 군이 아직도 바뀌어야 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게 한다. 줄거리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드라마 내용을 미리 알려 보지 않은 분들의 즐거움을 빼앗아도 안 되겠지만, 나 또한 나빴던 기억이 소환되는 게 싫기 때문이다. 출연진들 연기가 좋았고 한준희 감독도 나름 꼼꼼하게 잘 정리해 만들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군에 가지 않은 입영 대상자들이 불안을 느낄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 모습도, 내 경험도 과거 모습일 뿐이다. 만일 부조리한 일이 발생한다면 과거와 달리 알릴 수 있는 수단도 많아진 세상이다. 휴대폰 사용이 자유화되었으니 확실하게 달라졌다. 이 드라마가 제대로 된 군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국방부에 계신 높으신 분들이 다시금 마음을 다 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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