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모 Jun 11. 2022

송해 선생님 그때 죄송했습니다.

영원히 떠난 전국 노래자랑 최장수 사회자이자 프로그램 그 자체였던 송해

14년 전인 2008년 9월 송해 선생님을 만났다. 사진기자라는 직업이 여러 사람을 만나긴 해도 오랜 시간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이슈가 있는 사람을 그때그때 만나기에 어찌 보면 출근길에 스쳐 지나는 사람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다만 인터뷰 같은 경우 길게는 1~2시간 만나며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국회나 정당 같이 고정적인 출입을 하게 된다면 몇 분 정도라도 매일 같이 얼굴이 마주치기는 한다.


코미디언 송해로 알려진, 신장 162cm로 자그마한 이 남자는 1988년 5월부터 KBS의 장수 프로그램인 전국 노래자랑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1927년생이니 나이가 이미 60이 넘은 때였다. 내가 여의도 공원에서 방송 녹화 중인 그를 찾은 것은 '전국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1년 모자란 30주년이 되고, 사회자로 20년을 맞은 MC 송해 특집기사를 위해서였다. 이때 나이가 81세였으니 이때도 고령이라면 고령인 나이였다. 일요일 여의도 광장에는 많은 방청객이 모여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녹화는 추석특집용으로 '전국 통장 이장 노래자랑'이었다.

전국 노래자랑 사회자인 송해는 녹화 시작 전 방송대본을 여러 번 정독했다.  

MC 송해는 일찌감치 녹화 시작 전에 현장에 도착해 방송대본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미 대본을 몇 번을 본 듯했지만 다시 푸른색 사인펜으로 멘트를 고치고 강조할 부분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그런 뒤 녹화 시작 10여분 전에는 출연진들과 만나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했다. 또한 출연자가 준비된 장기나 물품이 있는지 묻고 어떻게 하면 된다고 살짝 알려주기도 했다. 사실상 PD 역할까지 하는 셈이었다.

사회자 송해가 방송 녹화 전 출연자들과 만나 소소한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방송 녹화가 시작되자 80대 노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낭랑한 목소리로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며 무대에 등장했다. 아직 뜨거운 여름 햇빛이 쏟아지는 날씨였다. 녹화 후반부에서는 긴 재킷을 벗고 흰색 반팔 티셔츠 차람으로 사회를 보았다. 이날도 어김없이 송해 오빠라고 부르며 지방 향토 음식을 먹이고 포옹을 하는 여성 출연자가 등장했다. 이 출연자는 기습 뽀뽀까지 했다.

방송 중 일어나는 이런 해프닝이 전국 노래자랑 인기의 한 부분일 것이다.

다음 날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자리한 ‘한국 원로 연예인 상록회(常綠會)’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무대 위에서 보여준 모습과 달리 인터뷰 도중 회한에 잠기기도 하고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방송인이자 MC로서의 송해의 희망사항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대에서 시작해서 무대에서 죽을 사람입니다. 다른 길로 가면 100번 지게 돼 있어요. 무대인은 무대만 생각하며 살아야지 옆길 돌아보면 무대는 소홀해지기 마련이에요. 웃음 아낄 게 뭐 있어요. 죽는 그날까지 무대에서 사람들과 웃고 싶어요.”


그랬다. 그의 희망은 죽는 그날까지 무대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주제넘은 질문을 했다. 녹화 시작 전 방송 대본을 보려는 송해 선생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국 노래자랑 하면 바로 송해 선생님이 떠오르는 프로그램인데, 선생님 후임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이 말에 송해 선생님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프로그램을 담당한 박태환 PD가 전했다. "절대 선생님에게 후임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기분 나빠하신다고..." 나는 아차 싶었다. 송해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철 모르는 애송이 사진기자가 주제넘은 말을 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라 싶었다. 이제 나도 회사에서 정년을 마쳤고, 다른 곳이지만 사진기자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야 송해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듯싶다.

"죄송합니다. 그땐 정말 철없는 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고 좋은 곳에서 즐거운 시간 이어가세요..." [빈모]


https://www.joongang.co.kr/article/329738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77504


매거진의 이전글 포토몽타주 대가, 제리 율스만 사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