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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모 Apr 25. 2022

포토몽타주 대가, 제리 율스만 사망

사진은 찍는 순간 완성되기도 하지만 나중에 암실에서 재탄생하기도 한다.

사진가 제리 율스만(Jerry N. Uelsmann) 사망 기사가 지난 4월 14일 자(현지시간) 뉴욕 타임스에 실렸다. 

그의 아들 앤드류는 (1934년 6월 11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아버지가 지난 2022년 4월 4일 미국 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서 향년 87세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사인은 뇌졸중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제리 율스만(Jerry N. Uelsmann)의 자화상. 흰 머리카락을 구름과 합성했다. © Jerry N. Uelsmann


율스만(https://www.uelsmann.net/)은 1960년대에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흑백사진으로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고 사진 작업이 디지털화되면서 '포토샵'이라는 엄청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사진 합성은 쉬운 작업이 되었다. 율스만은 '포토샵'이 없던 시절, 암실(暗室)에서 엄청난 공력을 동원한 수작업을 통해 합성사진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합성사진은 현실에 있는 듯하면서도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관람자에게 시각 충격을 준다.

몽환적 분위기인 율스만의 사진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중력과 합리성의 법칙을 무시한 것처럼 보인다.

Untitled, 1991 © Jerry N. Uelsmann(왼쪽), 피레네의 성(The castle in the pyrenees, 1959) 르네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의 성'은 나중에 '천공의 성 라퓨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 디자인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고, 영화 '아바타'에서 둥둥 떠다니는 바위 숲 장면으로도 변주되었다. 율스만의 사진은 르네 마그리트의 사진과 달리 바위 아래와 위로 돌이 떨어져 생긴 파문이 있어 또 다른 느낌이다. 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방금 물에서 나온 듯 한, 그리고 왠지 이 바위가 움직일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또한 아래가 뾰족하고 역삼각형 모양인 바위는 쓰러질 듯한 불안감도 준다.


율스만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대체 우주에서는 보트가 구름과 폭포 위로 떠다닌다. 나무줄기에서 갈라진 손이 살며시 새 둥지를 잡고 있다. 연못 위에 마법처럼 놓인 빈 의자 5개가 마치 회의를 하는 것처럼 다섯 번째 의자를 마주하고 있다. 젊은 나체 여성이 멀리 산이 보이는 연못 위 상공을 맴돌고 있다.

Journey into Night, 2006 (hands with nest) © Jerry N. Uelsmann

위 사진은 2006년 제작한 사진인 '무제 2006'이다. 암실에서 확대기 4대를 사용해 까마귀, 맨해튼의 나무줄기, 창 밖에서 발견한 새 둥지를 잡고 있는 아내의 손을 찍은 사진 3장을 합성했다.. 율스만은 "이 나무가 손에 섞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놀라운 믿음의 도약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지만 카메라는 탐험을 시작할 수 있는 라이선스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참고 : 포토샵 1.0 버전이 맥킨토시 컴퓨터용으로 1990년 출시되었다. 따라서 2006년이면 윈도우, 맥 OS 용 포토샵 CS2 버전이 판매될 시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스만은 컴퓨터 디지털 작업이 아닌 암실 작업 만으로 사진 합성작업을 했다.)



율스만은 2013년 4월 스미소니언 매거진에서 "대부분의 사진가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가장 창조적인 제스처를 보여주는 때라고 생각합니다."(사진은 촬영 순간 완성된다고 본다는 뜻.) "하지만 나는 암실이 창조 과정이 지속될 수 있는 시각 연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첫 반응이 '이 사진 어떻게 만들었지?'라면 이 작품은 실패한 작품"이라고 율스만은 말한다. “두 번째 반응이 되는 건 상관없지만 첫 번째 반응은 '이상하네? 이건 뭐지?'와 같은 진정한 감정적 반응이었으면 합니다. 숨겨진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사진 속에 신비함을 지니고 있는 이미지를 좋아합니다.”


율스만은 2011년 뉴욕타임스(NYT)의 렌즈 블로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미지들이 어떻게 잘 어울릴지 관찰한다"라고 말했다. "일종의 인식 과정인데 저는 사진을 찍으면서, 제가 20년 전 혹은 15년 전에 찍은 사진을 기억해 냅니다. 저는 그 상황에 맞는 필름을 찾아야 합니다."

율스만은 합성할 이미지를 고르기 위해 수년간 쌓아둔 밀착 인화지 더미를 샅샅이 뒤졌다.

각각 다른 필름을 거치한 확대기 7대가 있는 암실에서 인화지를 확대기를 옮겨가며 율스만은 작업했다. 필름마다 다른 요소들을 인화해 역설, 놀라움, 상징으로 채워진 포토몽타주를 만들었다. 작업에 따라서는 며칠이 걸리기도 했다. "만약 내가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평론가 필립 게프터(Philip Gefter)는 율스만은 "실제 물체를 촬영한 매우 정확한 사진을 교묘하게 병렬시켜 초현실적인 효과와 특이한 부조화를 만들어냈다"라고 말한다.

"그의 의도는 완전하게 상징적이었고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카를 융'이 말한 '본성'의 심리적 원형에 바탕을 두고 있다."라고 게프터는 덧붙였다.


Apocalypse II, 1967 © Jerry N. Uelsmann

2012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기획전 '가짜 : 포토샵 이전에 조작된 사진(Faking It: Manipulated Photography Before Photoshop)'이 개최됐다. 전시회에 출품된 율스만의 사진 중 하나인 '무제(Untitled)'는 천장이 뻥 뚫려 하늘이 보이는 작은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서재 안에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는 지도가 펼쳐져 있고 작은 남자가 지도 위를 걷고 있다. (율스만은 해변을 걷고 있는 남자 사진을 찍어 여기에 합성했다.)

“Untitled,” 1976. © Jerry N. Uelsmann

이 전시회를 기획한 미아 파인만(Mia Fineman)은 율스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진 예술 제작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당시 사진계 주된 풍조는 사진가는 셔터를 누르는 순간 완성된 사진을 시각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스트레이트 사진의 순수성과 전(前) 시각화 아이디어에 집착했습니다. 율스만은 그 모든 것에 반대했습니다."


제리 율스만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잘못된 글이 있었다. [제리 율스만 & 매기 테일러 사진전]을 소개한 경향신문 2007년 3월 29일 기사였다. 기사는 경향신문 기자가 아닌 외부 필진이 쓴 글이었다.

율스만을 소개하면서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조한 듯한데 Jerry Yulsman (한국 발음은 똑같이 제리 율스만이 되겠다.)이라는 다른 사진가 내용과 뒤죽박죽 된 글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는지 영문 위키피디아에서 첫 문장에 'Not to be confused with Jerry Uelsmann.'이라고 밝혀 놓았다는 점이다. 2007년 당시에는 이 글이 없었나 싶다. 그러니 이렇게 잘못된 내용으로 신문에 실렸을 것이다.



제리 노만 율스만은 1934년 6월 11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노만은 식료품점을 운영했는데 여기서 율스만은 배달 소년으로 일했다. 어머니 플로렌스는 전업주부였다. 율스만은 12살 때 디트로이트 미술관에서 그림 그리기를 배웠고, 이때 반 고흐의 '자화상' 그림에 매료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신문 사진기자를 하면서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율스만이 미국 뉴욕주(州) 북부에 있는 로체스터 공과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의 목표는 초상화 사진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진가 마이너 화이트( Minor White)(율스만은 "카메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시키는 기계"라고 마이너 화이트가 말했다고 전했다.)와 같은 선생님들의 영향으로 그는 사진 분야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1957년 예술학 학사 학위를 받고 졸업한 뒤, 율스만은 1960년 인디애나 대학에서 오디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석사, 사진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0년부터 1998년까지 게인즈빌에 있는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사진학을 가르쳤다. 초기에, 그는 그곳에 있는 단체 암실에서 확대기 여러 대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그의 포토몽타주 창조를 가속시킨 혁신적인 접근방식이었다. 1967년 구겐하임 사진학 펠로우십을 받았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MoMA(뉴욕 현대미술관)의 사진부문 책임자로 유명한 존 삭코프스키(John Sarkowski)는 뉴욕의 데일리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율스만(Uelsmann)은 일단 찍힌 순간 그 사진의 최종성이 생긴다는 것에 대해 감히 의문을 제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보며 깊이 생각하고, 인화 기술을 실험하고, 사진을 재조합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말 예술적이고 새로운 것입니다."라고 삭코프스키는 말했다. 

율스만의 저서와 논문으로는 "율스만: 과정과 지각"(1985), "은빛 명상"(1988), "율스만 무제(Uelsmann Untitled): 회고"(2014, 캐롤 맥커스커[Carol McCusker] 공저)이 있다.


맥커스커는 "율스만 무제(Uelsmann Untitled)" 책에서 게인즈빌에 있는 율스만의 자택 스튜디오를 묘사했다. 그의 벽에는 "만화, 인형의 머리, 움직이거나 말하는 이상한 장난감,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또는 Jerome Bosch, 1450년경~1516년 8월, 네덜란드 화가. 상상 속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로 유명하다. 20세기 초현실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고 여겨진다.)와 19세기 빅토리아(Victoriana) 시대의 3-D 조각들이 핀에 꼽혀있었고, 그의 선반은 카메라 기념품과 간단한 장치, 머그 샷으로 가득 차 있었다."라고 썼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율스만의 다음 창작물을 만들기 위해 영감을 주고 조용한 격려를 하는 합창단을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호스피스 시설에서 사망한 율스만은 아들 이외에도 두 손자가 생존해 있다. 마릴린 슐롯(Marilyn Schlott), 다이앤 패리스(Diane Faris), 매기 테일러(Maggie Taylor)와 3번 결혼 했지만 이혼으로 끝났다.


율스만은 1980년 후반 아도비에서 개발한 포토샵 사용의 이점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날로그 방식의 예술가적 기교를 버리지 않았다. 율스만은 컴퓨터를 이메일 용도로만 사용했다. 율스만은 "내가 22살이라면 아마도 포토샵으로 작업했을 것이다."라고 타임스와 인터뷰했다.

한편 포토샵은 율스만의 진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2013년 트위터 계정을 통해  "제리 율스만의 놀라운 합성물은 우리에게 상상력이 전부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는 글과 함께 '율스만의 교묘한 사진 조작'에 관한 기사를 공유했다.


재미있는 점은 세 번째 아내인 매기 테일러(Maggie Taylor. 1964년생)가 적극적으로 포토샵을 사용한 여성 사진가로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매기 테일러는 율스만이 강의하던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사진과 학생으로 제리 율스만과 만나 무려 27년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부부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부부 사진가로 유명했으나  2016년 세 번째 아내인 매기 테일러와 이혼했다. 매기 테일러는 스텐 브링거트(Sten Bringert)와 재혼해 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서 살고 있다.


포토샵을 사용하는 디지털 아티스트로 유명한 전 부인 매기 테일러는 어도비가 1980년대 중반 새로운 버전의 포토샵 홍보를 위해 율스만에게 포스터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연락했다고 회상했다.

소프트웨어 소개를 위한 것이었다. 어도비는 율스만의 몇몇 필름을 스캔한 뒤 컴퓨터 전문가에게 보내 포토몽타주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두 손바닥 위에 놓인 물가에 주인 없이 떠 있는 보트와 구름 사진이었다. 율스만은 어떤 요소들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결정했지만, 그 소프트웨어(포토샵)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몰랐다.

JERRY UELSMANN (AMERICAN, BORN 1934)

Untitled (Hands with boat and clouds), 1996

Gelatin silver print

10 x 12in

$2,000 - 3,000

https://photography-now.com/exhibition/105126


"율스만은 (포토샵으로 만든) 그 이미지를 좋아했고, 암실로 필름을 가지고 가서 사진으로 다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세 번째 부인인 테일러는 전했다. "축축한 암실에서 일하는 것은 그의 창작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이후 1995년, 아도비(Adob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러셀 브라운(Russell Brown)은 율스만의 작업에 포토샵을 사용하도록 설득하려고 했으나 율스만은 암실 작업을 고집했다.


결국 포토샵은 세 번째 부인 매기 테일러가 적극 사용해 여성 디지털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되었다. 빅토리안 시대 여인 인물 사진에 다양한 요소를 합성한 사진이 특징이다. 테일러는 완벽한 빈티지 사진을 검색해 스캔하고 iPhone(아이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이용한다.

나의 개인적 생각은 율스만의 사진이 더 큰 담론을 담은 느낌이고 테일러의 사진은 아기자기한 소녀적 감성을 지닌 살짝 장난스러운 느낌이다. 사실 포토샵을 이용한 다양한 합성 혹은 색 변환 같은 작업은 왠지 장인 정신이 결여된 느낌이다. 사실 컴퓨터로 하는 정교한 작업도 암실 작업 못지않게 장인적인 행위가 필요하지만 작업 과정상 육체적 고통의 양이 줄었다는 점이 이를 상쇄시켜 값을 떨어뜨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율스만이 1960년대에 완성한 사진 합성, 이중 인화 등을 이용한 포토몽타주의 시각적 충격을 넘어서기가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을 것이다.


매기 테일러 ‘cloud sisters’, 2001

지난 2007년 서울 한미 사진미술관에서는 6월 9일까지 제리 율스만과 그의 아내, 매기 테일러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Maggie & Jerry 전(展)’이 열렸다. 부부 사진가의 작품 1150여 점을 모은 이 전시회에서 제리 율스만이 2006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촬영한 작품 110여 점도 함께 소개되었다. [빈모]


기타 참고 글 : [On Photography: Jerry Uelsmann, 1934-2022] - Kevin Ames 

링크된 이 글 아래 부분에 사진을 만드는 암실 작업 과정을 제리 율스만이 직접 보여주는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다. 한 번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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