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驗)담

by 신작까

누군가 물었다. "그동안 뭐 했어요?" 나는 대답할 수 있었다.

이것저것 했다고.

많이 시작했다고.


하지만 다음 질문에는 멈췄다.

"그래서 지금 뭐 할 수 있어요?"

"..."


경험(經驗)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두 글자로 나뉜다. 한자 經(지날 경)은 본래 실을 베틀에 걸어 길게 잇는 모습에서 비롯되어 '지나가다' '겪다' '통하다'의 의미로 확장되어 과정, 경과, 체험의 축적을 뜻한다. 한자 驗(시험할 험)은 '말'과 '확인하다'의 결합에서 나온 글자로 말의 상태를 살펴 진위를 가려보는 행위, 즉 검증, 확인, 증명을 뜻한다.


이 둘의 조합은 겪어보고, 확인하여 알게 된 것이다. 반복된 체험을 통해 사실성을 검증하는 행위.

그런데 나는 경(經)만 쌓았다.

험(經)이 없었다.


실을 베틀에 걸어 길게 이었지만, 그것이 진짜 천인지 확인하지 않았다. 지나가기만 했지 검증하지 않았다. A를 배우고 B로 가는 게 아니라 A-1, A-2... A-365를 반복했다.

시작은 많았지만 끝은 적었다. 겪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통과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확인하지 않은 축적은 나를 다음으로 데려가지 못했다.


새로운 것을 더 모으기보다, 이미 쌓아둔 것들 중 하나를 끝까지 지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밖으로 꺼내 확인할 수 있을 만큼의 것. 몸에 남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

지금까지는 경(經)만 쌓았다. 이제는 험(驗)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