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낟알

by 신작까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처음 꺼낸 건 몇 년 전이다.

그 뒤로 몇 번을 다시 시작했는지 센 적은 없지만, 매번 '이번엔 끝까지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멈췄고, 다시 '왜 나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섰다.


완성을 기준으로 시작을 평가하면, 밥이 되지 않은 낟알을 만지작거린 시간은 실패가 된다. 다시 시작할 때마다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다짐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밥을 짓지 못한 이유가 낟알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끝내지 못한 건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낟알을 모으는 일과 밥을 짓는 일이 같은 속도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


낟알을 모으는 동안에는 밥이 보이지 않는다. 손에 쥔 알갱이가 언젠가 한 그릇이 될 거라는 믿음만으로 계속 모으는 것은 생각보다 불안한 일이다. 그래서 자주 멈춘다. '이게 맞나' 싶어서, '이걸로 충분할까' 싶어서.


나는 지금 낟알을 채우고 있다. 밥을 짓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엔 알고 있다. 낟알이 쌓이는 동안에는 밥의 모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언젠가 다시 '왜 나는 안 되는가'를 묻게 되더라도, 그때는 손에 낟알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시나브로 딴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