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음 인간

by 신작까

책을 보다가, 사람을 봤다.

같은 '가'라는 글자가 어떤 책에선 '가족'이 되고, 다른 책에선 '가을'이 된다. 위치가 달라지면 의미가 달라진다. 글자는 하나인데, 쓰인 자리에 따라 전혀 다른 말을 한다.


사람도 그렇다. "나"는 하나인데, 아이들 앞에서는 엄마가 되고, 남편 앞에선 아내가 되고, 부모님 앞에선 딸이 된다. 심지어 엄마라는 자리 안에서도 첫째의 엄마와 둘째의 엄마와 셋째의 엄마는 다르다. 밖에서는 누군가의 동료가 되고, 집에서는 며느리가 된다. 같은 사람인데 위치는 계속 바뀐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문 사람을 보면, 그것이 일관되고 흔들림 없어 보인다. 그래서 여러 자리를 오가는 것이 때로 불안정해 보인다. 마치 진짜 자리를 찾지 못한 것처럼.


하지만 동음이의어에게는 진짜 자리가 없다.

'밤'이라는 글자를 보자. 어둠이 내린 시간도 밤이고, 나무 열매도 밤이다. 어느 쪽이 진짜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둘 다 밤이다. 쓰인 자리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뿐, 글자 자체가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엄마인 나도 진짜고, 아내인 나도 진짜고, 딸인 나도 진짜다. 한 자리에 머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자리에서 각각 시작하는 것이다. 엄마로 시작하고, 동료로 시작하고, 며느리로 시작한다. 끝까지 가지 못해도 괜찮다. 글자는 다른 문장에서 다시 쓰인다.


문제는 한 자리만 고집해서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리는 고정되지 않는다. 글자가 문장 사이를 옮겨 다니듯, 사람도 자리 사이를 오간다.


책을 보다가, 결국 나를 보게 된다.

여러 자리에 쓰여 있지만, 어떤 자리는 이미 끝났고 어떤 자리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글자는 변하지 않는데, 쓰이는 자리만 계속 바뀐다.

작가의 이전글글자 낟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