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왜 끝까지 못 했는지를 묻는다.
그 물음 안에는 이미 전제가 들어 있다.
끝까지 가는 것이 정상이고,
중간에 멈춘 것은 실패라는 전제다.
그래서 많은 시작들이 결과보다 먼저 평가된다.
얼마나 오래 이어 갔는지가, 그 일의 의미를 대신하게 된다.
하지만 시작할 때를 떠올려 보면,
처음부터 끝을 목표로 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일이 필요했고, 그 순간이 맞았고, 시작이 가능했다.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때와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일이 생긴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때의 삶과 그 일이 만날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에,
시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시작 이후에도 그 조건이 계속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가깝다.
끝까지 가지 못한 게 아니라,
조건이 맞는 만큼 진행된 것이다.
매일 아침 달렸다.
6개월쯤 이어지다가 어느 날 멈췄다.
바빠서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조건이 달라진 것이다.
달릴 수 있었던 시간과 몸의 배치가 무너졌다.
그 배치를 다시 만들 여유가 지금은 없을 뿐이다.
그렇다고 실패한 건 아니다.
6개월 동안 달리기와 조건이 맞았던 것이고,
지금은 그 조건이 풀렸을 뿐이다.
사람은 변하고,
상황은 달라지고, 필요는 이동한다.
시작할 때의 밀도와 지금의 밀도가 다른 것은
자연스럽다.
그런데도
'밀도 있게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이 남는다.
밀도는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조건이 맞을 때 생기는 것에 가깝다.
모든 일에는 수명이 있다.
그 일이 삶과 맞는 기간, 조건이 유지되는 동안.
그 기간이 끝났을 때 끝내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그 조건 안에서의 역할이 끝났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시작했던 모든 것이 실패는 아니다.
그것은 그때의 삶과 그 일이 만난 흔적이다.
끝까지 가지 않았어도, 그 시간 동안 일은 진행되었다.
다음 시작이 다른 얼굴로 오는 건,
그 흔적이 쌓인 다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