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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Jul 06. 2024

#5. 엄마와 딸의 베네치아 탐방기

가장 좋은 숙소에서 가장 좋은 음식을 먹다

나는 하루종일 배낭에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찾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 놀랍게도 나는 MBTI에서 J에 속하지만, 같은 J를 맡고 있는 엄마도 정리에 있어서는 나처럼 답이 없다. 엄마에게 '비타민 C 좀 찾아줘'라고 말하니 엄마가 조용히 혼잣말로 '비타민 찾아 삼만리.,' 라고 중얼거리며 찾기 시작하는데 듣자마자 너무 웃겨서 빵 터졌다.


드디어 에어비앤비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베네치아로 향하는 날이다. 벌써 집을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에어비앤비 숙소 옆에는 맛있기로 유명한 빵집이 있다. 아침을 그 곳에서 간단히 빵을 사 와서 먹었다. 일반 크루아상과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을 사서 먹었는데 딱 내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나갈 준비를 마치고 얼른 버스를 탄 뒤 기차역으로 향해야 하는데, 에어비앤비 숙소 주인에게 말한 뒤 15분을 기다려도 열쇠를 받으러 안 온다. 역시나 느긋한 유럽 사람들이다. 결국 안 보이는 곳에 살포시 넣어두고 어디에 두었는지 사진까지 찍어서 메시지를 남놓고 떠났다.


왜 안오시나요, 호스트님..


그렇게 기차역에는 제시간에 잘 도착하였고 기차를 탑승하게 되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우리 표는 3번칸 36, 37었는데 우리 자리 자가 없는 것이었다. 누가 앉아라도 있으면 나와 달라고 말하겠지만 그냥 자리에 그 번호 자체가 없었다. 기차를 잘 못 탔나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기차 번호는 같았다.


엄마와 내가 모두 난감해하는데, 비슷한 상황이 다른 외국인 아줌마들에게도 있었나보다. 영어 잘하는 이탈리아 아저씨가 아줌마들한테 아무 곳에나 앉으라며 이런 일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그 아저씨에게 진짜 아무데나 앉으면 되냐고 한 번 더 물어보니 진짜로 그렇다고 하며 엄마와 나의 을 선반 위에 올리는것까지 도와주신다.


그렇게 결국 아무곳에나 아서 좌불안석으로 누가 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우리처럼 난리가 다. '내 자리 번호가 없다', '당신은 왜 내 자리에 앉아있냐' 등 시끌시끌하던 찰나에 승무원이 도착했다. 승무원이 말하길 출발 직전에 기차와 자리가 모두 바뀌었다고 말하며, 기차 전체를 돌아다니며 바뀐 자리를 체크해주었다. 우리는 아무때나 앉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진짜 우연히 새로 배정된 자리에 앉아있었다. 겨우 선반에 올린 짐 가방을 옮기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었다.


그 영어를 잘 하던 아저씨는 우리가 내릴 때 짐을 내려주셨고, 연세 드신 어르신들의 짐들 다 내려줬다. 너무 고맙다고 했다니 '도움을 주는 건 언제나 나에겐 행복이다'라고 말한다. 남들에게 배풂으로써 행복을 느끼는 사람을 보면서 또 그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가게 된다.




드디어 2박 3일 머물 예정인 베니치아에 도착했다. 나에겐 16년도 이후로 약 7년 만이다.  때는 혼자 유럽여행을 다니며 동행을 구해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그렇게 여행했던 곳을 엄마에게 소개시켜줄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


산타루치아 역에 내려 에어비앤비로 구한 숙소까지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마를 모시고 움직이려면  때문에 힘들테니 역 바로 앞으로 구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호스트에게 물어보니 일찍와도 체크인 해주겠다 해서 2시 즈음에 체크인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가서 집을 보는데, 정말 '궁전'이었다. 너무 넓었고, 밥도 해 먹을 수 있었으며, 바로 앞으로 곤돌라들이 지나가는 곳이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마트도 있고, 말 그대로 정말 천국이었다.


사진을 잘 안 찍지만 이 궁전은 여러 각도로 찍어야 마땅했다.

정말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베네치아는 시작부터 벌써 예감이 좋다.


짐을 내려놓고 쉬었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가면을 파는 곳이 보였는데 그 동안 보던 가면과는 다르게 예술 작품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밥부터 먹고 와서 다음에 보기로 했다.

예술 작품 같은 가면들

우리가 간 식당은 '트라리아 바 폰티니(Tratoria ba pontini)'라는 곳이었다. 엄마가 레스토랑에서  기다림의 순간순간들을 너무 싫어했던 경험 탓에 덜 기다려도 될 법한 트라또리아로 갔다. 피렌체에서 가이드가 말해준 바에 의하면, 트라토리아가 레스토랑보다 좀 더 캐쥬얼한 식당이라고 했다.


그 곳에서 이탈리아 칵테일인 스피리츠 아페럴(Spiritz Apera)과 맥주, 정어리튀김, 해산물 파스타, 새우토마토파스타를 시켰다. 그런데 정어리 튀김이 아니라 뭔가 정어리찜 같은 느낌의 음식이 나왔다. 그래서 저게 그 '튀김이라 불리는 음식인가 보다' 했는데 나중에 계산할 때보니 의사소통 오류로 다른 메뉴가 나온 것이었다. 근데 사실 잘못 시킨 메뉴 치고는 너무 맛있었다. 특별 소스에 발사믹 소스가 살짝 있고, 정어리찜과 절인 양파가 함께 있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나온 다른 메뉴들도 다 맛있다. 약간 짜긴 해도 참을 만한 정도였고,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이 곳은 나가면서 계산을 하는 분위기라서 급한 성격의 사람들에게도 잘 맞았다. (그렇다, 우리 엄마를 말하는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 저 알 수 없는 정어리찜이 너무 맛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집 근처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했다. 좀 전에 보았던 가면 가게는 문을 닫어서 다음을 기약했고, 대신 다른 기념품가게들을 방문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소품샵 같은 곳들이 베네치아에는 매우 많았다. 그렇게 구경을 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길거리에 작은 과일 가판대가 열려 있었다.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있는 과일을 구경하고 싶어서 둘러 보았지만 딱히 끌리는 것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 대신 근처에 있던 해산물 튀김 상점에서 해산물 튀김을 포장해서 일돌아왔다. 드디어 저녁으로 한국에서 싸온 라면과 함께 해산물 튀김을 먹을 차례.


과일 가판대, 그리고 며칠만에 한식인가.


집이 곤돌라 정류장 앞이라 밥을 먹으면서도 눈이 호강하고, 라면은 더욱 맛있고, 해산물 튀김은 더더욱 맛있다. 고의 숙소에서 최고의 음식이라. 그런데 하필이면 내 입에 구내염이 생겨서 헐어있는 상황이라, 라면을 빨리 먹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한 입 먹을 때마다 눈물이 흘러서 천천히 먹고 있는데 문제는, 엄마가  한 젓가락 먹을 동안 세 젓가락 씩 먹는다. 엄마의 속도를 보니 빼앗길 수 없다는 마음에 헐입 안이 아파도 눈물을 흘리면서 먹었다. 그런데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결국 빨리 먹기를 포기하고야 말았다. 맥주만 벌컥벌컥 마셨던 나, 그러나 얼마나 맛있었으면 엄마는 나의 원망스러워 하던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고, 라면이 한 젓가락 정도 남았을 때 나보고 남은 거 다 먹으라고 주셨다. 배려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사실 엄마가 1과 2/3 정도 먹어서 배부른 것이 분명했다. 그래.. 엄마만 맛있었다면 전 괜찮아요..


아무튼 오랜만에 라면을 먹으니 그간 느끼했던 속이 쑤욱 내려가는 느낌이다. 세탁기와 세제까지 잘 구비되어 있던 덕에, 그간 밀린 빨래까지 마친 후에야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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