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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May 09. 2024

#4. 엄마와 딸의 토스카나 탐방기

토스카나 소도시 투어를 가다

벌써 이탈리아로 날아온 지도 5일이 지났다. 오늘은 토스카나 소도시 투어 가는 날이다. 한국인 전용 투어는 가격도 비싸지만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곳들을 위주로 다니는지라 사진 찍는 것에 큰 관심이 없어서 엄마와 나는 저렴한 영어 투어로 결정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해 보니 총 64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의 담당 가이드 아저씨 이름 로베르토였다. 2층 버스로 이동을 했는데, 스페인어와 영어를 모두 쓰는 투어였나 보다. 아저씨가 왔다 갔다 설명을 한다. 내용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고, 기억이 나는 것은 '산 죠베쎄'라는 와인이 가장 유명한 토스카나 와인이라는 정보 하나뿐이다. 엄마는 한국에서 나름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여기서 하는 영어 투어들로 영어에 약간 신물(?)이 나신 듯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영어는 약간 알아듣기 어렵긴 했으니까.


처음에는 피사에 도착하여 피사의 사탑에 가서 사진을 찍는 시간이었다. 외국인 투어라 시간을 여유롭게 주는 편이다. 사진은 몇 장만 찍고 돌아다니다가 기념품 가게로 가서 구경을 했다. 피사는 생각보다 많이 기울어져 있었는데, 물론 현대 기술로 똑바로 세울 수 있는 있지만 관광객 유치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와 함께 K-하트 at Pisa


이후 차를 타고 이동하여 와이너리에 가서 와인을 마셨다. 수많은 테이블이 있었는데, 어떤 테이블은 멕시코 사람들이 모여 시끌시끌했고 또 어떤 테이블에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 시끌시끌했다. 우리 테이블에는 총 6명의 사람들이 앉았다. 뉴질랜드에서 온 커플, 캐나다에 온 엄마 나이대의 여자 두 명, 그리고 엄마와 나. 뉴질랜드 커플 중 여자는 극 E이고 남자는 극 I였다. 극한의 성격이 커플인 것이 재미있었다. 캐나다 이모들은 말도 많고 재미있었다. 마는 영어를 잘 하진 못하지만 웬만하면 다 알아듣는 편이었기에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캐나다 이모 중 한 명은 작년에 수술을 해서 술을 못 마신다고 했다. 술이 들어가서일까 대부분의 테이블들은 시끌시끌해지기 시작했고 남미 사람들이 모인 테이블들은 특히나 거의 춤추기 직전의 분위기까지 갔다. 우리는 나름 각자의 여행 이야기와 각 나라의 좋은 장소들을 소개해주며 친해져 갔다.


한국인은 다른 테이블에 우리 말고 젊은 커플 한 팀이 있었는데, 내성적인 것인지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것인지 자신들의 테이블 사람들과 한마디 말없이 각자 나가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았다. 나 혼자였다면 말을 걸어서 친해졌을 것 같은데 엄마랑 있었기에 그냥 각자 갱생(?)을 택했다.


토스카나의 풍경


와인의 취기와 함께 그다음에는 지오냐노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시에나에 도착했다. 소도시 투어를 하며, 여유로워서 좋았던 초반의 모습은 간데없고 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이드 맛있는 젤라집을 추천해 주었지만 줄이 길어 굳이 젤라또에 미련이 없던 엄마와 나는 쉽게 포기했다. 대신 젤라또를 파는 상점이 있던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를 시켰다.  처음에 직원이 자리를 소개해줘서 앉았는데 맥주만 마시겠다고 했더니 포크와 나이프가 있는 곳은 밥을 시켜야 되는 곳이라며 옆의 다른 장소로 안내해 주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또 유럽의 예의에  대해 하나 더 배다. 중앙 광장을 내려다보며 맥주와 감자칩을 시켜서 먹는데 사람들 구경하는 게 재밌다.


시에나의 중앙 광장

드디어 영원 같던 시간이 흘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하니 8시쯤이었다. 마와 나는 수면욕보다는 식욕이 강한 사람들이었기에, 남겨둔 맥주 안주를 저녁으로 꾸역꾸역 었다 그리고는 바로 아떨어졌다.




6일차 아침인 오늘은 토스카나 국 투어 버전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집합 장소에 도착해 보니 가이드 한 명과 여행 온 한국인들이 함께하는 투어였다. 가이드가 9인승 봉고차에 태워서 운전하며 직접 피렌체와 이탈리아, 그리고 토스카나 전반에 대해 설명해 주는 투어인가 보다. 함께 탄 한국인들은 여자 친구들 두 분, 부부 한 쌍, 나와 엄마 이렇게 총 6명이었는데, 가성비 나오려면 역시 한국인들 전용 투어 비쌀 수밖에 없다.


가장 처음으로 간 곳은 피사였다. 전날도 영어 투어에서 피사를 다녀왔지만 한국인 투어 중 피사가 끼여있지 않은 투어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잡았던 것이다. 우리 가이드님의 이름은 '정진복'이었는데, 피사로 가는 길에 이탈리아 전반에 대하여 설명을 너무 잘해주셨다. (물론 나의 붕어 기억력 때문에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그래서 피사를 한번 더 가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설명을 들으며 드디어 피사에 도착했다. 가이드님이 사람들이 많이 하는 포즈를 알려주며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다. 어제는 엄마와 나 둘이서 사투를 벌였는데, 역시 한국인 가이드가 있으니 사진이 예쁘고 수월하게 나온다.

예쁘다. 아무튼 그렇다.

그럼에도 피사는 전날 갔다 왔던 곳이었기에 흥미를 금방 잃었다. 산책로 수준으로 걷다가 일찍 밖으로 나가 맥도날드에 앉아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먹으면서도 느끼는 것이, 역시 유럽은 빵의 대륙이라는 것이다. 맥도날드에서 마저 크루아상이 맛있다니. 이후 일정은 차와 기차로 계속 이동을 해야 한다고 하기에, 맥도날드에서 화장실에 가려는데 화장실 앞에 앉아있던 직원이 특정 금액 이상을 산 영수증을 가져와야지 화장실을 쓸 수 있단다. 정말 야박하다 야박해. 항상 느끼지만 유럽은 인간들의 생리현상마저도 자본주의로 물들여 버리다니. 결국 커피 한 잔을 더 샀는데, 문제는 사고 영수증을 들고 갔더니 확인하던 직원이 안 보이고 그냥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똥개 훈련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화장실을 쓰긴 썼으니 그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다음 일정은 엄마와 나의 실제 목적지였던 친퀘테레로 가는 것이었다. 차를 세우고 기차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렇게 서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가이드님이 양옆을 쓰윽 보더니 앞으로 이동하자며 우리를 얼른 모아서 이끌었다. 뭔가 했더니 우리 뒤에 있던 여자들이 동유럽 전문 소매치기들 같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소매치기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한다. 동유럽 쪽에 분포된 큰 조직이 있는데, 작년엔 동유럽 쪽을 노렸었고 올 초엔 바르셀로나를 타깃으로 삼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보이스피싱 조직 같은 느낌인 듯했다.


그렇게 기차를 타고 첫 목적지인 마나롤라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라 밥을 먹기로 하고, 가이드님이 추천해 주는 식당으로 갔다.

Trofie al pesto (파스타의 한 종류)Grigliata mista di pesce (해산물 모듬구이)를 시켰다. 역시 한국인 가이드가 추천해 준 음식이라 그런지 이태리 와서 먹은 중에 우리 입맛에 제일 잘 맞았다.

사진을 대충 찍었지만 맛은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매번 잘 씹히지도 않는 질긴 빵을 주는데, 우리나라에서 주는 식전빵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말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빵이다. 그래서 가이드님에게 왜 그런 빵을 주는지 물어보니, 여유와 대화를 즐기는 유럽 문화 특성상 식전 빵의 맛이 아니라 그저 대화 중에 심심하지 않게 한 입씩 씹을 수 있게 주는 것이라고 했다. 국과 너무 다른 이런 문화들은 한국인 투어가 아니면 듣기 힘든 내용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인 투어가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파스타는 면이 특이했는데 토스타나 지역에서 주로 나는 면의 종류라고 했다. 엄마와 나는 그 식감이 좋았기에 면을 사서 한국에서 해 먹자고 다짐도 했다. 해산물도 정말 맛있었고 특히나 오징어가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마나롤라를 한 바퀴 돌았다. 티비에서 많이 보던 그곳이었다. 색이 다양한 마을이 너무 아름다웠고, 그 마을들 사이사이를 걸어 다니며 둘러보는 섬, 모든 골목골목도 너무 이뻤다.


친퀘테레의 거리

이후에 기차를 타고 베르나차로 이동했는데, 마나롤라보다 더 작은 항구도시였다. 이곳도 섬을 한 바퀴 다 돌아보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기에 바다 근처에 앉아 엄마와 여유를 즐겼다.


날씨 상으로는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는데 내가 역시나 이탈리아에서도 날씨 요정이었던 것인지 베르나차에서 잠깐 비가 온 것 말고는 날씨도 좋았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고, 함께한 분들과 인사를 나눴다. 소규모 투어라 6명만 투어를 해서 그런지 궁금한 점을 묻기도 쉬웠고 편안했다. 다음에도 한국인 투어를 할 때는 꼭 6명 이하의 소규모 투어를 찾아보아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저녁을 먹기 위해 가이드가 추천해 준 식당인 '라스파다(La spada)'라는 곳을 갔다. 거기서 한국인들에게 딱 맞는 투데이 코스요리가 있어서 고민할 필요 없이 그걸로 시켰다. 그런데 우리 뒤에 앉아있던 두 커플들은 정말 메뉴를 고르는데만 20분이 넘게 걸리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 가능한 걸까, 그들의 문화가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코스요리로 나온 음식들

역시나 레스토랑은 성질 급한 한국인들에겐 부적합한 곳이다. 가이드가 설명해 준 바에 의하면 음식점은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가장 격식 있는 곳이 Ristorante(리스토란테), 조금 더 캐주얼한 느낌의 장소가 Trattoria(토리아), 가벼운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곳이 Osteria(오스테리아)라고 부른다고 했다.


한국인들에게 리스토란테에서 식사하기란, 약간의 고문이다. 느려도 너무 느리니까. 그래도 나는 그냥 문화겠거니 하면서 앉아있는데, 엄마는 정말 질겁한다. 다음 요리를 얼른 달라고 말하는데도 여유를 가지라는 웨이터의 답변은 엄마를 거의 폭발 직전까지 가게 만들었다. 나는 좌불안석이 되었고, 디저트도 먹지 말고 얼른 나가자는 엄마를 어고 달래 디저트까지 결국 먹고 일어섰다. 물론 계산서를 받는 것과 계산을 하는 과정도 한세월 걸리긴 했다. 일어서서 나가는 길에 계산하자는 엄마를 말려야 했다. 이십 대 초반의 나였다면 엄마랑 먼 나라까지 와서 왜 그러냐며 다퉜을 수도 있지만, 어느 덧 서른이 되어버린 나는 성격이 많이 변했다.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이 들다 보니 그냥 괜히 내 잘못은 아니지만 죄송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좌불안석이고 약간의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뒤늦게 생각해 보니 엄마가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잠을 못 주무셨던 까닭도 있었던 듯 했다. 그래서 마가 싫은 소리 잘 안 하는데 오죽 힘들었을까 싶. 그렇게 겨우 음식점에서 일어서는데 또 하필 피렌체 버스 파업하는 날이었다. 결국 그 와중에 집까지 30분 걸어야 했다.


... 그래도 다음에는 부모님용 금지어를 나도 만들어 볼까 싶기도 하다. '너무 짜다' 금지, '너무 느리다'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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