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었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 보면 주말이 흘러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일말의 기대를 하던 순간이 있었다. 그저 멍하니 누워서 소리도, 그림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숨을 빠르게 쉬면 시간도 빠르게 흐를까 봐 숨을 아주 천천히 깊게 내쉬었다.
그럼에도 야속한 시간은 흘렀고 주말이 지난 월요일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다시금 일주일의 쳇바퀴를 굴려야 했다. 지구는, 주말이면 어찌 알았는지 평소보다 3배는 더 빠르게 자전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번주는 또 얼마나 지옥일까.
그렇게 몇 주, 몇 개월, 몇 년을 살다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살면 얼마나 오래 살았다고. 40년을 더 지구 자전 속도만 고민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낭비임이 분명했다.내 선택은 두 가지였다. 지금부터 내 모든 긍정을 끌어당겨 이 삶을 아름답고 좋은 일이라 생각하거나 지금 당장 이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
오랜 공부 끝에 얻은 직장이었기에 전자를 선택할까 고민했지만, 난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젊은 자유의 몸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결국 나는 후자의길을 택했다. 다들 마음에 품고만 다닌다던 그종이를.
그렇게 나는 이곳에 서 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미셸 들라크루아의 작품 사이에.나의 천장은 프랑스 파리가 되어 있었다.
파리의 12월은 눈이 포슬포슬 내렸다. 날은 분명 춥고 어두운데, 센 강 유람선에서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다. 눈이 오는 것에 굴하지 않고 그 옆으로는 강을 바라보며 삼삼오오 모여있다. 밤의 거리 한복판에서는 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눈 속에서 사진을 찍는 작가와 한여자가 보였다. 뒤로는 에펠탑이 반짝였고, 몽마르뜨 언덕에서 지나가던 프랑스 남자는 내게 소리쳤다. "Welcome to Paris!"
미셸들라크루아는 눈 오는 날의 파리를 그린다. 눈은 차갑지만 따스하다. 눈이 선보이는 하얀 포근함은 모든 빛이 온 힘을 다해 내게로 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포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세상이 모든 힘을 다하고 있다. 그의 작품도 그랬다. 파리의 쓸쓸함 속 따스함은 눈이 오는 파리의 기억 속 전경을 통해드러나고 있었다.
파리에서 앞뒤로 마주 보는 좌석 버스에 앉았다. 마주 보고 앉아있는 사람들이대화를 시작한다.대각선에 있던 한 남자가 거들기 시작한다.뒷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머니도 말을 얹는다.어느새 버스 안은 열띤 토론장이 된다.그렇다. 모두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미셸 들라크루아는 어린 시절 함께했던 강아지에 대한 추억이 가득했다. 그의 작품에 있는 강아지를 보면 그가 파리를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따스함이 깃들어있다. 누군가는 눈을 쓸고,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놀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여유를 즐긴다. 아아, 여유. 나의 꿈이자 그의 추억.
어두컴컴한 지하철 역 안을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지갑을 떨어뜨린다. 아주머니를 불러 지갑을 주워 줬더니 불어로 말을 건다. 알아들은 건 한 마디, 메르씨 부꾸. 고마움의 마음은 알겠지만I can't speak French. 그녀도 알아듣지 못한다.뒤를 돌아선다. 누군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그 소리에 맞추어 서로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며 춤을 추는 노년의 부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