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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Jul 31. 2024

수사부서 탈출은 지능 순이다

퇴직한 MZ 경찰관의 한 마디

얼마 전 1주일 사이에 극단적 선택을 포함하여 경찰관들 3명이 숨졌다는 비보를 접했다. 나는 겨우 2년 반 가량의 짧은 경찰 생활을 한 사람이기에 현직 경찰관들의 심정을 모두 대변할 수는 없지만, 현직에 남아있는 내 동료 경찰관들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실태에 대해 아직도 생생히 전해 듣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러한 결과는 예견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는 현장 근무 1년 반, 수사관 근무 1년을 한 뒤 경찰 생활을 청산하고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 현장 근무를 할 당시에는, 밤샘 근무가 자주 있다는 점과 현장에 출동하면 시민들의 카메라 세례의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점 등을 제외하고는 시간적으로 워라밸을 갖는데 부담이 되지는 않는 편이었다. 물론 기타 단점들이 많지만 그 부분을 나열하는 것은 열외로 하겠다. 그러나 수사관으로 근무하며 느꼈던 것은 업무량으로 인해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여하튼 나는 입직한 지 1년 6개월 만에 경제범죄수사관이 되었고, 수사보고서 한 번 쳐 본 적 없던 내가 처음 들어가자마자 배당받은 사건 개수는 내 전임자가 하던 사건 약 40개였다. 정확한 숫자는 기억 안 나지만 그 내외였던 것은 확실하다.  경찰이 되기 위해 했던 공부와 수사부서에 들어가하게 된 실무는 전혀 달랐다. 무지한 상황에서 내가 배당받은 사건 중 일부는 A4용지로 1,000pg가 넘는 사건이었고, 어떤 사건은 누구나 다 알법한 거대 로펌이 붙어있는 부담스러운 사건도 있었으며, 또 다른 사건 중에는 피의자들만 10명 가까이 되는 사건도 있었다. 균일 배당이라는 원칙 하에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수사관이 가져야 하는 부담감은 어마무시했다.


그렇게 2주가량 사건만 주야장천 읽고 있을 때, 신입 수사관들을 위한 교육이 있으니 참여하라고 공문이 내려왔다. 그렇게 내가 받은 교육은 겨우 1주일. 나의 사건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교육기간이었다. 역시나 그 기간 동안 겉핥기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내 자리로 복귀했고, 돌아온 뒤 내가 처음 들은 말은 한 사건 관련인의 '일주일이나 자리를 비우면 내 사건은 대체 언제 처리를 할 것이냐'는 폭언이었다.


다들 수사부서에 오래 있고 싶어 하지 않아 인사이동이 매우 잦았고, 그렇기에 내 사수조차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들도 사건을 40개는 넘게 갖고 있었기에 물어보기도 미안할 정도로 바빴다. 3개가 궁금해도 1개만 물어보았고, 나머지는 눈치로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렇게 사건을 접수한 민원인들에게 사건 처리가 늦다며 욕을 먹고, 수사관이 왜 바뀌었냐며 욕을 먹고, 내 사건은 언제 처리해 주냐며 욕을 먹고, 순경이 내 사건을 처리한다고 욕을 먹으며 6개월간 죽어라 사건만 뺐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맞았기에 욕을 먹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사건 관계자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맡으면 불안할 것 같으니까.




사건을 하나 빼는 데 작은 사건은 최소 1개월, 큰 사건은 1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 와중에 매주 내가 받는 사건 개수는 2건~7건이었다. 사건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 하는 일의 기본 레퍼토리는 다음과 같다.


1. 고소인들의 사건 접수 시, 기록 검토
2. 고소인과 통화 + 일정 약속 잡기 + 고소인 조사하기 + 추가 자료 요청하기
3. 기타 추가적인 수사 자료 보충
- CCTV 열람
- 금융 계좌 확인
- 증인 조사 및 증거 조사 등
4. 피의자와 통화 + 일정 약속 잡기 + 피의자 조사하기 + 추가 자료 요청하기
5. 3번 상황의 반복
6. 기타 등등


가장 기본적인 사건 처리 순서가 이런 것일 뿐, 압수수색을 하는 경우라던가 구속영장 청구 등 이 외에도 중간에 들어갈 수많은 일들이 있다. 그 와중에 나에게 배당된 수배자가 잡혔다고 연락이 오면 새벽 2시든 3시든 잡힌 곳으로 가서 예전에 기소 중지해 두었던 사건을 찾아 처리해야 한다. 그런 수배자 배당 건수도 수십 건에 달한다.


그 와중에 일명 '진상 고객'이 걸려 버리면 답이 없다. 하루 종일 그 '진상 고객'의 전화를 받아야 하고, 만약 전화를 받지 않으면 민원실, 청문감사실, 경찰청 등 넣을 수 있는 모든 곳에 민원을 넣는다. 직무 유기라며 고소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만약 '진상 고객'의 전화를 받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욕을 끊임없이 하기도 하며 내가 받지 않으면 민원실이 똑같은 전화를 받게 되기에 그걸 받아주고 있어야 할 때도 꽤 자주 있다. 그러면 그 시간 동안에 눈앞에 쌓여있는 업무를 처리할 시간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나는 그렇게 1년을 버티며 40건의 사건을 15건으로 줄였고, 이렇게 평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내가 퇴사한다는 말에 내 주변 수사관들은 '수사부서 탈출은 지능 순이라던데, 아예 조직까지 탈출해 버리는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나라에서 올 1~6월 사이에 접수된 고소, 고발 건수는 18만 941건이었다고 한다. 2년 전에 비해 17%가량의 고소, 고발 건수가 늘었다지만 수사 인력은 당최 늘어나질 않는다. 그 와중에 같은 고소를 수십 번 하는 사람이라던가, 형사 사건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임에도 민사로 처리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돈이 든다는 이유로 경찰관들을 이용해 상대방을 협박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사건들도 많다. 내가 근무할 때는 그런 사건들의 경우 '반려'를 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제도마저 없애버려서 모든 사건들을 다 접수해서 처리해야 한다. 어차피 '각하'를 할 내용이지만 그 과정에서도 수많은 서류 작성 및 윗사람들의 결재가 필요하기에 '반려'보다 훨씬 더 번거로운 일이다.


내가 근무할 때는 그나마 경제범죄전문 부서라 관련 사건만 접수를 받아 평균이 3~40건이었지, 지금은 경제팀이 통합수사팀으로 바뀌어서 경제 사건뿐만 아니라 원래 사이버 사건에 속한 사건들도 통합해서 처리를 해야 한다. 내가 근무할 당시 통합수사팀으로 바뀌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위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수사관들이 통합수사를 하는 순간 업무는 많아지고 전문성은 떨어질 것을 예상하여 반대했지만, 결국 통합을 시켜 버렸다. 탁상행정이 이런 것일까. 그 결과로 지금은 사이버 사건과 통합이 되어서 1인당 사건 개수가 70건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들 한다. 난 그나마 좋은 시절 근무했던 수사관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내 동기에게 밤 10시에 전화가 왔다. 바쁘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지난 1주일 내내 주말 없이 새벽 2시까지 근무하였고 그중 24시간 당직 후에도 집에 들어갈 시간이 없어 오후까지 근무한 뒤에 퇴근을 해서 내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 동기는 화장실을 갈 시간조차 없어서 방광염에 걸렸지만 그 와중에도 아픈 것을 참고 피의자들을 조사해야만 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 말을 듣고 '누칼협(누가 수사관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 수사관을 계속하고 싶다는 사람이 얼마나 없는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들이 안 해도 된다고 해서 모두가 다 나오게 된다면 수사 업무는 절대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재직하던 시절 퇴직을 앞둔 선배 수사관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30년 전에 경찰이 되었을 때, '그래도 이 조직이 시간 지나면 바뀌겠지.'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 바뀐 건 경찰서에 정수기 몇 대 더 들어온 게 전부야. 아무것도 바뀐 게 없어. 너도 이 조직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나가는 게 좋을 수도 있어. 잘 생각해 봐."


그 말을 듣고 진심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가 해본 수많은 일 중에서 수사를 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나와 정말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일 외에도 나는 취미 생활을 할 시간도 필요하고 가족들과도 함께 보내는 시간도 소중했다. 내가 일이 재밌다고 해서 정말로 평생 이렇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았을 때 정답은 'NO'였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잘 맞다고 생각한 일이었음에도 퇴직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누군가는 가장 아름다운 나이에 과로로 숨지고,
누군가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안면 마비가 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경찰관들을 수사부서로 데려갈 것이라면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서 준비를 시킨 채 내보냈으면 좋겠고, 처음 수사를 해보는 수사관들에게 처음부터 과도한 사건들을 맡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불필요한 사건은 수사관이 직접 사건을 접수해서 처리하기 전에 미리 끊어내서 1인당 맡아야 할 담당 사건 수라도 줄여주었으면 좋겠고, 고소 고발 건수가 그렇게나 많다면 그걸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서 새로운 법안으로라도 상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저 '수사부서 힘들다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수사를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빨리 데려와서 얼른 수사관 자리나 채우자.'가 되어있어 사상누각으로 보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당장은 어려운 것처럼 보여도, 제대로 된 교육과 제도를 통해 전문성을 갖춘 젊은 수사관들을 길러낼 필요성이 있다. 지금 하는 그 짧은 겉핥기식 교육을 교육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란다. 제대로 된 뒷받침이 있어야만이 대한민국의 수사 부서는 전문성과 질이 높아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더 질 좋은 서비스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니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짧은 기간 근무를 했기에 내가 모든 경찰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는  조직이 정말 좋은 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 결국은 그것이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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