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빠와 딸의 좌충우돌 미국 여행

마지막은 언제나 아쉽다,

by 신잔잔

나는 가리는 음식이 없어서 한식을 먹지 않아도 꽤나 잘 버티는 사람이지만, 아빠는 평범한 60대 아저씨답게 한식이 중간중간 필요한 사람이다. 내일모레면 돌아갈 텐데도 아빠는 아침으로 든든한 한식을 먹고 싶어 했다. 그렇게 아침형 인간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명은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다시 K-TOWN으로 나왔다. 혹시나 해서 저번에 실패했던 북창동 순두부에 가보니 또 문 닫혀 있다. 이렇게 인연이 닿지 않는 우리다. 결국 지난번에 갔던 곳으로 가서 뼈해장국 두 개를 시켰다.


오늘은 MOMA에 가는 날이다. 현대미술 박물관인 동시에, 고흐의 별 헤는 밤이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고흐의 별헤는 밤 | 의상이 그냥 아름다워서 찍어봄


예술을 모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고흐의 별 헤는 밤 앞에만 사람들이 막 모여있었다. 현대 미술관답게 패션 전시관도 따로 있다. 우리가 예술에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일반 사람들보단 조금 더 관심이 있는 거지 객관적으로 또 막 공부하고 이런 열정까지는 아니었던 지라 며칠간 계속 이어진 예술 감상 탓에 금방 눈이 피로해졌다. 결국 우리는 MOMA 5층에 있는 카페에 갔다. 디저트는 비싼데 커피를 비롯한 음료는 가격이 나쁘지 않았다. 처음으로 아빠와 카페에서 쉬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오래 못 가는 우리 아빠. 조금 앉아있더니 나가서 돌아다니자고 한다.


어제 함께 나가지 않은 미안함이 조금 남아있던 나는 그 말을 들어주었다. MOMA를 나와서 카네기홀로 향했다. 카네기홀 건물 자체에 볼 건 없었지만, 그래도 예술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나에겐 꿈과 같은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꿈의 건물을 한 바퀴 돈 후, 걸어서 센트럴 파크로 갔다. 공원에서 한적하게 아빠랑 산책을 하기로 한다. 아빠에게 한적함은 내겐 여전히 약간의 조급함이 깃들여진 한적함이지만, 여행 일주일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조금씩 서로에게 기준을 맞추어 가는 중이다.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센트럴 파크의 초록빛


자연을 걷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초록색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무, 산, 잔디, 분홍빛이 가고 초록이 오는 절반 정도 섞인 벚꽃나무 등등. 이 모든 초록빛은 나의 눈을 정화시켜주는 동시에, 도시의 바쁜 일상을 벗어나 마음을 한적하게 만들어주는 기분을 준다.


걷다 보니 길거리에서 연주하시는 분들을 보게 되었다. 마치 재즈바에 가지 못한 우리를 위로하는 듯, 운명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재즈를 연주하고 있어서 가까운 벤치에 가서 앉았다. 여행을 와서 그런 건 지 모르겠지만, 외국에 오면 버스킹 하는 사람들이 더 즐거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버스킹을 자주 봤었는데 그 순간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경쟁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많이 보였었다. 여기서는 그냥, 찰나를 행복하게 사는 순간, 그 자체를 선물 받는 느낌이다. 세계의 가장 바쁜 도시인 뉴욕에서는 그런 기분을 못 느낄 줄 알았는데 센트럴파크에서는 또 그 여유가 느껴진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친구가 추천해 준 Carmine's Italian restaurant에 갔다. 음식에 큰 일가견이 없는 나에게도, 뉴욕에 와서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해물 파스타를 시켰는데 정말 랍스터가 통째로 들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그 주변에 느껴지는 바다의 향기가 황홀하다. 패밀리 사이즈라 3명 정도 먹을 크기였지만 언제 또 오겠나 싶어서 남으면 남기자는 마음으로 시켜 먹었다. 그리고 역시나 후회가 없었다.


추후에 계산하려고 오니 영수증을 가져다준다. 또 한국인의 입장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영수증에 적힌 팁은 기본 20%, 22%, 25% 이렇게 나뉘어 있었다. 볼펜도 함께 가져다주는데, 이걸 체크해서 주면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였던 흑인 아줌마 직원이 너무 친절했어서 마음은 가장 높은 걸로 체크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돈이 먼저라는 한국인의 마인드에 못 이겨 중간 정도에 체크해서 지불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냥 음식 가격에 포함되었다 생각하고 줬으면 되었을 텐데 왜 그렇게 순간의 감사함보다 눈앞에 돈이 더 커 보였던지.



돌아와서 잠시 쉬었다가 근처의 맥주바로 갔다. 아일랜드 펍이었는데 외국에서는 대부분 안주 없이 맥주만 시켜도 아무런 눈치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아빠와 마지막 날을 함께 즐기며 이야기를 나눈다.


"벌써 내일 돌아가는 날이야 아빠. 자유여행이 패키지보다 훨씬 낫지?"

"당연히 훨씬 낫지~ 그래도 아빠가 영어가 안 되니까. 그래도 이번 휴가는 똑똑한 딸내미 덕분에 재밌게 잘 보냈네. 딸 잘 키워놓으니 좋구먼."

"말 좀 못하면 어때. 다들 바디랭귀지로도 잘하는데. 나중에 엄마랑도 둘이 가 보구 해."

"그러게. 그래봐야겠다."


말만 하면 투닥거리던 우리가 일주일 만에 대화가 이어질 정도로 발전했다. 여행의 가장 큰 성과다.




원치 않았던 마지막 날 아침이 기어코 밝고야 말았다. 여전히 아침형인 우리는 오후 2시 비행기임에도 불구하고 6시에 기상했다. 피로는 쌓여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 오전을 그냥 날리기엔 아쉬웠다. 근처에 있던 샌드위치 집으로 가서 간단히 식사한 후 걸어서 UN본사 건물까지 갔다.


UN본사 건물이라는데..


호텔에서 한 20분 정도 걸어가니 나왔는데 내가 생각했던 뭔가 멋들어진 건물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데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건물이었을 뿐이다. 멀리 갈 수는 없었기에 아빠와 이렇게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뉴욕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길의 14시간 비행은 출발하던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 기분이 든다. 아마 여행의 설렘이 사라지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아쉬움이 가득해서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가 조금 더 잘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계획을 미리 짜서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혹은 엊그제 아빠와 싸우지 않고 아빠를 따라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아빠가 내 옆에 없게 되는 날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수많은 생각을 하고 또 했다. 다만 세상의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후회가 남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안다. 흘러간 일이기에, 그것을 어떻게 겪고 버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이번 여행은 아빠와 함께 한 추억이 남았기에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딱 한 번, 아빠를 보며 마음이 슬픈 적이 있었다. 어릴 때 그렇게 팔뚝이 단단하고 힘이 세서 나를 한 팔로 들어 올려주던 아빠가, 어느 날 우연히 보았던 뒷모습에서 이전보다 얇아진 팔과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표정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였나, 아빠가 내 곁을 떠나기 전에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느 누구나 그렇듯 그 생각도 오래가지 못하고 잊은 채로 눈앞에 놓인 내 삶의 즐거움에 더 취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본 글 하나가 다시금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그렇게 아빠와 함께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도 운명임이 분명하다. 아빠와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었고, 아빠도 분명 행복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 이 순간보다 하루라도 더 나이 들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당장의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변명들은 다 내려두고,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보기를 바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평생 동안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한 부분이 될 것임은 분명할 테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