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결혼하고 돈이 없어 반지하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절 아빠가 이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으로 출장을 왔었는데, 함께 간 직원들이 다들 헬기를 타보자고 했단다. 너무도 타보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탈 수가 없던 아빠는, 동료들에게 높은 곳을 무서워해서 못 타겠다고 말하며 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가 아직까지도 아빠 인생의 큰 한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헬기 투어를 한다고 했을 때, 하늘 위에서 그 비싼 돈을 내고 굳이 뭐하러 보냐고 말했지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짠한 마음에 바로 알겠다고 했다.
남산타워와 비슷한 '스카이론'에서 찍은 나이아가라 전경
타기 전에는 꺼려졌던 헬기 투어는, 막상 타서 구경해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이 아빠에 대한 짠한 마음 탓인지 아니면 정말 멀리서 내다보는 광경의 아름다움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가장 기대했던 제트보트를 탈 때보다도 더 행복했다. 헬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이아가라에서 연결되는 전체 강이 다 내려다보였다. 그러다 문득 아빠를 돌아보니 아련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때, 아빠의 한이 좀 풀렸어?"
"생각보다 별 거 없네."
행복하다는 무언의 답이었다.
미국은 전통을 참 좋아하는 듯 하다(?)
드디어 패키지라는, 자유로운 나와는 잘 맞지 않던 일정이 끝나고, 8시간의 버스를 탄 후 뉴욕 맨해튼 숙소 도착했다. 이번에는 Jolly Madison이라는 호텔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브라운관 티비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전에 묵었던 Wolcott 호텔보다 더 비싸지만 시설은 좋지 않았다. 그나마 그때보다 조용해서 아빠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행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진 부녀지간이다.
역시나 아침형인 우리 부녀는 6시를 넘기지 않은 시간에 눈을 떴다. 그렇게 뉴요커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그랜드 센트럴 역으로 가 보았다. 영화에서만 보던 바로 그 역이었다. 역사가 깊어서 인지 그 웅장하고 깊어 보이는 기운이 근처에만 가도 느껴졌다. 역시나 이곳의 아침은 내가 생각했던 뉴요커의 모습 그대로였다. 모두가 커피 한 잔을 들고 우리나라 서울 직장인들의 출근 발걸음보다 약 3배 정도 빠른 걸음으로 각자 출근을 하고 있었다. IT 기업이 많은 대한민국은 날이 갈수록 직장인들의 복장이 간편해지고 다들 여유로움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곳은 여전히 딱딱하고, 갖추어져 있었고, 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근처에서 서브웨이에 가게 되었다. 놀랍게도 아빠와 나 모두 한국에서도 한 번도 서브웨이를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주문을 하는데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은 잘 알지만, 당시에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부족한 영어로 더듬더듬 주문했고, 야채는 뭘 넣어줄까라는 질문에, 야채 하나당 가격이 정해져 있는 줄 알고 아빠와 나는 각자 원하는 야채 두세 개만 말하는 오류를 범하고야 말았다. 얼마나 맛이 없었겠는가. 그 미국인 알바생도 약간 '얘네 왜 저러나'싶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야 서브웨이의 야채는 돈을 따로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최소한의 야채만 넣은 샌드위치 2개에 커피를 시켰더니 2만 원이 넘게 나왔다. 우리 둘은, 야채 몇 개 더 넣었으면 얼마나 더 비쌌을까를 논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근처를 거닐다가 지하철을 타고 구겐하임 미술관에 갔다. 늦게 가려고 한참을 어기적거리다가 간 것인데도 오픈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일찍 도착했다. 역시나 아빠의 분 단위별 계획 일정도 막상 닥치면 다를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바로 앞에 마침, 뉴욕의 심장이라 불리는 '센트럴 파크'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의 호수 한 바퀴를 거닐기로 했다. 센트럴 파크를 돌다 보니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외국을 가면 종종 느끼는 것이, 본인의 집 근처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조깅을 함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햇빛이 있어도 연연하지 않고선 말이다.
"아빠, 내가 갖는 이상한 동경 일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외적인 모습에 관심이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덩치가 크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비키니를 입거나 딱 붙는 조깅용 바지를 입지 못하잖아."
"근데 그런 옷 입은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나도 부담스러워. 요즘 젊은 애들이 딱 붙는 바지 입고 있으면 눈을 어디다가 둬야 될지도 모르겠고."
"역시 아빠도 올드 세대 맞는구나. 나는 개인주의적인 젊은 세대라 그런가 그냥 관심 자체가 불편해. 내가 뭘 입고, 화장을 하든 말든, 그냥 남에게 관심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젊은 세대들은 많이들 그런 거 같더라. 그러니까 이제 그 갭을 서로 줄여가는 게 맞는 방향이지 뭐. 나 같은 나이 든 사람들도 노력해야 될 거고"
점점 양분화가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항상 수반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호수 한 바퀴를 돌다 보니 어느덧 구겐하임 미술관의 오픈 시간이 되어 있었다.
시간 맞춰 구겐하임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하필 며칠 뒤부터 바뀐 작품들로 정식 개장한다고 쓰여있었고, 지금은 그때를 위한 작품들을 옮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단은 열어놓은 곳들만 보기 위해 들어왔다. 아빠와 나는 예술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어릴 때부터 잘 맞았다. 내가 처음 공연을 보고 꿈을 가졌던 것도 아빠가 보여준 덕분이었다. 전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재즈도, 미술 작품에 대한 감상도. 그 모든 것들에서 아빠와 나의 취향이 일치했다. 그래서 이렇게 아빠와 함께 미술관에 오는 것이 참 설렜다. 그러나 대부분 닫아놓은 탓에 많이 구경할 것이 없었고, 결국 다음 투어 예정지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메트로폴리탄은 세계 3대 박물관답게 매우 컸다. 더군다나 기부제로 운영되어서 돈을 내고 싶은 만큼 내고 들어가면 된다. 두어 시간쯤 돌아보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팠다. 잠시 점심 먹으며 쉬어가기 위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박물관 안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무게를 재서 가격을 측정하는 듯했는데 역시 박물관 내부라 그런가, 빈 부분이 많이 보이도록 한 접시를 담았는데도 15불이 넘게 나왔다. 잠시 그렇게 밥을 먹으면서 쉰 후, 다시 박물관을 돌기 시작했다. 역시나 유명세만큼 구경할 것이 끝도 없이 나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들 : 무기와 갑옷 | Springtime
Springtime이라는 작품을 보자마자 반해 버렸다. 예술을 잘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그저 내가 보고 배우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예술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서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에로틱한 사랑이, 아직은 로맨스에 대한 희망을 가진 나의 마음에 들어와 꽂혀 버렸다. 결국 메트로폴리탄의 상점에서 포스터를 하나 사 왔다.
그렇게 박물관까지 돌고 호텔에 들어오니 총 걸은 거리가 20킬로미터가 넘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한 숨 자고 있는데 아빠가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깼다.
"일어났네? 나가자."
말도 안 돼. 나는 아직 피로가 쌓여있어서 더 쉬고 싶은데 아빠는 자꾸 나가자고 한다.
"아니, 아빠.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 일어난 것도 아빠가 계속 옆에서 부스럭거리니까 일어난 거야. 좀만 더 쉬고 나가자고. 이게 패키지여행이랑 뭐가 달라?"
"집 가서 쉬면 되잖아. 왜 여행 와서 쉬어?!"
"아 그럼 아빠 혼자 갔다 와"
결국 우린 여행 6일 만에 처음으로 싸우게 되었다. 삐진 아빠는 진짜로 혼자 나갔다 왔다. 걱정이 살짝 되긴 했지만 여행 스타일이 안 맞는 탓이다. 지금까지 아빠가 짠 계획대로 따라갔으면 한 번쯤은 내 말도 좀 들어줘야지. 후. 정말 아빠는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렇게 싸웠지만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영어도 못할 텐데. 여긴 총기도 소지 가능하다는 미국인데. 걱정하던 찰나에 아빠는 한 시간도 안되어서 돌아왔다. 아빠도 말은 안 했지만 무서웠던 게 분명하다. 다만 나한테 한 마디 하고 간 자존심이 있어서 더 빨리 돌아오진 못했을 것이다. 한국이었으면 삐돌이 아빠는 나한테 한동안 말도 안 걸었을 텐데 외국에서는 선택권이 없다. 앞으로 30분을 쭉 걸어가 보니 어떤 건물들이 있더라고 말한다. 아무도 말 못 걸도록 보통 사람들의 걸음속도 2배 정도로 걸어갔다 왔음도 분명해 보였다. 다 알면서도 나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좋았겠다"라고 대답해준다.
그렇게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한 나와, 돌아다니면서 충전을 하고 온 아빠는, 다시금 동행을 시작한다. 아빠와 함께 타임스퀘어 근처의 울프강 스테이크 하우스에 갔다. 뉴욕에 놀러 갔다 온 친구들의 추천이다. 한 조각 입에 넣는 순간 스테이크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다. 와인 두 잔과 함께 먹었는데 양이 어찌나 많은지 남길 수밖에 없었다. 양을 줄이고 가격을 좀 낮춰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터질 것 같은 배를 붙잡고 뮤지컬 라이온 킹을 보기 위해 타임스퀘어 광장으로 향했다.티켓을 보니 앞에서 두 번째 줄이다. 티켓 예매까지 아빠가 했던 탓에 10만 원짜리를 중간에서 보려던 걸 20만 원짜리로 앞에서 보게 되었다. 더군다나 여기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공연장 내 관람석 가격이 좁고 무대와 가깝다. 앞쪽에 앉으니 무대의 높이 때문에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다음에 또 뮤지컬을 보게 된다면 아이들이 많이 없는 오페라의 유령 같은 작품으로 꼭 중간에서 보리라. 우리나라는 배려가 먼저라서 공연장에서 조용히 하는 문화지만, 미국 사람들은 리액션이 좋아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심바는 왜 저래? 삼촌이 심바를 죽였어?' 등등 큰소리로 질문하고 부모들은 답을 해준다. 우리나라였으면 눈치 보였을 법한데 거기는 그냥 리액션의 일종인 것 같았다.
그래도 공연은 정말 최고였다. 실제로 흑인들이 나와서 그들이 가진 특유의 소울로 노래를 하니까 흥이 나고 집중도 잘 되었다. 어린 사자 역할에 아이들이 나와서 공연하는데도 다들 연기와 노래 모두 정말 잘한다. 역시 인구가 많아서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더 많은 건지.
웃긴 건 아빠를 돌아보니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까 아까 나 쉴 때 푹 쉬고 오지는!!! 코를 골고 자고 있어서 옆에서 아빠를 계속 깨워야만 했다. 공연을 그렇게 좋아하는 나는, 옆에서는 아이들이 떠들고 있지, 무대는 가려져서 절반밖에 안 보이지, 아빠는 옆에서 코 골며 졸고 있지, 언어는 영어라 일부밖에 못 알아듣겠지.. 정말 정신도 없고 집중도 하나도 안 되는 시간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