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을 자는 내가, 새벽 3시부터 일어난 이후로 나는 다시 잠을 청하지 못했다.이유인 즉슨 다섯가지였다.
1. 어떤 외국인 남자의 코고는 소리
2. 배가 아파서
3. 화장실이 가고 싶지만 내가 움직이면 누가 깰까봐
4. 모기가 날 물어서
5. 히치하이킹이 걱정되어서
모든 악재가 나를 덮쳤지만, 배려를 우선하는 한국인이었던 나는 그 상태로 5시 반까지 버티고 일어났다. 짐을 다 싸고 거기서 주는 씨리얼을 아침으로 먹고 숙소를 나섰다. 7시가 버스 탑승 시간이었다.
7시. 딱 버스정류장의 버스 앞에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나니 신기하게도 버스가 딱 찼다. 물론 버스 자체는 매우 작고 좁아서 짐을 둘 곳이 없어 모든 사람들의 짐이 섞여 입구가 막혀버렸다. 정말 좁아 죽는 줄 알았다.
국경마을로 가는 버스 일정, 그리고 우리의 위치
국경마을로 가는 버스는 260번을 타면 되는데, 국경마을인 캬흐타 마을로 이동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데, 정말 어느 순간부터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긴장해서 내가 물을 많이 마셨던가? 그런데 대화도 안 통하고, 내 앞에서부터 입구까지 막힌 십수개의 캐리어들을 뚫을 자신이 없었다. 정말 나는 버려질 까봐 화장실도 못가는 신세가 되었다. 점점 급해져 오고, 그 상태로 1시간이 넘어가다 보니 얼굴이 노래지는 지경에 왔다. 그리고 그 순간을 넘기니 오히려 그냥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 곳이 천국인지, 이 곳이 버스인지,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버스 안에는 러시아인 3명과 몽골인 10명, 그리고 우리 4명이 있었다. 대화는 안됬지만 단답으로 대충 얘기하다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려는데 G가 "스바시바"라고 말하려다 실수로 "씨에씨에"라고 말했다. 그 순간, 갑자기 버스 전체가 술렁거렸다.
"엥.... ? 뭐지 이 분위기...?"
우리끼리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던 찰나, 갑자기 누가 중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묻는다. 대략난감. A가 '쪼끔'이라는 제스처를 취했더니 갑자기 중국어로 말을 거는 몽골인들이다. 내가 얘를 알지만, 우린 고등학교 시절 함께 중국어를 접었었다. 고로 우린 인사와 감사합니다 밖에 모르는 중국어 바보들이다.
"워 셔 한궈른(저는 한국인입니다)"
이 한 마디를 남긴 채 그녀는 잠에 들었다. 아마 우린 지금까지 그들에게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으로 기억되고 있으리라.
캬흐타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버스에 탄 전원이 여권 검사를 받았다. 거기서 몽골인 남자 군인이 검사했는데, 배우 지창욱을 닮았었다. 우리끼리 잘생겼지 않냐며 매우 술렁거렸다. 그 분과 눈을 꽤나 오래 마주쳤지만 그래도 무서워서 나의 전매특허인 '민망할 때 웃기' 스킬을 사용하진 않았다. 웃으면 내리라고 할까봐...
참고로 이때부터는 사진이 아예 없다. 들은 것에 의하면 몽골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 지역에서 사진을 찍으면 의심스럽게 보기도 하고 자칫하면 바로 쫓겨날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살아서 나가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한국에는 우리의 가족들이 있었다. 우리의 비행기는 이곳이 아닌, 울란바토르에서, 제 시간에! 탑승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몰래조차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
그 마을을 도착한 이후, 조금 더가서 국경 지역 앞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나는 드디어 화장실에 갈 수 있음에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러나 난감하게도 화장실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정말 그 '틀'만 갖추고 있었기에, 아무도 안 보는 그냥 풀숲으로 가서 볼일을 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부터 벌써 몽골 여정의 시작인걸까.
그렇게 볼일을 보고 일어나 나오자마자 마음을 먹을 새도 없이 누군가가 러시아어인지, 몽골어인지를 하면서 차를 탄 사람들에게 쏼라쏼라 뭐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우리를 둘로 나눠서 갑자기 끌고간다. 가방을 잡혀 인형이 된 냥 질질 끌려갔는데 순간 이정도면 뭔가 잘못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약간 무섭기까지 했다. 우리를 끌고 간 분들은 알고보니 버스에 함께 탔던 사람들이었고, 그 감사한 분들의 통역 덕분에 둘씩 나뉘어서 차에 앉혀지게 된 것이었다. 그 가격으로 1인당 50루블씩 차 주인에게 지불하기로 했다. 이 정도면, 히치하이킹을 한 게 아니라, 히치하이킹을 당한 것이었다.
어차피 국경을 건너 갈 거니까 차에 탄 사람들은 돈을 조금 받고 도와주는 거고 우리는 돈을 조금 내고 건널 수 있게 되는 거고. 그렇게 윈윈이라 그런가 현지인들도 다들 히치하이킹을 해서 가는데, 신기했다. 내가 겁을 먹었던 게 살짝 무색해질 정도였달까.
처음에 출국 장소에 들어갈 때 여권검사를 한 번 하고 차로 조금 더 가서는 차에 있는 짐들을 전부 다 빼라고 했고 우리도 차에서 내렸다. 긴 거울까지 이용해서 꼼꼼하게 차를 구석구석 다 살펴본다. 아마 러시아가 마약으로 유명해서 확실하게 감시하는 것인 듯 했다. 나랑 함께 탄 A의 가방은 왠 멋진 여군언니가 나와 X-ray를 이용한 검사만 했는데 L과 G가 탑승한 차는 아예 짐을 다 열어보라고 했다. 아마 랜덤으로 열어보는 듯 했다.
히치하이킹으로 나와 같은 차에 탄 다른 몽골 분이 있었는데, 아까 중국어 할 줄 안다는 애 어디갔냐고 물어본다. 같은 차에 안 타서 다행이다. 미스테리함을 내려놓을 뻔 했으니.
가방과 차량 검사 후 다시 러시아 출국장으로 들어가야 했따. 출국 스탬프를 찍을 때 비행기에서 썼던 입국 허가서를 내야 했는데, 그 이후에 여권검사를 또 한번 더 한다. 그리고 차가 물이 찰랑거리는 곳에 한 번 들어갔다 나와야 했다. 뭔가 매우 까다로웠다. 이렇게 까지 하는데도 마약이 엄청 많은 거면, 도대체 마약범들은 머리가 얼마나 좋은 걸까, 생각이 드는 순간, 작은 가방은 열어보지도 않는 그들을 보며, 까다로운 척 하는 허접함이 떠올랐다. 마약이 이런데 있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겨우 출국 절차를 마치고 연결되어 있던 몽골 입국장에 가서 입국 허가 신청서를 썼다. 우리가 타고 간 차 번호가 꼭 필요했다. 외우지 못해서 밖으로 나가서 다시 확인하고 들어와야 했다. 몽골 측 입국 심사원들은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있었다. 근데 갑자기 나를 보면서 계속 웃는 것이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 왜 사람 얼굴을 보고 웃나 싶었지만, 혹시나 입국 시켜주지 않을까봐 그저 순진한 척 하는 표정으로 해맑게 웃으며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몽골 공항에서 출국할 때 알게 되었다. 아니 거기서도 나라는 사람을 보고 빵 터지는 것이었다. 그 때는 당당하니깐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몽골인들이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내 귀를 보고 다들 웃는 것이었다. 참 나, 우리나라에는 나같은 귀를 가진 사람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입국장에서는 매우 순진한 척하며 이유도 묻지 못한 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입국절차까지 마치고 어떻게 할 지 아직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탄 차를 몰던 아저씨가 물어본다. 어디까지 가냐고. '울란바토르'라고 했더니, 자기들도 거기 간다며 거기까지 태워다 주겠단다. 그래서 2명 더 있는 친구들까지 불러모아 4명에서 타게 되었다. 1인당 3만원 정도 내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친 뒤, 아직 몽골 돈이 아직 없다고 하자, 갑자기 기다려보라는 시늉을 하더니 조금 더 가서는 웬 아줌마를 차에 태운다. 알고보니 불법으로 달러를 몽골 돈으로 바꿔주는 아줌마였다. 뭔가 처음부터 참 신기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줌마는 우리에게 남은 러시아 루블과 달러 일부를 몽골 돈으로 다 바꿔주었다. 그리고 환율을 계산해보니 거의 95%로 쳐주었다. 그래서 사실 다 바꿔버렸다. 그리고 4명, 총 12만원을 계산해서 냈다. 일반 소형 SUV 뒷자리에 4명이 끼여서 앉아서 가야 했다. 정말 허리가 뿌서질 뻔 했다. 그 차에는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초등학생 3학년 쯤 된 듯한 아이가 탔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더니 아이가 갑자기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연 뒤 그곳에 탑승한다. 뭔가 우리 때문에 불편하게 가는 것 같아서 아이에게 미안했는데, 오히려 아이는 동양인들을 태운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버스를 타고 몽골로 넘어가면 사람들 하나하나 내려서 짐 검사부터 출입국 심사까지 모두 다같이 패스해야 지나갈 수 있으니까 5시간은 넘게 걸린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잘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허리는 부서질 것 같았지만.
처음엔 트렁크에 타다가 나중엔 엄마 아빠 사이로 옮겨 탄 아이
총 6시간 정도 가야 한다고 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내려서 밥도 먹게 되었다. 나는 어떤 나라에 가든 휴게소와 시장을 가는 것이 즐겁다. 그 곳에서 뭔가 진짜 그나라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읽을 수도 없는 메뉴판을 보며 찍기 신공으로 메뉴 4개를 시켰다. 그런데 그 메뉴 중 3개가 양고기였다. 역시, 양고기의 나라.
차에 끼여서 타고 가던 중 찍은 몽골의 자연
가리지 않고 잘 먹는 나는 배가 너무 고팠던지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다시 허리가 부서지는 곳으로 들어가야 했다. 대화가 안되는 가족들과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왠지 모르게 그 상황이 너무 웃겼다. 그래서 전부 다같이 계속 웃기만 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으니.
정말 오랜 시간 차를 타고 허허벌판과 옆으로 지나가는 염소, 소 떼들을 보다가 갑자기 도시 같은 풍경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아저씨가 뭐라뭐라고 말을 하는데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답답했다. 어디서 내리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는데 버스정류장에 내려달라고 말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가 없다. 몽골어라 그런지, 파파고도 잘 못 알아 듣는 듯 했다.
아줌마도 계속 뭐라고 말을 거는데 여전히 우리는 답을 할 수가 없다. 갑자기 꼬마아이가 말한다.
"Do you speak English?"
"오~~~!!!"
우리가 환호했다. 이 곳도 영어 교육을 하는구나. 우리가 한껏 치켜세워주니 아이의 엄마도 매우 뿌듯해 한다. 역시 자식이 자랑스러운 건, 전세계 엄마들은 똑같은가 보다.
우리가 영어를 알아들은 것을 보더니 갑자기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아줌마. 알고 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에게 통역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우리가 영어를 할 줄 아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가 몽골에서 예약했던 업체와의 약속장소였던 버스 정류장을 겨우겨우 통역하여 내릴 수 있었다. 우린 고생한 애기한테 우리가 먹으려고 샀던 과자를 줬다. 아이가 너무 좋아했다. 불편했을텐데 의젓하게 앉아있는 꼬마 아이가 참 고마웠다.
우리가 할 투어는 '홍고르 투어'라는 곳이었다. 담당자에게 이 곳으로 저녁 8시까지 픽업을 부탁했었다. 다행히 연락도 잘 되지 않을 시기였는데 마침 딱 우리가 저녁 7시 20분 정도에 도착했다. 솔직히 우린 사실 언제쯤 도착할지 조금도 감이 없었는데, 때려맞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담당자 드라이버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