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꽃보다 미녀들'의 시베리아열차 탑승기

우연은 인연으로 이어진다,

by 신잔잔

다음 정차역에서 멈추는 시간이 되었다. 정차역에 멈추면 도대체 얼마나 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기차를 놓칠 것만 같았고, 한국인이었던 우리는 결국 정차 역마다 얼마씩 멈춰있는지 나와있는 표를 차장 아줌마한테 받았다. 꽤 오래 쉬는 것을 알고 우리는 정차역에 내렸다. 정차역에서 내리면 러시아인들이 다양한 음식들을 팔고 있다. 우리는 앞에 있던 할머니한테 빵과 만두를 샀다. 러시아 스타일이었는데 만두 속에는 감자가 들어있었다. 감자만두라, 뭔가 신기했다. 소시지빵 두개와 뭔지 모를 빵 두개도 샀는데 뭔지 모를 빵에는 감자가 들어있었고, 소시지 빵에는 감자가 들어있었다. 아마.. 감자가 지역 특산물인가 보다. 그러나 우리는 기차 안에서 목이 맥혀 죽을 뻔 했다.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컵누들을 먹었다... 사실 먹고 싶어서 먹은 것이 맞다. 기차 안에서 정말 먹기만 계속 하는 기분이 들고 있다.


중간 정차역에서 저렇게 판매하는 상인 | 감자만두


우리끼리 떠들고 노는데 차장 아줌마가 문을 두드리며 본인은 Rosa라고 소개했다. 우리도 각자 이름을 말해주었고, 차장 아줌마가 반가워해주며 떠났다. 이때다 싶어 우리는 차장 아줌마 방으로 가서 우리가 한국에서 가져온 캐릭터 양말과 캐릭터볼펜, 김과 초코파이를 드렸다. 정말로 너무 좋아하시면서 한명 한명 안아주셨다. 그 분의 따뜻한 마음과 품을 느낀 그 때부터 차장 아주머니는 우리들의 '차장엄마'가 되었다.


열차 식당에서도 밥을 먹어보자는 생각에 식당칸으로 갔다. 다같이 맥주를 마셨고, 런치메뉴가 있다길래 4개를 시켜서 먹었다. 1인당 8천원이었다. 역시 물가는 외국이 최고다. 이 가격에 에피타이저와 메인메뉴 그리고 디저트까지 나온다.


맥주와 안주 | 코스요리 중 메인메뉴지만 정체는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는데 아침에 몇마디 나누었던 러시아 아저씨가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는 거의 한시간을 몸짓발짓으로 떠들었다. 그 분은 건축가라고 했다. 뭔가 신기했던 것이 있다면, 우리가 만나서 대화해본 러시아인들 중 3/4은 건축가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개발자가 많은 것처럼 러시아에는 건축가들이 많은 것일까 싶었다. 대화가 잘 안 돼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러시아 아저씨가 며칠 전부터 자꾸 우리를 쳐다보고 관심갖고 했던 탓에 성심성의껏 답변해 주었다. 아래 사진이 우리의 처절했던 그림대화다.

그림 대화장, 대화를 위해 그 처절했던 흔적.


방에서 우리끼리 조금 떠들다가 3등칸으로 여정을 떠났다. 우연히 예수오빠를 발견했는데 그 칸에는 우리 말고 또다른 한국인들이 3명정도 있었다. 꽤나 신기했다. 예수오빠와는 식당칸에서 17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정말 여기 안에서는 먹고-자고-싸고-의 반복이다. 동물이 된 기분이 이런걸까, 싶기도 하다. 식당칸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또 30분 정차라고 한다. 중간에 역에서 정차하면 화장실도 못쓰도록 잠궈 놓고, 옆칸으로 넘어가는 문도 잠궈 놓는다. 그래서 역에서 다시 출발할때까지 기다렸다가 식당칸으로 넘어갔다. 우리가 좀 늦어서인지 예수오빠가 찾으러 왔다. 그를 따라 가보니 아까 본 한국인들이 3명 더 있었다. 두명에서 온 여자친구들과, 혼자 온 여자 분 한 명이 있었다.


다같이 얘기를 하다가 예수오빠가 나이가 제일 많은 것을 알고는 내가 한국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빠'라고 한다고 알려주니까 정말 너무 좋아했다. 예전에 유럽에 갔었을 때도 외국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남자들이 그 단어를 다 좋아하더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역시나 예수오빠도 좋아했다.


그렇게 떠들다가 헤어지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잠시 후 차장엄마가 사색이 되어 우리한테 와보라고 했다. 알고 봤더니 우리 표 중에 A의 표가 '어린이' 표 였던것이다. 차장엄마는 아까 높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동양의 어린 애가 어딨냐고 물어봤다는데, 우리가 잔다고 말했다며 내일 아침에 어차피 우리는 내리니깐 최대한 방에서 나오지 말고 자는척만 하면서 있으라고 했단다. 그게 걸리면 벌금형이 큰 것 같았다. 차장 엄마가 우리를 위해 희생해주다니 정말 너무 고마웠다.


사실 우리가 한국에서 표를 살때 왜 저 좌석만 가격이 싸지? 이상하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어린이표였어서 그랬을 줄이야. 그렇게 차장엄마는 우리 방문을 잠그고 왠만하면 방에만 있으라고 했다. 감옥에 갇힌 느낌이 약간 들긴 했지만 가난한 우리가 벌금만 면한다면야 더한 것도 괜찮았다. 정말 너무도 감사해서 우리는 내일 떠나기 위한 짐을 싸고 차장엄마한테 감사의 편지를 썼다. 알아들을 수 없을 것 같은 러시아어로...ㅎㅎ


휴대폰이 안 터지는 곳에서 회화책으로 짧은 러시아어를 쓰다보니 우리의 한국말을 번역하니 이랬다. "당신은 우리의 러시안 엄마에요."라고 쓰고 싶었는데, '당신,우리,러시아인,엄마'. 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개떡같이 썼지만 찰떡같이 알아들었기를 바랄 뿐이다.


뭐라 썼는지 조차 기억 안 나지만, 아마 못알아 듣겠지만, 마음만이라도.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나니 30분이 남았었는데, 바보 '꽃보다 미녀들'은 시간 계산을 울란우데의 시간이 아닌 핸드폰이 가지고 있던 블라디보스토크 시간만 보고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분명히 30분이 남았었는데 가는 도중에 핸드폰 시간이 바뀌어서 다시 1시간 30분이 남은 상황이 되었다. '꽃보다 미녀들'이 아니라 '꽃보다 바보들'으로 바꿔야 하나... 아무튼 그렇게 드디어 울란우데에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드디어 씻을 수 있게 되었음에 기뻐 날뛰는 모습


그렇게 정들었던 러시아 아저씨, 딸, 차장엄마, 예수오빠와 모두 인사를 나누었고, 내리자마자 갇힌 곳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A와 팔짱끼고 춤을 췄다. 한국에서는 정신 나가보이는 짓이, 외국에서는 의미있는 행동이 된다. 그렇게 우리가 미리 예약해둔 숙소인 Travellers house에 도착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입구를 찾아 공사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고, 짐을 숙소에 내리자마자 바로 버스표를 사러 달려 왔는데 큰일이 났다. 향후 일주일 뒤까지 버스 자리가 하나도 없단다. 망했다. 예산은 부족해서 기차는 못타고, 투어는 예약해둬서 제 시간에 몽골에 가야되고.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왔다. 호스텔의 주인에게 혹시 몽골로 가는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니, '히치하이킹'을 하면 된다고 한다. 러시아 국경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에 거기에서 히치하이킹을 통해 몽골 국경으로 넘어간 후 다시 버스타고 몽골의 울란바토르로 가란다.

"말도 안돼. 히치 하이킹이요..? 여기 러시아잖아요..?"

"걱정마, 안 죽어. 그렇게 가는 사람들 꽤 있어."

두려운 러시아에서 히치하이킹이라니. 어떻게 될 지는 정말 알 수 없지만 방법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4명이라는 것을 믿고 그냥 도전하기로 했다. 그래, 이런 시련이 없으면 여행이 아니지. 설마 태우고 가서 장기를 팔아먹진 않..겠지....... 나 혼자면 겁났을텐데 그래도 4명이니까 나름 든든했다.


A는 두통이 심하다고 해서 잠시 쉬도록 배려하고, 나머지 셋이서 버스표를 사러 갔다. 역시나 여기는 러시아였다. 버스표를 사는 데도 영어 한 마디를 들을 수가 없었다. 난감하게 계속 서서 10분을 손짓 발짓 동원하던 찰나,


"한국인이세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누군가 갑자기 한국말로 말을 건다. 뒤를 딱 돌아보니, 러시아 인이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러시아인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 사람이 통역을 해 줘서 덕분에 버스정류장에는 당일에 도착해서 돈내고 타면 되고, 그 버스는 1시간마다 있으며, 그 버스정류장이 어디인지까지도 직접 데려다 주었다. 모든 루트를 파악한 우리는 드디어 한 숨을 돌리고 그 러시아인에게 여러가지 물어보았다. 본인은 K-pop이 좋아서 한국으로 온 뒤, 숭실대에서 1년간 유학했다고 했다. 오마이갓, K-POP, THANK YOU!!! 나는 평소에 잘 듣지도 않던 k-pop이 정말로 고마워지던 순간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한국 모든 가수별로 다 들을게요.. 가사도 다 들을게요.. 너무 고마워요 케이팝...이라고 속으로 외쳤다. 외국인들에게는 실례되는 질문일텐데 역시나 1년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 친구는 한국식으로 우리에게 나이도 물어보았다. 우리랑 또래인 친구였다. 그렇게 여러 대화를 좀 나누다가 헤어졌다. 이렇게 앞으로도 우연 속에서 인연을 만나고, 그만큼 오랫동안 떠들 수 잇는 추억이 생길 수 있기를 바라는 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 오다가 웬 학생식당같은 곳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작은 식당 느낌이어서 거기서 밥을 먹어어보자 하는 마음에 먹었는데, 맛도 별로고 가격도 생각보다는 비쌌다. 그래도 나름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분위기를 느끼며 즐겼기에 그 값이라 생각하니 나쁘지 않았다. 돌아와서 A의 컨디션을 물어보니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남은 러시아 돈을 다쓰자며 넷이서 꽤 이름있는 펍에 갔다. 거기서 1인 1메뉴가 넘도록 시키고 맥주도 물처럼 시켜서 계속 마셨다.



음식들도 괜찮았지만, 맥주가 무엇보다 최고였다


내가 여행하는 동안 러시아어를 담당했는데, 그 때마다 친구들 모두가 감탄했다. 여행하면서 실제로 다섯 마디 정도면 외웠는데 친구들은 아마 몰라서 잘 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어느 나라를 가든, 정말 딱 다섯 마디 정도면 된다.

"즈뜨라스부이쪠(안녕하세요)", "쁘라스찌쪠(실례합니다)", "이즈비니쪠(죄송합니다)", "스바시바(감사합니다)", "숏 빠좔스따(계산서주세요)", "뜌알렛(화장실)", 그리고 숫자 "아진, 드바, 뜨리, 체-띄레 (1,2,3,4)."


그거면 충분했다. 꽤나 많이 다녀본 여행러 였기에 빠르게 필요한 최소한의 말들은 항상 외우는 편이다. 그렇게 난 언어를 못하는 언어 담당이 되었다. 얼큰히 맥주를 몇 잔씩 마신 후 밖으로 나와서 울란우데의 분수대를 구경했다. 우연히 걸어간 곳인데 분수가 너무 아름답게 음악에 어우러져 자신을 뽐내고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보는 최고의 분수


한참을 그 곳에서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음악을 따라 흥얼거렸다. 그래도 외국이니깐, 너무 늦으면 위험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우리가 묵을 방으로 늦지 않게 돌아왔다. 우리가 묵는 방에 한 커플이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언어를 쓰는 커플. 내가 한 때 꽂혀 있던 스페인어를 쓰는 스페인 사람들이었다. 한 마디 던져 보았다.

"우와, 스페인. 나 언젠가 스페인에 살아 보고 싶어"

"어디에 살고 싶은데?"

"바르셀로나."

"아, 거기 너무 좋아."

비록 몇 마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진짜 스페인 사람들과 스페인어를 주고 받았다는 것에, 그들의 대답이 들렸다는 것에 기뻤다. 이래서 언어를 항상 공부하나 보다.


거실로 나가니 중국인과 핀란드인이 대화 중이었다. 그 사이에 껴서 말을 또 거는, 외국에만 가면 오지라퍼가 되는 나다. 핀란드인은 액션을 배우러 베이징대학교와 부산대학교 중에 고민하다가 베이징을 선택했단다. 여전히 서양 사람들이 동양의 국가들을 선택하는 것이 신기하다고 느껴진다. 미국이나 유럽을 가면 동양인들을 꽤 자주 본다고 느끼는데, 동양에는 아직도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나는 핀란드에 오로라를 보러 언젠가 꼭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핀란드가 살기에는 너무 추운 나라이지만 오로라를 구경하기 위해 여행하기에는 정말 최고의 나라라며 꼭 오라고 한다. 이렇게 또 다음 여행지에 대한 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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