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1박 2일 산행, 두근거리는 시작
크루즈 델 수르를 타고 드디어 도착한 아레키파. 우리의 호스텔은 부바마라 호스텔이었다. 아레키파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10시쯤이었고 택시를 잡고 가려 했다. 터미널에서 잡으려고 하니 12솔을 불렀다. 잘 잡히진 않지만, 우버를 확인해보니 8솔이었는데. 그래서 11솔로 타협 보자는 말을 무시한 채 터미널 밖으로 나갔다. 첫번째는 12솔이라는 똑같은 말을 해서 포기하고, 두 번째로 잡은 택시가 8솔이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물어봐야 할 것. 2명이 8솔이 맞나요? ('Para dos, o para uno?') 아저씨가 당연히 두명이란다. 바로 오케이 했다.한국에서도 못하던 흥정인데, 여기선 흥정의 신이 되고 있다.
아저씨가 정확히 주소를 몰라 한참을 돌았다. 결국 광장 근처에 갔을 때, 여기서 내려달라고 '여기, 여기! (Aqui! Aqui!)'만 외치고 내렸다. 같이 간 K가 택시에서 '이 아저씨 왠지 우리 내릴때쯤 신종 사기를 칠 지도 모르겠어.'라고 말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감사히 잘 내려주셨다. 타지에 오니 참 의심이 많아진다. 이럴 때 보면 우리나라가 정확하고 살기 좋은 곳은 맞는 듯 하다.
부바마라 호스텔은 1호점, 2호점이 있었는데 우리는 1호점으로 갔다. 꽤나 깔끔하고 탁 트여있었다.
오랜 시간 버스에서의 여정으로 인해 불편해진 몸을 씻고 바로 아레키파 1박 2일 투어를 찾으러 나갔다. 산행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1박 2일로 산행을 하며 중간에 마을에서 묵는다니, 뭔가 낭만적이라고 느껴졌었다. 대충 가격이 100~130솔이면 된다 그래서 세 군데 정도 돌아보았는데, 너무 피곤했던 우리는 115솔에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갔다.
우리한테 설명해주는 아저씨가 완전 장사꾼 같았는데 말을 너무 잘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휴대폰 판매하는 언니 같았다. 예전에 예능 '라디오스타'에서 박진주 배우가 휴대폰 파는 모습 성대모사 처럼 한 적이 있었는데 딱 그 모습이었다. 페루인인데 영어 발음이 기가 막히기도 했고.
'이렇게 이렇게 포함해서~ 95솔인데~ 잠은 또 다른데 가면 막 같이 재운다? 근데 내가 너네같았어도 그런데 가면 다른 사람들이랑 쓰기 싫을 거 같단 말이야. 그래서 우리는 프라이빗한 롯지를 팀별로 줘~'
이러면서 말하는데 혹하지 않을 수가 없어 고대로 결제를 하고 말았다. 마지막 날 점심은 다른데들도 그렇듯 추가비용이 들어갔고 여기는 부페식으로 20솔이라고 하기에 그냥 신청했다. 우리 둘 다 고산병에 생리전증후군까지 겹쳐 모든게 귀찮을 때라 그냥 뭐든 다 오케이~ 했다.
출발은 내일 새벽 3시. 호스텔로 픽업하러 와준단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있어야 할텐데, 벌써 험난했다. 아무튼 그건 내일의 나에게 맡기는 것이고, 우리는 일단 오늘을 살아가고자 밥을 먹기 위해 광장 근처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초반에 밥을 시키면 자동으로 주는 스프. 그림으로만 골라 이름을 알 수 없는 면, 이름 모를 밥. 이렇게 시켰는데 둘 다 절반씩 남겼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양이 너무 많아서였다. 셋이 가서 두 개를 시키면 딱 맞을 양인듯 하다. 저기에 K가 콜라 마니아라 콜라까지 시켰는데 총 합계가 8천원도 안했다. 물가만 보면 역시 외국이 살기 좋나 생각이 중간중간 든다.
배가 든든해지자 이제 힘이 좀 생겨났다. 슬슬 주위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다들 남미라서 무섭지 않냐고 묻지만, 글쎄, 사람 사는 곳이 막상 또 와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아닌 곳도 있다. 그런 지역들은 호스텔 사장님한테 이야기를 들어서 그 방향으로 가지 않거나, 한다. 나도 오래 살고 싶으니까. 그 외에는 정말 다 비슷비슷하다.
시장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기에 가보았는데 정말 다양한 것들이 많았다. 돌아다니다가 우리가 그동안 비타민씨를 충전하지 못했던게 기억나서 비타민 충전을 위한 과일들을 샀다. 엄청 큰 망고 하나, 예전에 블로그에서 봐 둔 새로운 과일 두 개 종류, 장사하시는 아줌마 추천 과일 두 개 해서 총 4천원 정도였다. 여기 와서 새삼 200번 정도 느끼지만, 우리나라 물가는 왜 이렇게 비쌀까.
저녁이 되니 광장 한가운데서 남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버스킹을 하듯 했는데 젬베와 기타 등의 악기를 연주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여서 다같이 노래부르며 일부는 나가서 춤까지 춘다. 말 그대로 남미의 열정과 뜨거움이 느껴지는 광장이었다.
피곤함에 지쳐 금방 열정을 지켜보던 일조차 식어버린 우리는 얼른 방으로 돌아와 과일을 먹었다. 정말로, 태어나서 먹어본 과일 중에 제일 맛있었다. 아줌마가 추천해준 과일도 엄청 맛있었다. 다만, 겉모습은 사과 같은데 속은 너무 징그럽게 생겨서 그 사진은 패쓰. 맛만 좋으면 되는 것.
다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 K와 1박 2일 트레킹 하고 나면 힘들테니 아레키파에서 하루 더 묵자고 얘기가 되었다. 우리는 매우 즉흥적인 사람들이다. 호스텔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2일 뒤에는 호스텔이 빈 방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긴 체인점이라며 다른 곳에 전화해서 알아봐 준다. 그렇게 그 곳으로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다. 아레키파에서의 모든 일정은 어느 정도 다 정해졌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 아니 새벽 2시에 맞춰놓은 알람에 의한 불편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새벽 2시에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면서 '왜 이걸 한다고 했지?' 약 1분 정도 후회의 시간과 알람 5분 미루기를 두 번 정도 끝낸 후 겨우 몸을 일으켜 한 명씩 씻으러 갔다.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밖에서 기다리니 운전기사가 문을 두드린다. 남미가 전체적으로 치안이 좋지 않은 것은 맞기에, 다들 철문, 돌문, 쇠문 난리다. 아레키파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소문난 곳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호스텔 담당자가 직접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참 죄송스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꽤나 그럴테니 피곤하시겠다, 싶었다. 그렇게 아레키파에서의 콜카캐년 1박 2일 투어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차에 타서 그냥 기절한 우리. 일어나보니 다들 탑승해 있었다. 우리만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아마 한국인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의 탓일 거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내겐 신선하고 즐겁기 때문이다. 다시 자다가 눈 떠보니 아침을 먹으란다. 아침은 매우 부실하다. 우유, 오트밀, 마른 빵 정도였다. 전날 아저씨가 과자를 왜 꼭 챙기라 했는지 알겠다. 그 상태로 트레킹 하기엔 너무 배고플 듯 했다. 아무튼 그렇게 다시 출발한다.
외국인들은 우리에게 말을 잘 걸지 않았다. 우리 둘다 막 그렇게 활발하고 먼저 나서서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다보니 그들도 우리에게 약간의 어색함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물어보면 친절하게 잘 답해주는 우리. 영어를 너무 잘 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대답할 정도로는 할 줄 아는 우리. 그럼에도 아레키파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산병을 겪고 있던 터라 머리도 아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모든 것이 귀찮은 상태였다. 아마 우리가 둘이서도 말 자체를 안해서 영어도 못하는 줄 알았을 수도 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우리와 같은 그룹은 남미 사람들 5명, 영국인 4명, 미국인 1명, 폴란드인 2명, 그리고 우리 2명. 이렇게 14명이 시작하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데리고 간 트레킹 장소로 가서 트레킹을 드디어 하기로 했다.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해서 18km, 내일 오전에 3시간 해서 6km라고 한다. 막상 km로 들어보니 인생 첫 하이킹을 너무 무리했나 싶다. 그것도 고산지대에서. 뭐 어쩌겠나. 이미 마음 먹은 거(사실 이왕 돈 낸거), 그냥 가야지.
그렇게 여러 방면에서 두근거리는 하이킹의 첫 오전 일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