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차저차 여행 가는 날 아침이 밝았다. 사흘 전부터 짐을 차례차례 준비해 두던 아빠와, 여행 전날 밤 부랴부랴 짐을 대충 넣기 시작한 나. 아빠와 나의 유일한 공통점은 미니멀리즘이라는 것뿐이었다. 보통 여자애들이 일주일 이상을 여행 가면 혼자서 큰 가방 하나를 다 써도 모자라지만, 배낭을 메고 몇 달씩 여행 다니곤 했던 나는 작은 짐가방 하나면 충분했다. 아빠는 그보다도 더 적은 짐만 있으면 되었기에 우리는 가벼운 가방들을 보며 뿌듯해했고, 엄마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어했다.
공항으로 가는 과정도 우린 부딪침의 연속이었다. 인천 국제공항까지 집에서 오래 안 걸린다는 나와, 그래도 차 막힐 시간이니깐 미리 가자고 재촉하는 아빠. 결국 너무 일찍 도착하면 아빠 탓을 하기 위해 아빠의 손을 들어주었다. 역시나 두 시간 이상 일찍 도착해버렸다.
"이거 봐. 이렇게나 일찍 도착했잖아. 공항에서 할 것도 없는데."
"늦게왔으면 분명히 차 막혔을 거야. 너 한 30분만 있다가 지도 봐봐. 다 빨간색일거라고."
자존심 강한 부녀였고, 니 말이 맞네 내 말이 맞네 우기던 우리는 정말 30분 후에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열어서 집에서 공항까지 얼마가 걸리나 확인까지 했다. 새벽에 왔던 시간보다 훨씬 더 걸리는 것은 맞았다. 그래도 자존심 강한 나는,
"그래도 지금 출발했어도 일찍 도착했을 시간이잖아!"
라는 마지막 자존심을 내세웠다.
내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조차 아빠는 안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져 주는 척을 한다. 이러니 매일 바람잘 날이 없는 우리다. 그래도 더 이상의 자존심 싸움은 암묵적 금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는 여행의 시작이 싸움일 순 없으니까. 공항에서 아빠와 같이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면세점 구경도 한참 한 후에도 시간이 남았지만, 어쨌든, 마침내 비행기에 탑승했다.
아빠와 여행을 가면 좋은 점은, 비용보다는 시간 효율이 중요했기에 메인 항공사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여행을 갈 때는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비행기만 몇 번을 갈아타야 했었던지.아빠와 함께 하는 13시간의 직항 코스에서는 하루 종일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었고, 아빠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꾸역꾸역 기내식을 먹었으며, 다시 그 상태로 잠드는 소화불량을 동반한 심적 행복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렇게 짧디짧은 13시간이 지나고 뉴욕 JFK 공항에 도착했다.
유럽을 갈 때는 딱히 입국 질문도 없었고, 비자도 불필요했으며 그들도 영어가 자신들의 언어는 아니기에 딱히 말을 걸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가기 전부터 소문이 흉흉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들거나 인상이 좋지 않으면 따로 불려 간다는 것이다. 입국 인터뷰를 할 때 왠지 사람 좋아 보이는 곳에 가서 서 있고 싶었지만, 앞에서 안내해주는 직원이 밀어 넣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슬쩍 목을 빼고 보니 깐깐해보이고 아무런 감정도 없어 보이는 흑인 여자 분이었다. 미국이 처음인 나와, 미국으로 출장을 여러 차례와 본 아빠 모두 조금씩 긴장하고 있었다. 기어코 내 차례가 왔고, 그 사람이 아빠도 같이 오라고 손짓했다. 아빠는 나와 함께 서서 다행이라는 눈치였다. 영어를 못 알아들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나만 믿고 의지하면 될 터였다.나의 부담이 더 커졌다.
그녀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내가 아빠에게 "가서 영어는 내가 담당할게."라고 큰소리쳐 놓았는데 그 인터뷰어의 영어를 듣는 순간 등 뒤에서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단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한 세 번은 "Pardon, Please?"라며 잘 안 들리는 제스처를 취했고, 같은 말을 세 번쯤 들으니 조금씩 영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도 괜히 그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까 싶어 굉장히 순진무구하게 방긋 웃는 얼굴로, 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 자주 물어서 너무 죄송하다는 듯한 표정을지으며 서 있었다.
그녀의 질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여기 왜 왔니", "직장이 어디니", "며칠 동안 있을 거니", "어디에서 머무를 거니". 딱 그 정도였다. 아빠의 직장은 해외에서도 유명한 기업이었기에 프리패스해주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순진무구한 내 표정을 보며 얜 여행객이 아닐 수가 없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프리패스를 해 준 것일지도. 어쨌든 우리는 그 질문 네 개만 받고 무사히 통과가 되었다.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약간은 뻘쭘한 마음으로 뉴욕 출장 경험이 있는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아빠.영어 본토 발음은 원래 이렇게 빠른가? 순간 못 알아들어서 식은땀 났네."
"원래 동부가 말이 좀 빨라. 서부는 이 정도는 아니던데. 나는 방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세계 각국으로 출장을 많이 다닌 아빠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를 배운 나보다는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 한국에서만 배운 영어인데 나라고 뭐 잘하겠나만은, 그래도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어서 성인이 된 후에도 영어 회화학원까지 다녔었기에 나름 자신 있었다. 그럼에도 영어가 제1언어인 이곳에서는 그 자신감마저도 다 공기 중으로 사라져버렸다.
출국장을 나와 버스 타는 곳을 찾았다. 택시는 많은데 버스가 보이질 않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앞에 있던 작은 부스 속 미국인 여자 분이 밖으로 걸어 나오더니 "Bus?"라고 묻는다. 바로 "Yes!!!"라고 했더니 바로 인당 18불씩 달라고 한다. 그녀가 알려주는 곳을 따라 5분 정도 줄 서있으니 버스 기사가 와서 표를 받고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