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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잔잔 Nov 20. 2023

#2. 엄마와 딸의 로마 탐방기

로마의 걸음은 항상 2만이었다

로마에 도착한 후,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전날 힘들었던 탓인지 나는 꽤 잠을 잘 다. 물론 엄마는 여전히 시차적응을 하지 못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셨다고 했다. 시차적응을 잘 못해서 엄마의 혈압이 더 높아지는 건 아닐는지 약간의 걱정이 된다. 아무튼 그렇게 엄마랑 같이 뒹굴거리다가 조식을 먹고 천천히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트레비 분수에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 오른손에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너머로 던지면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전설이 내려도 있고, 1개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2개를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올 수 있다는 전설도 있다. 나도 15년 전에 한 번 던져서일까, 결국 돌고 돌아 다시 오기는 한 것을 보면, 그 전설이 어쩌면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필 엄마와 내가 간 시간대가 트레비 분수를 청소하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던진 동전을 치우고 있었기에 청소하는 분들 사이로 동전을 던질 수는 없었다. 결국 동전을 던지진 못하였으나, 그 와중에도 트레비 분수 주위로 아침부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사진 한 장을 겨우 남기고 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이탈리아를 오니 느낀 점은, 경찰들이 관광지 근처에 정말 많아졌다는 것이다. 내가 홀로 여행을 했던 2016년도의 이탈리아에서는, 유럽에서 테러가 발생한 지 오래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여기저기 군인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당연한 듯 경찰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느끼기엔 소매치기도 많아 보이지 않았고 이전에 비해 꽤 치안이 괜찮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도에는 소매치기들이 눈에 보일 정도로 많았고, 실제로 훔쳐가려다 몇 차례 눈이 마주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재밌던 것은, 엄마와 함께 다니다 보니 어느 곳에서든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많이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나 말고 엄마한테 말이다. 어쩌면 동양 아줌마들은 물건을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한 편견 아닌 편견 속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국인들은 엄마한테 부탁하고, 엄마는 본인이 잘 못 찍는다며 나한테 넘겨서 내가 옆에서 찍어주는데, 문제는 나도 사진 찍는 것에 젬병이라는 것이다. 내 별명은 주위에서 '애늙은이'인데, 유명한 K-POP 노래 및 아이돌 가수들을 모르는 것과 사진을 못 찍는 것이 가장 큰 까닭이었다. 그래서 엄마를 통해 사진을 부탁받으면 부리나케 찍어주고 그 자리를 도망 나오곤 했다. 동양인들이 사진을 잘 찍는다는 사실에 대한 외국인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어버리는 눈빛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10+@년 만에 온 트레비 분수


그렇게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움보다 열렬한 외국인 전담 사진사가 되었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엄마와 함께 근처 맥도널드로 향했다. 오후에 바티칸 패스트트랙 투어 일정이 있던 탓에 근처에 있어야 했고 다리도 아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엄마가 고혈압 약을 드시고 계시기 때문에 지나친 피로는 항상 경계해야 했다. 그래서 맥도널드에 들어가 쉬기로 하였고, 거기서 누텔라 크루아상과 콜라 두 잔을 시켰는데, 누텔라 크루아상은 맛있어서 놀라웠고, 콜라 두 잔은 얼음 한 알맹이 들어있지 않아 놀라웠다. 콜라가 그렇게도 밍밍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도 크루아상만큼은 역시 빵의 유럽 답게 맛있었는데, 하나를 더 시켜 먹고 싶었지만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기에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먹기로 했다.


그렇게 맥도널드에 앉아 엄마와 떠들면서 쉬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고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바티칸 구경을 위해 뭐라도 먹어두긴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점심을 먹으러 어디를 갈까 찾던 중  바로 옆에 'Pastasciutta'라는 곳을 발견했다. 1개 당 6.5유로를 주고 사 먹는 저렴한 파스타였는데, 내부에 자리가 다섯 자리도 채 되지 않아서 다들 근처에 서서 먹거나 길바닥에 앉아서 먹는 곳이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밥 먹을 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예절 교육을 많이 받고 자랐다 보니 앉아 먹는 것이 당연한 문화인데, 유럽에서는 길에서 서서 먹거나 앉아서 먹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 유럽 문화 체험 겸, 저렴한 식사 때우기 겸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실제로 줄을 꽤 많이 서 있었는데, 정말 주위 길에 사람들이 많이 앉거나 서서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60이 넘으신 엄마를 그곳에 앉혀서 먹게 하는 게 조금 그렇긴 했지만, 그래도 현지 체험이라 생각하고 먹기로 했다. 엄마가 길바닥 중에서도 그나마 인도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를 잡았고, 나는 까르보나라와 라구 파스타를 시켰다. 그렇게 음식을 받아서 나오면서 엄마가 길바닥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처량해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정말 우스운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멀리 보이는 엄마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어찌나 웃겼던 지 당시의 처량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두다. 내가 시킨 파스타 두 개는 모두 많이 짜지 않고  있었는데, 양 왜 이렇게 많은지. 결국 절반 이상을 다 남기고야 말았다. 길바닥에 앉아 파스타를 먹으면서 엄마가 한 마디 했다. '다시는 땅바닥에서 먹지 않겠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웃프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혼자 여행을 많이 다녀서 저렴한 거지 생활(?)이 익숙하지만, 사실 엄마를 길바닥에 앉혀놓고 먹게 하기는 지금 생각해도 죄송스럽고 웃긴 기억이긴 하다.


파스타, 처량함, 그리고 웃픈 추억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대성당은 들어가는 줄이 워낙 긴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 더 비싸더라도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아깝다고 판단하여 패스트트랙 투어를 신청했다. 'Klook'이라는 어플을 통해서 구매했고, 2명에서 원화로 83,000원이었다. 1시까지 시간 맞춰서 투어 사무실에 가면 사무실 직원들이 같은 시간에 방문할 사람들을 모아서 박물관 내부까지 데리고 들어가 주고, 들어가서는 각자 구경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엄마와 나는 15년 전에 가이드와 함께 왔었는데 가이드를 따라다녔던 것이 너무 지쳤던 기억이 있었기에 우리끼리 '투어 라이브' 어플을 들으며 돌아다니기로 했다.


문제는 들어가자마자 어디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감을 잘 못 잡겠던 것이었다. 너무 넓고 방대해서 대체 어디부터 봐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미리 다운받아 온 '투어라이브' 어플을 켜서, 거기에서 이동하라는 곳을 따라서 겨우 이동했으나, 사실 미술품과 박물관을 구경해야 하는데, 그곳에서 알려주는 데로 영상에서 나오는 사진 속 길을 따라가려다 보니 그 길을 찾는 것도 한 세월이 걸렸다. 다행히도 엄마와 나는 둘 다 예술에 일가견이 크게 없는 사람들이라 많은 작품들을 건너뛰면서 중요한 작품들관람하며 넘어왔다.


사실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 바티칸 박물관과 시스티나 대성당을 가는 이유는 몇 개 없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시스티나 대성당에 있는 천장화, 그리고 천지창조를 보기 위해서이다. 다른 곳들은 스치듯 바라보며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임에도, 사바티칸 박물관 내에서 한참을 걸어야 했기에 다리가 정말 아팠다. 나도 이렇게 다리가 아팠는데 엄마는 오죽 힘드셨을까 싶다. 60대인 엄마가 나와 똑같이 걸어서 큰 불평 없이 나를 따라오는 것을 보면, 엄마의 체력이 정말 대단하다 싶다. 그렇게 수많은 작품들을 스치며, 한참을 걸어간 끝에 도착한 시스티나 대성당. 여전히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천지창조는 기억 속 그대로 너무도 아름다웠다. 어릴 때 저 작품들을 보고 뇌리에 박혀 희곡을 썼던 기억도 새록새록 났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넋을 놓고 보게 되는 작품들이었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며 시스티나 성당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에 몇 십 분을 그곳에서 머무른 뒤에야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이끌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느꼈던 감동도 잠시, 시스티나 대성당에서 밖으로 나오는 데도 한참을 걸어 나와야 했다. 엄마와 나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결국 숙소에 들어가 잠시 재정비를 하고 나오기로 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다시 테르미니역에 왔다. 어제 들렀던 CONAD 마트에 들러 복숭아와 맥주 및 견과류, 물을 사서 방으로 들어온 뒤, 얼른 호텔로 들어와 낮잠을 한숨 잤다.


낮잠을 밤잠 그 이상으로 푹 자고 일어나 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배가 썩 고프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밤에 배가 고프면 음식을 살 수 있는 곳이 마땅찮으니 일단은 숙소 근처에 있는 피자집인 'Pinsere'라는 곳으로 갔다. 숙소에서 도보 7분 정도 거리였는데, 원래는 포장을 해서 오려고 했는데 외부에 자리가 잘 되어 있어서 엄마와 먹고 가기로 했다. 피자를 만드는 아저씨는 너무도 친절했고, 다양한 피자의 맛을 다 설명해 주었다. 가격도 7.5유로로 매우 저렴했다. 스파이시를 원한다고 했더니, 적색 양파가 들어간 피자를 추천해 주었다. 맥주도 추천 부탁했더니, 이탈리아에서 가장 저렴하고 대중적으로 마시는 맥주라며 'Peroni' 맥주를 추천해 주셨다. 놀랍게도 엄마와 나는 'Peroni' 맥주가 이탈리아의 가장 대중적인 맥주인 지조차 모르고 올 정도로 급하게 여행을 왔는데, 그렇게 맥주를 피자집 아저씨한테 배웠던 것이었다. 그렇게 피자 하나와 맥주 두 병을 시켰는데, 가격은 12.5유로 밖에 나오지 않았으며, 피자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엄마와 동시에 감탄했다. 진짜 너무너무 맛있었다. 짜지도 않고 양파가 있어 적당히 매콤 쌉싸름했던 것이, 그곳만큼은 정말 매일 와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정말 맛있어서, 로마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 엄마와 또 가기로 약속했다.


하나만 시켜 먹었지만 꽤 배가 불러서 가로 더 시켜 먹지는 않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내일은 피렌체로 이동을 하여야 했기에 음을 들고 갈 수 없어 배가 부른 와중에도 좀 전에 사 온 복숭아와 맥주를 먹고 진짜 밤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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